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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Oct 25. 2022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그말만은

5월치곤 꽤 더운 날씨였다. 약속 장소는 홍대역 인근에 있는 스터디 카페. 15분 전까지 역에 도착하면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들떠 있던 찰나, 갑자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동아리 선배였다. ‘갑자기 이렇게 전화한다고?’ 졸업하고 나서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지라 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전화였다. 혹시 잘못 온 게 아닐까 싶어 나중에 연락드리겠다는 문자를 대신 보냈다. 무엇보다 코시국에 지하철에서 전화를 받기 조심스럽기도 하고. 보내기가 무섭게 답장이 왔다. 나한테 전화를 건 게 맞았구나.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어~ 수빈아'하고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듣자 하니 자기가 지금 홍대 근처인데, 내가 홍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아 선배, 오랜만이에요. 저는 약속 장소로 걸어가고 있어요. 거기서 봬요. 네~”


오마이갓..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분명히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볼 텐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백수라고 말하면 되나? 괜히 한가하게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볼 텐데, 이것저것 한다고 말할 순 없잖아. 무급노동자라고 말할까? 아니지, 차라리 일하는 백수라고 말하면 이해하실까? 아이고 머리야.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고, 5분도 채 안 돼 선배가 왔다. 오랜만이라는 말과 함께, 예상했던 질문이 들어왔다. “요즘 뭐하고 지내?” 아아.. 보통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내게는 정말 어려운 말이다. 제대로 각 잡고 이야기하기엔 서사가 길고, 짧게 이야기하면 할 말이 없다. 아무 말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하지만 내 입에서 멋대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 저요? 저는 뭐.. 늘 그렇듯 정신없이 지내죠~ 요즘에는 창업에 관심이 생겨서요.”

“오 진짜? 멋있다. 역시 수빈이 너라면 그럴 거 같았어. 창업은 어떤 거 생각 중이야?”

“아무래도 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으로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젠장 제발 멈춰). 강의 들으면서 지원사업 알아보고 있어요.”

“와 대박이네!” (…)


그 뒤로는 무슨 말을 나눴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내 입이 방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창업에 관심있는 것도, 강의를 듣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떠벌리고 다니기엔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창업은 무슨 창업이냐고. 지금 너는 백수라고!!!!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창업이라느니 사회문제라느니, 겉멋 잔뜩 든 얘기를 왜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놨는지. 분명 그 선배라면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텐데, 아 망했다 진짜.



습관적 갈팡질팡


내가 직장인이었다면, 프리랜서였다면 얘기가 조금은 달랐을까. 적어도 입방정은 떨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회사 이름이랑 사무실 위치 정도만 얘기하면 되고, 프리랜서면 명함이 있을 테니 명함을 건넸을 것이다. 개인 사업자나 마찬가지니 내가 하는 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직장인도 아니고 프리랜서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프리랜서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계약을 통해 내 노동에 대한 급여를 제대로 받은 적은 없다(알바 제외).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모르니 당연했다. 프리랜서는 자신의 기술과 능력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일거리를 따내 오는 사람들이라는데, 나는 무엇으로 일거리를 따내 올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


실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나보다 훨씬 더 실력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건 확실했다. 프리랜서라면 한 번쯤 들어본다는 ‘크몽' 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나마 쉬워 보이는 ‘유튜브 자막 편집’이 최소 5,000원인데, 내가 여기서 일감을 얻으려면 단가를 1,000원 수준으로 낮춰서 팔아야 할 것 같았다. 프리랜서 시장은 원하는 게 확실했다. 가격이 매우 싸거나, 기술이 독보적이거나. 누구나 전자보다는 후자의 길을 걷고 싶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회사에 들어가 어느 정도 인맥을 쌓고 난 뒤에 프리랜서가 되기도 한다.


그런 내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퍼스널 브랜딩'이었다. 전문성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 관심 분야에서 원앤온리가 될 수 있다는 퍼스널 브랜더들의 말은, 막막했던 내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렇게 우연히 관련 영상을 하나 본 뒤로 알고리즘은 나를 ‘퍼스널 브랜딩’의 세계로 이끌었다. 직장에 다니지 않고도 나답게 일하며 먹고사는 법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이 무서운 속도로 내 앞에 쏟아졌다. 처음엔 “그래 이거야!”라고 외치며 퍼스널 브랜딩에 열광했다. 소속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퍼스널 브랜더들은 그들만의 네트워킹을 형성해 서로의 채널에 왔다 갔다 하며 콘텐츠 생산을 도왔다.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뭔갈 하려니 엄두가 안 났다. 뭘 해야 나도 저기에 낄 수 있을까? 끼워 주기는 할까..? 아무리 영상을 보고 브랜딩을 공부한다 한들 실전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실력 좋고 멋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이 만든 사이드 프로젝트는 디자인부터 힙하고 예뻤다. 분명 나와 같은 어중이떠중이들도 많을 텐데, 내가 보는 피드에는 왜 멋지고 있어 보이는 것들밖에 없는 건지. 허접하고 구린 퍼스널 브랜딩은 알고리즘의 선택조차 받지 못하는 걸까? 혼자서 먹고살려면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어느 정도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걸까? 뭘 하든 ‘있어 보여야 한다’는 점은 내게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나와 비슷한 수준의 팔로워 수를 갖고 있던 한 인친 분은 꾸준히 게시물을 올려 팔로워를 10배나 늘렸다. 분명히 엊그제만 해도 300명이었는데, 몇 주 뒤에 보니 3,000명이 넘은 것이다. 그의 전략은 ‘태그’였다.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소비한 후 리뷰와 함께 그들을 태그 하면, 인플루언서들이 그 게시물을 자신의 스토리에 공유하는 방식이다. 인플루언서는 자기 콘텐츠에 대한 리뷰를 모을 수 있고, 인친 분은 자신의 게시물을 홍보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윈-윈 전략인 것이다.


그와 나의 결정적 차이는 행동에 있었다. 나는 갈팡질팡 고민만 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는 뭐라도 했다. 만약 우리가 표류 중이라면, 나는 지도만 하염없이 바라본 거고 그는 노를 계속 저은 것이다. 먼저 배를 타고 떠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배가 살살 아파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질투나 느끼는 모습이라니. 오랜만에 연락 준 선배한테 겉멋만 잔뜩 든 말을 내뱉질 않나.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남을 질투하고, 시샘하고...



안 되면 되는 것부터


‘나'를 팔아야 하는 시대이건만, 나는 팔기는커녕 무엇을 팔아야 할지 생각조차 안 했다. 게으른 사람이라고 하기엔 분명히 나는 무언갈 하고 있긴 하다. 영상 편집도 하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네트워킹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직장인도 아니고 프리랜서도 아닌, 어중이떠중이다. 이 암울한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김연아 전 피겨 선수의 명언이 떠오른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그렇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뭘 해야 하냐고,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냐고 말할 시간에 뭐라도 하는 게 문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찾은 나름의 해결책은, ‘행동 리스트’ 만들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짤의 문구인 ‘안 되면 되는 것부터 하라'에서 영감을 얻었다. 걱정이나 고민이 떠오를 때마다 행동 리스트를 보고, 미션 클리어하듯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적어둔 행동에는 ‘부엌에 가서 물 한 컵 마시기', ‘화장실에 가서 양치하기', ‘책상 위에 있는 휴지 버리기' 등이 있다.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쉬운 행동이어야 한다는 게 포인트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직장인도 아니고, 프리랜서도 아니다. 빠르게 현실을 직시하고 뭐라도 하는 게 최선이다. 생산적이지 않아도 좋으니,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일기를 쓰든 책을 읽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어차피 정해진 답이 없는 인생인데, 창업을 안 한다고 해서 그 선배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게다가 어쩌면 아주 높은 확률로 내가 한 말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으면 방법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게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움직이기'다. 아, 유튜브는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위험이 있으니 행동 리스트에서 제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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