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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Jun 13. 2022

취준생 말고 취중생

오늘은 5월 31일, 취업 중단을 선언한 지 91일 째다. 이름하여, 취’중’생이다.


나는 2021년 12월부터 22년 3월까지, 짧지만 강렬한 취준 생활을 보내고 취업 중단을 선언했다. 취업 포기가 아닌 것에 다행이어야 할지 불행이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취준을 하며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느끼고는 홀로서기 실험에 돌입했다. 그렇다, 이 글은 어느 흔한 취준생이 취업 준비를 중단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자유없는 자유양식


일찍이 대기업은 포기한 상태였다. 서류부터 인적성 시험에 면접까지, 기나긴 과정을 버틸 기질은 아니었다. 애초에 ‘아님 말고'라는 마인드였어서 그런지, 빠르게 시도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는 회사 규모가 아니었다. 나의 직업관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진짜 문제였다.


미리미리 포트폴리오를 써놓자고 다짐해왔지만, 막상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건 서류 마감 하루 전날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기업에서 갑작스레 콘텐츠 마케터 채용 공고가 올라온 것이다. 공고를 확인해보니 자소서는 자유양식, 에세이 한 편과 포트폴리오를 함께 제출하라고 적혀 있었다. 양식이 자유라고? 그럴 수가 있나? 이렇게 적어놓고 막상 그림 그리거나 시 써서 내면 불합격 주는 거 아니야? 의심의 눈초리를 안은 채 부랴부랴 검색을 시작했다.


근데, 뭐부터 검색해야 하지? 자소서 쓰는 법? 포털 사이트에 자소서를 검색하니 SK, CJ, 삼성 등 대기업 자소서들이 상단에 가득 떴다. 어라, 내가 쓰려는 건 자유양식 자소서인데. 자유양식, 스타트업, 자소서로 키워드를 나눠 검색했다. 그러자 브런치와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의 검색 결과가 나왔는데, “자유양식 자소서, 어떤 문항 써야 하는지 딱 정해드림!”이라는 영상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영상을 보니 보통 자유양식을 쓸 때는 기본적으로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를 쓴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대기업에서 쓰는 양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럴 거면 뭐하러 자유양식을 내라고 하는 거야?


경험에도 급이 있나요


자소서와 관련된 영상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경험'이었다. “경험을 팔아라, 그러면 합격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말을 들어보면 뭐랄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경험에는 소위 ‘급’이 있었다. 시도했다가 금방 포기한 경험은 쓸모가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무언갈 이뤄냈고, 그 결과가 수치적으로 높은 성과를 달성한 것들이 좋은 경험으로 인정받았다. 머릿속에만 있던 지난 경험들을 끄집어내는 건 좋았지만, 그 경험들에 좋고 나쁨을 부여하려니 씁쓸했다. 


예전에 즉흥으로 만든 글쓰기 모임을 소개하면서는 이런 말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팀원의 참여를 유도했고, 실제로 89%의 참석률을 이뤄내는 성과를…” 저 89%라는 숫자를 끄집어내기 위해 얼마나 생고생을 했는지, 한참 전에 파한 단톡방에 들어가 대화 기록을 뒤져야 했다. 귀차니즘이 도져서 나중에는 대충 셌으니, 수치가 완벽하게 객관적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과정이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덕분에 내가 한 일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였는지를 통계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성과'를 바라보는 사회의 기준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수치가 낮거나 존재하지 않지만 그때 그 일로 내게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친밀도가 쌓였다면? 친밀도도 숫자로 표현해야 하나? 수치가 없는 경험의 대부분이 자소서를 위한 ‘경험리스트’에서 배제된다는 점은 취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했다. 무엇보다 평가를 위해 경험을 나열하고 위계화하는 일이 내겐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일상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원하고 싶은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영상은 마치 선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질 않았다. 있다 해도 1개 남짓, 그것도 산업이 달라서 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세상에는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에 가고 싶은 청년도 있을 텐데, 그들은 대체 어디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걸까?


어찌 됐건 자소서는 써야 했고, 내가 원하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는 대로 따라 썼고, 서류는 어찌어찌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늘 고배를 마셨다. 업계 특성이나 직무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면접을 봤으니 그럴만했다. 그렇게 짧게도, 길게도 느껴지는 나의 취준 생활의 끝에는 인턴 불합격 3번, 정규직 합격 1번이라는 결과가 남았다. 그마저도 합격한 곳에서는 연봉이 맞지 않아 입사를 포기했다.



취준 할 때 챙겨보던 유튜브 채널을 다시 찾았다. 영상에는 “00님 덕분에 대기업 입사 성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던지, “경험이 없는데 어디서 경험을 쌓아야 할까요? 시간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경험을 쌓고 싶어요” 라던지, 취업을 했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이들의 댓글로 가득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질감이 확 들었다. “나의 이러이러한 경험들이 유의미했고, 귀사와 잘 맞으니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는 이런 직업을 만들어냈고요. 이 직업은 이러이러한 일을 해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찾고 싶은 거였다.


취준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찾는 곳이 없다는 거였다. 나를 찾는 회사는 언젠가 나타나겠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회사와 직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혹은 못 찾았거나). 어딘가에 소속되기엔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에 관심이 있었고, 또 그것이 업으로 이어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당장 홀로서기엔 일을 구할 줄도 모르고 뭘 할 수 있는지도 몰라서 취업을 시도했고, 어디든 적당히 괜찮은 곳이라면 지원서를 냈다. 그러다 보니 온전히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 애매한 자리에 나를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직업을 찾습니다


정녕 취업 말고는 길이 없는 걸까? 소속 없이 일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내 경험들에 위계를 부여하지 않고 모두를 활용해 밥벌이를 할 수는 없을까? 그러니까 나는, 사회가 정의한 노동과 직업이 너무나 단편적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SNS 채널도 운영해봤지만, 그렇다고 콘텐츠 마케터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럴 때가 참 행복했다. 내가 만든 영상에 “잉여 님 덕분에 저도 책을 읽게 됐고, 최근에 인생 책도 찾았어요"라는 댓글이 달릴 때. 사비를 탈탈 털어 만든 소책자를 무료로 배포하기 위해 서울의 책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을 때. 장애인권단체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며 장애물을 발견하고, 지적하는 영상을 만들었을 때. 조회수는 처참했지만 단체 사람들이 너무 좋은 영상이 나왔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딘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것이 아직 명사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의 직업을 찾기 위해, 취업 중단을 선언했다. 오늘은 5월 31일, 취업 중단 91일 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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