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처음으로 남미 국가 간 국경을 넘는 날이었다. 목적지는 아르헨티나의 푸에르토 이과수(Puerto Iguazú). 브라질의 포스 두 이과수(Foz do Iguaçu)와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바로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여기에 파라과이까지 더해져 무려 세 국가가 이과수 폭포를 삼등분하고 있다.
이과수 시내 간 거리는 15km 이내로 굉장히 가까워서 버스나 택시를 타면 금방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국경을 넘는 버스 막차는 오후 여섯 시다. 막차는 괜히 불안해서 막차 바로 앞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기다린 지 삼십 분. 역시나 버스는 예정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 남미 여행에서 기다림에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푹푹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그조차 쉽지가 않다.
기다린 지 한 시간. 정류장의 사람들은 수차례 오고 가고, 나와 동행만이 정류장의 붙박이 신세가 됐다. 기세 좋게 메고 있던 배낭은 보기 좋게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온몸의 수분이 쑥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곁에 있던 아주머니들의 버스가 곧 올 거란 도닥거림에 오 분, 십분, 기다림은 쌓여만 가고 있었다.
기다린 지 한 시간 반.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되어 택시를 불렀다. 이쯤 되니 빨리 숙소에 가서 샤워를 하고 쉬는 값으로 이 정도 택시비는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맞은편에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지나간다. 한 아주머니 말로는 곧 돌아서 여기로 올 거란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다린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택시비를 굳힐 수 있어 잘 된 일이라 여겼다.
그땐 몰랐다. 아직 더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금세 돌아온 만원 버스에 배낭을 앞뒤로 메어 성인 남자 두 명쯤은 거뜬한 덩치를 욱여넣었다. 주저앉고 싶은 몸에 억지로 힘을 주고 뻗대어 서서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며 휘청이다 보니 어느새 출국 사무소다. 일곱 명쯤 되는 여행객들과 줄지어 내려서 출국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나와 보니 애증의 버스는 나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원래는 기다려주는 게 맞았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웅성웅성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떠나간 버스를 어찌하랴.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택시에 탄 사람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언제 올지도 모를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그쯤 되니 그저 오늘 안에는 가겠지, 하며 반 포기 상태가 되어 외려 마음이 놓였다.
결국 삼십 분이면 거뜬히 갈 거리를 세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지나올 수 있었고, 두 번 낸 버스비와 택시 취소 수수료를 제하니 결론적으로 몇천 원 아끼고자 땡볕 아래 그 고생을 하며 국경을 넘은 셈이 됐다. 지친 몸을 질질 끌고 숙소에 도착하니 그 휴식이 너무 달다. 시원한 물을 그 자리에서 한 통 비우니 피로가 씻은 듯 가셨다. 고생 뒤에 찾아오는 행복감이라서인지 농도가 더욱 짙었다.
샤워를 하고 지난 세 시간의 허물을 벗어 개운해진 몸으로 수영장 앞 비치 체어에 앉아 과자를 까먹으니 머리맡의 별처럼 잠이 노곤노곤 쏟아진다. 오늘은 단잠을 잘 것 같다. 우습게도 비극 같던 시간도 지나고 나니 그럴 수 있었던 일이 되고, 하나의 에피소드가 된다. 그저 고생을 하더라도 그 고생이 언젠가 끝나기는 할 것이라는 믿음과 그 뒤에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보상만 있다면. 어쩌면 모든 일은 그럭저럭 견딜만할지도 모른다.
국가를 이동한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환전을 하는 일이다. 이과수 국립공원에 가기 전 환전소에 들러 브라질에서 쓰고 남은 헤알(Real)과 한국에서 가져온 미국 달러를 아르헨티나 페소로 환전을 했다. 고작 환전소까지 걸어왔을 뿐인데 뽀송했던 몸이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됐다.
브라질에 이어 아르헨티나 이과수의 날씨는 초주검이다. 바깥으로 나서자마자 들이붓는 불볕더위와 그에 상응하듯 줄줄 흐르는 땀. 놀라운 건 이 더위에 나는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것만 같은데 어떻게 저리 멀쩡할까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현지 사람들이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더위에 혀를 내두르며 이과수 폭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의 규모는 브라질의 3-4배쯤 되는데, 워낙 넓어서 국립공원 내에서 트레인을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 내에 전부 둘러보려면 하루를 온전히 다 쓴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국립공원 안에는 폭포 위아래로 난 길을 따라 수십 개의 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헷갈릴 것 없이 하나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폭포가 퐁퐁 샘솟듯 나타난다. 하늘까지 자란 나무 틈새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다리를 따라 폭포 바로 앞을 지나가기도 한다. 찜통더위에 뜨끈해진 콜라로 마른 입을 축여야 했지만, 들려오는 폭포 소리가 이과수의 사악한 더위를 그나마 잠재워 준다.
악마의 목구멍 전망대로 이어지는 철제 산책로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삐그덕 삐그덕 우는 소리를 낸다.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길을 따라 걸으면 폭포의 색다른 면을 만날 수 있다. 곧 닥쳐올 일은 모른다는 듯 강물은 잔잔히 흐르고 물 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큼직한 물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천천히 헤엄치고 있다. 나무들은 하늘에 가 닿았고 구름은 눈높이에 동동 떠있다.
하늘과 닿은 듯한 주위 풍경에 감탄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 있는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심스레 다가서니 상상도 할 수 없는 면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굉음이 귓전을 때리고, 떨어짐과 동시에 하늘로 솟아나는 물보라가 눈 앞을 흐린다. 아까의 잔잔했던 강물이 이제는 거센 소용돌이가 되어 거대한 입을 한껏 벌린 악마의 목구멍을 때리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이름에 걸맞은 웅장한 모습이었다.
폭포는 멈춤 없이, 잠깐의 쉼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돌진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많은 강물은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흘러가는 강물만큼이나 생각이 끊임없이 불어났다.
얼른 시원한 강물이 내 더위까지 씻어가 버렸음 싶었다. 우비를 입어도 소용이 없을 만큼 속옷까지 다 젖어버린다지만, 뜨거운 햇빛에 젖은 옷이 금세 말라버린다고들 했다. 투어 자체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스피드 보트는 백이면 백의 만족도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으니 노란 지프차가 나타나 기다리고 있던 관광객들을 실었다.
지프차는 정글을 지난다고 했다. 앞에 선 가이드가 이 곳에 서식하는 생물들에 대한 설명을 스페인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글에 사는 동물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그저 이 숲 어딘가에 살고 있을 동식물에 대한 설명일 뿐이었다. 혹시나 원숭이 한 마리라도 보일까 싶어 목을 쭉 빼내고 두리번대던 고개는 한참이 지나서야 실망을 안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째 날이 흐리다. 새파랬던 하늘에 먹이 끼었다. 하필 지금 비라도 오면 어떡하지, 생각하는데 어느새 선착장에 다다랐다. 보트에 타기 전 구명조끼를 입는 그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하며 소지품을 나눠 주는 비닐 백에 집어넣으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고 보트에 올라타자 굵은 빗방울은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파라찌에 이어 두 번째 보트 투어, 두 번째 폭우였다. 보트는 쏟아지는 비에 질세라 앞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얼굴이 따갑고 눈앞이 보이질 않았다. 손잡이를 꼭 쥔 손등조차 따가웠다. 보트의 속도가 더해져 거세게 몸을 때리고 지나가는 빗줄기에 보트에 앉은 사람들은 괴성을 질러댔다.
얼굴 전체를 휘감아 흐르는 물줄기에 겨우 찡그려 뜬 눈을 옆 사람과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둘러보니 다들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이다. 빗소리에 옆 사람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한 마디를 해도 외치듯 해야 했다. 폭삭 젖은 서로의 꼴이 우스웠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이 읽혀 웃음이 나왔다.
보트는 폭포로 수도 없이 달려들었다. 투어의 마지막 타임이기도 했고, 비가 와 아쉬울 관광객들을 배려하는 듯했다. 캡틴은 사람들의 긴장감을 조이고 푸는 데 능숙했다. 폭포의 앞에서 들어갈 듯 말 듯 주변을 뱅뱅 맴돌다가 마치 빨려 들어가듯 폭포 속으로 돌진한다. 보트가 폭포로 거침없이 발을 내달릴 땐 다 함께 소리를 내질렀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과수 폭포 물을 온몸으로 맞아볼까.
온몸이 흠뻑 젖었다. 비 때문인지 폭포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착장에 돌아온 뒤에도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쫄딱 젖은 생쥐꼴을 하고 국립공원을 빠져나오는데 출구를 지키던 직원이 우비를 건넸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따뜻함을 안고 돌아간다.
비에 젖어 찝찝한 엉덩이를 가까스로 버스 의자에 걸치고서도 웃음이 삐져나왔다. 나에게 이과수는 최고였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Tip>
*이과수 간 국경을 넘을 때 보통은 동행자가 세 명 이상일 경우 택시를 타라고 추천하곤 한다. 하지만 경험상 두 명만 되어도 웬만하면 택시를 타는 게 낫다. 국경에서 버스가 기다려주지 않는 경우 기다림이 길고 생각보다 돈도 얼마 아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은 크게 로우 트레일(Low Trail), 어퍼 트레일(Upper Trail), 악마의 목구멍, 산 마르틴 섬 네 군데로 나눌 수 있다. 제대로 보려면 하루 온종일을 국립공원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브라질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서 악마의 목구멍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악마의 목구멍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둘의 느낌이 매우 다르니 여유가 된다면 두 군데 모두 가 보길 추천한다.
*스피드 보트 투어는 국립공원 입구에서 트레인 역으로 가는 길 중간에 나오는 인포 센터에서 예약하면 된다. 거기가 투어 예약을 받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