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를 마친 엄마와 안방에 누워 있는 아빠를 거실로 불러들였다. 화이트 셔츠와 검정 슬랙스를 입고,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 앞에 섰다. 살짝 당황한 기색의 아빠와 메모장을 펼치는 엄마를 보며 외쳤다. “지금부터 우리 집 막내딸 서수빈의 밥벌이 투자 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를 하기까지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점을 먼저 말할 필요가 있겠다. 원래 당돌한 성격이라느니, 마음먹으면 못 하는 게 없는 성격은 아니니까. 주변에서 취업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 20대 중반의 나이다 보니, 발표를 듣고 부모님이 혹여나 속상해할까 걱정이 됐지만, 사실 발표는 응어리가 터진 것에 가까웠다. 나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엄마 아빠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알아서도 척척 잘 해내는 자식이 아니라고. 부모 앞에서 30장짜리 PPT를 보여주는 자식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내 의도는 그랬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집 가족사를 빼놓을 수 없다. 엄마와 아빠, 언니 세 사람의 관계를 보며 자랐으니 성격도 그에 맞게 변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중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언니였다. 언니는 솔직했다. 자기감정과 욕망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갈등이 많았다. 또 이른 나이에 자취를 시작하는 등 혼자서 헤쳐온 게 많다 보니 독립심도 강했다. 부모님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성격에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하는 성격의 소유자. 그게 내가 보는 언니였다. 반대로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언니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자랐다 보니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계산이 빨랐다. 내 감정, 내 욕망보다 부모님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데 능숙했다.
한때 언니도 나도 잠시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언니는 제빵을 배워 파티시엘이 되고 싶어 했고, 나는 근사한 파티와 행사를 기획하는 파티플래너가 되고 싶었다. 실제로 언니는 이과 계열 수험생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진로를 바꾸고 제빵 학원에 다니는 등, 한 발짝 꿈을 향해 나아갔다. 반대로 나는 부모님에게 설득을 당했다. 대학교 대신 파티플래너 전문학교를 가고 싶다던 내게 엄마는 대학교를 먼저 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언니와 나는 이렇게 달랐다. 내 입장에서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는 언니가 참 멋져 보였다. 하지만 부모님 입장에서 언니는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정작 길을 바꿔 부모 속을 태우는 자식이었다. 반대로 나는 그들 말에 따라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갔으니, 상대적으로 신경이 덜 쓰이는 소위 착한 자식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잘 해내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실수가 두려운 사람이 되니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 모두 내겐 멀게 느껴지건만, 대화를 할수록 부모님이 내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느껴졌다. ‘수빈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우리가 예상하는 적당한 범위 내에서 제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가겠지’라는 은연 중의 기대가. 정작 나는 직장도 결혼도 가정도 딱히 원하지 않는데 말이다.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잦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많았다. 어느 날은 요즘 일이 없어서 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느 날은 은퇴하고 싶다가도 너희 자매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아빠를 존경했고 아빠의 일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자영업자인 아빠가 더 일찍이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빨리 독립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반대로 엄마는 취업난이 없었던 시절에 일을 시작해 꽤 수월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삼성 인턴직에 붙어 좋은 경험을 했고, 지금 들어도 누구나 아는 튼튼한 중견기업에 입사해 우수한 성과를 거두며 살아온, 그야말로 워커홀릭 직장인이었다. 자신의 커리어에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업계도, 직업관도, 취업시장도 전혀 달랐던 엄마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걱정거리를 말해도 될지 고민이 됐다.
거실 TV에 USB를 꽂고 리모컨을 눌렀다. 로딩 중이던 화면에 슬라이드 쇼가 켜졌다. “막내딸 수빈의 밥벌이 프로젝트 투자설명회”라는 제목이었다. 진동벨처럼 몸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해야 했다. 통장에 남아 있던 돈이 10만 원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모님께 상황을 얘기하고 약간의 지원을 받는 거였으니까. 부모님의 속을 태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나를 이해해줬으면 했다.
발표는 10분 동안 진행되었다. 내가 꿈꾸는 삶과 밥벌이에 관한 이야기를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하려고 했다. 대학 때 배운 SWOT 개념을 활용해 30장에 걸쳐 나의 강점과 약점, 외부의 기회와 위협 요인을 설명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 월별 계획을 짜서 보여드렸다.
발표가 끝나고, 부모님이 박수를 쳤다. 초등학교 학예회 이후로는 받을 일이 잘 없는 부모님의 박수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수빈이 네가 그동안 이거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너무나도 잘 느껴져서 믿음이 간다. 기꺼이 지원해주고 싶네.”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깜짝 놀랐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지도 않고, 앞으로의 계획도 두루뭉술하다고 느껴서 뾰족한 질문을 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 아빠는 꽤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영상이니 콘텐츠니, 모르는 게 많아서 부족하지만 뭘 하든 응원하고 싶고 옆에서 지원해주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 내 곁에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도와달라는 말에 실망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앓이 하던 내 지난 모습이 떠올랐다.
눈 딱 감고 저질러도 막상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나에게는 있어선 안 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부모님을,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혼자서도 잘 해내는 자식’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살아온 걸지도. 가족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들이 내게 보낸 박수는 박수받는 백수생활의 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