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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Dec 03. 2021

수술 전 일주일 동안의 병원 생활




콧줄 없이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새벽에 간호사님이 혈압과 온도를 체크하러 들락거리고 아침 6시엔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기 때문에 자동으로 아침형 인간이 된다.




블라인드를 걷고 침대 옆 창 밖을 둘러보니 저 멀리 해가 뜨는 방향에 남산타워가 보였다. 오른쪽 창문을 바라보면 여의도 높은 빌딩들이 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을 바라보면 왠지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오후에 새로 온 옆 침대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자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물으셨다. 난 그냥 장이 꼬여서 왔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병명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남편분은 목소리가 꽤 큰 편이다. 옆에서 얘기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병실이 덥다며 계속 창가의 창문을 열어둔다. 양치할 때는 이상한 ‘쿽쿽쿽’ 소리를 낸다.


문득 어제 오전에 온 간호 파트장이 나에게 조용히 한 말이 생각났다.


“옆에 좋은 분이 오셔야 할 텐데요.”


2인실이다 보니 많은 트러블이 날 수 있기에 한 말인 듯했다. 전에 계시던 분들은 굉장히 조용했기 때문에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내가 지금은 수술도 하지 않았고 장이 꼬여있긴 하지만 막 아프진 않은 정도니 생활소음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분과 대화를 종종 나눠보니 좋은 분들 같았다.


아주머니는 내일 위암 수술을 하신다고 한다. 건강검진으로 초기에 발견했다며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셨다.


그날 저녁 아주머니는 갑자기 열이 났다. 간호사들은 바빠졌다. 계속 열이 나면 내일 수술이 불가하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아까 위내시경을 한 후에 목이 아파서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했지만 간호사는 PCR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두 분은 치료실로 가셨다. 뵌 지 하루 되었지만 왠지 걱정이 됐다. 내일 수술을 받으셔야 할 텐데…


저녁 11시쯤 잠에 들고 새벽에 소리가 들려 깨니 두 분이 돌아오신 것 같았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깨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치료실에서 PCR 검사 후 음성 판정이 난 새벽 2시까지 격리되어 있었다고 하신다.


다행히 열도 내려가서 일정대로 점심때쯤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수술 순서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는 꽤 긴장한 듯이 보였다. 로봇 수술을 할 예정인데 비용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난 잘 될 거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 사이 오전에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고 드디어 내 수술 날짜가 잡혔다. 다음 주 화요일.


수술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리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일 거라고 하셨다. 복강경을 통해 꼬인 장을 풀고 소장을 절제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고.


이야기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이 병동에서 난 굉장히 쉬운 케이스란 걸 알고는 있었다. 옆 아주머니는 4-5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부부는 나에게 다행이라며 수술만 하면 이제 아플 일 없을 거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수술 침대에 오르고 남편분은 함께 수술실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셨다. 코로나 때문에 이젠 수술실 앞에서 대기가 불가하다.


적막한 병실에는 남편분의 깊은 한숨 소리만 들렸다.


난 열심히 걷고 죽도 먹고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혈압이 계속 낮았다. 수액을 빼고 나니 어질어질하기도 했다. 조금 쉬고 걷고 반복했다.


6시쯤 되었을까, 옆 침대로 교수님 한 분이 오셔서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셨다. 이제는 잘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남편분은 연신 감사인사를 건넸다.


한두 시간  아주머니께서 침대로 복귀했고 간호사들의 일사불란한 손길에 옷이 갈아입혀졌다. 쉴 새 없는 커튼의 펄럭거림이 보였다.


수술 후에는 2시간 동안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머니는 고통을 참으며 심호흡을 해야 한다.


난 최대한 조용히 생활했다. 화장실 문도 살살 닫고. 원래도 조용했지만 더 조심했다. 아프면 예민해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다음 날 조금 회복된 아주머니는 이제야 내가 보인다며 웃으셨다. 위를 잘라냈으니 얼마나 아플까.


다행히 아주머니는 하루하루 나아지는 듯했다.


이틀 뒤인 토요일에 가족들이 잠깐 얼굴을 보러 왔다. 본관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다길래 운동할 겸 본관까지 걸어가서 얼굴을 보고 편의점에 들러 물을 사 왔다.


엄마와 아빠한테 아픈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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