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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Oct 25. 2022

8,000원짜리 칼국수

일요일이면 집밥보다 외식이 당긴다백수에겐 주중이든 주말이든 매일이 방학이다 보니평소에는 끼니를 집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장을 보고(3,000원이었던 식용유가 8,000원이   보고 나서는 장보기가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재료를 손질하고조리가 끝난 요리를 그릇에 담아 먹고 다시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짓을 하루에 3 하려니 엄두가  나서요즘에는 하루  끼만 먹는다

 

그렇게 며칠 내내 집밥을 먹다 보면 속세의 음식이 고파진다오늘은 유독 칼국수가 당긴다시원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맛없으면 정색하게 되는 겉절이까지식전에 나오는 보리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요리조리 섞다가 열무김치를 올려 먹으면 미슐랭 요리 저리가라다아이고 배고프다그래오늘은 칼국수를 먹자!

 

카드에 잔액이 얼마나 남았더라어라벌써  달치 예산을  썼다고그럴 리가 없는데..  맞다지난주에 강의 듣겠다고   하나 결제했지… 눈에 띄게 줄어든 체크카드 잔고를 보고 멈칫했지만 오늘은 일요일이 아닌가 걱정보다 편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손은 이미 외출복을 집고 있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작  끼를 해결하는 것치고 8,000원은 너무 비싼  아닐까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번만  고민을 해보자재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재료 손질 20분에 요리 10식사 30 그리고 설거지까지 하면 1시간이 훌쩍 넘지만칼국수는 15분이면 나오고 먹고 나서 결제만 하면 끝이다지금의 나한테 8,000원은 조금 큰돈이긴 하지만그만큼 요리에 들어가는 시간을 절약할  있다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밥을 차려먹을 기력조차 없는 헝그리한 상태 아닌가.

 

그래역시 칼국수를  먹어야겠다다만 이번에 칼국수를  먹으면 남는 돈이 6 원이니까다음 주는 카페나 사무실 가는 횟수를 줄이는 걸로 퉁치자그렇게 스스로를 타협하며 집을 나섰지만 안의 자린고비는  못마땅했는지 식당에 가면서도 발길을 돌릴지 말지를 고민해야 했다.

 

겨우 다잡은 마음으로 식당에 도착해 칼국수 하나를 주문했다핸드폰에 이어폰을 꽂고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2> 켰다드라마를 보는 사이 주문한 칼국수가 나왔다그릇에 면과 국물을 담고면발 사이사이에  당근을 골라냈다미리 찢어둔 겉절이와 함께 후루룩 면발을 들이켰다화면에는 유미의 사직서가 나오고 있었다미뤄둔 소설 작가의 꿈을 위해 퇴사한 것이다그녀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뒤이어 서른셋의 유미와 과거 스물셋의 유미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다서른셋의 유미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퇴사하려는 자신의 무모함에 불안해하고 있었다그런데 스물셋의 유미가 현재의 유미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서른셋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지루할  같았는데그래도 멋있는 포인트가 있네다행이다.”

 

스물셋 유미가 미래의 자신에게 던진 것은 쓰고 있던 연필도지우개도 아닌 따뜻한  한마디였다유미가 멋지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생각해 보니 유미는 누구든   있었다남들이 나한테 하는 말이라면 몰라도내가 나한테 하는  정도는 마음껏 선택할  있지 않은가하지만 나는 유미처럼  자신에게 멋지다고 말해준 적이  번도 없었다열여섯의 나라면 스물여섯의 나를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하고은연중에 생각했다불과 10 전까지만 해도 8,000원짜리 칼국수 하나를 두고 먹을지 말지 한참 동안 고민하고 있었으니까나는 유미를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과소평가하고 있는 걸까나도 유미만큼 나를 사랑해 주면 좋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워낙 장이 약해 먹는 욕심이 없었다그래서 먹고 싶은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먹는  나를 위한 나름의 사랑이었다하지만 무업기간이 길어질수록 나를 향한 사랑은 자주 흔들렸다. 8,000원짜리 칼국수 하나  먹는 것도 인색해져 있었으니까그뿐만이 아니었다나는 읽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 좋아하는 책을 팔아야 했고책을 팔기 위해  좋아하는 밑줄 긋기도 못하게 됐다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칼국수를 먹다 말고 휴지를 뽑았다눈물을 훔치듯 닦았다혹시나 싶어 모자를   다행이었다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골랐다.

 

사실 칼국수 하나를 두고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할 정도로 돈이 없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어쩌면 그래서 내가   지도 모르겠다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두려워서 벌써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는 내가 안쓰러웠던 거다돈이  떨어지면 어떡하지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면 어쩌지이렇게 20대를  보내버리면 어쩌지설령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이  거라는  알고도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막상 끝을 생각해 보면 이러나저러나 비슷한  같다돈이  떨어지는 것도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20대가 끝나는 것도 사실 그렇게 최악은 아니지 않나오히려 나한테 있어서 최악은 소중한 사람들이  곁을 떠나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는 사랑과 자유즐거움 없는 삶을 사는 거였다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불안해했는지  것도 같았다돈이 떨어지는  두려운   자유가 사라질까 봐서였고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웠던 이유는 즐거움 없는 인생을   같아서였다

 

모니터 너머로 유미의 결연한 표정이 보였다그녀는 결국 회사를 나왔고나처럼  오랜 기간 무업 생활을 보내며 글을 쓴다나는  드라마의 결말을 알고 있다유미는 끝끝내 바라던 작가가 되고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어  것이다하지만 나는 이번 회차를 끝으로 그만 보기로 했다 여기까지만성공도 실패도 상상하지 않기로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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