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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Oct 25. 2022

서투름과 능숙함

백수의 생존 키트 : 서투름에 감사하기

“Error 404, page not found”“아이 씨, 또야?”


내가 만든 홈페이지 이곳저곳을 클릭하다 오류 창이 떴다. 두 번 세 번 확인했는데도 가끔씩 오류가 생기는 탓에, 구석구석 클릭하는 습관이 생겼다. 돈을 주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직접 만든 홈페이지는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류가 생긴다. 것도 웹디자인이나 코딩에 문외한이라면, 인내심 말고는 답이 없다.


"이번에는 또 뭐야, 색인 생성 문제? 색인이 뭔데?"


처음은 누구나 다 서툴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서투를 수밖에 없는 분야가 있다. 나한테는 그게 ‘기술'이다. 하루하루 발전하는 과학기술 덕에 평생 배우게 생겼다. 어제는 도메인이었고 오늘이 색인이라면, 내일은 또 다른 문제의 키워드가 나올 것이다. 이런 내 서툰 모습이 동네방네 알려진다면, 내 홈페이지는 분명 머지 않아 해킹 당하고 말겠지.


모종의 책임감을 느끼며 한참을 검색하다 보면 그놈의 색인이 무엇인지, 오류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데만 종종 반나절을 쓰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내가 오류를 고치려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나 싶고 씁쓸한 기분이 든다. 코딩을 배울 걸 그랬나? 내가 개발자였다면 이런 오류쯤은 능숙하게 해결했을 텐데.. 가끔은 서투른 내가 미웠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온다고, 나의 서투름을 다시 보게 된 적이 있다. 장애인권단체와 협업을 하며 영상 제작을 맡게 된 일이었다. 당시 나는 영상보다 글에 더 익숙했다 보니, 돈을 받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서투른 나의 영상 촬영과 편집 실력이 드러나는 게 부끄러웠다. 사진과 영상을 요리조리 짜깁기 하고, 기껏해야 마우스 클릭 소리나 뿅 소리로 효과음을 넣은 정도의 영상을 보여줘야 한다니!


심지어 야외 촬영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와 동료는 한껏 심각해졌다. 실내 촬영도 해본 적 없는데 야외 촬영이라니… 우리, 잘할 수 있을까? 급한 대로 사전 탐사를 다녀왔다. 당일 날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서 어떻게 촬영을 할지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늘 그랬듯, 실전은 순탄하지 않았다.


“어 쌤들 가시면 안 돼요! 다시 이쪽으로 오셔서 앞으로 걸어가 볼까요?. 아니아니, 이쪽 보시면 안 되고 자연스럽게 말씀 나누면서 걸어가시면 돼요! 네네 그렇게요. 10초만 찍겠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 주세요!”


첫 야외 촬영을 하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나같이 서투른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하세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촬영에 필요한 컷은 10초인데 사람들은 5초도 안 돼서 지나간다는 걸 그때 체감했다. 밖에서 찍는 것도 처음, 사람들을 데리고 연출하는 것도 처음. 모든 게 처음이었고 우리는 서툴렀다. 계획대로 짠 것은 출연자들의 동선에 따라 수시로 엎어졌고, 우리는 그때그때 회의하고 결정해야 했다. 그렇게 동료와 함께 출연자들을 통솔하고 찍고를 몇 시간… 촬영을 끝마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어찌어찌 촬영과 편집을 끝내고 완성된 영상을 공개하는 날, 단체 활동가들은 영상을 보고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재미있어요 쌤들! 어떻게 이런 영상이 나왔어요?" 당연히 나와 동료는 어안이 벙벙했다. 영상이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완성되어 내심 불안했으니까. 거창하지 않은 영상에 비해 과찬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거기, 거창하지 않음에 핵심 비결이 있다는 걸 매니저 님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제 주변 30대 활동가들은 20대 시절을 그리워해요. 그때의 서투름이 그립다면서요. 일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숙련도가 쌓이거든요. 근데 그런 능숙함은 한 번 생기면 버리기가 어려워서, 쌩눈을 갖고 일하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 늘 하던 방식으로 일을 대하니 색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가 어려운 거지. 쌤들이 만든 영상에는 반짝이는 생기가 있어요. 진짜 딱 이때만 할 수 있는 느낌?"


생각보다 능숙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진 서투름이 누군가에겐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능숙함에는 없는 것이 서투름에는 있었으니까. 그건 바로 ‘성장'이다. 능숙하면 문제를 맞닥뜨릴 일이 잘 없지만, 서투르면 매 순간 문제를 마주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애써 해결해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폭발적인 성장, 그것은 오직 서투르기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든 게 익숙함이 아닌 서투름 덕분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조금은 나의 서투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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