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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n 12. 2020

잊혀져 가는 마음을 붙잡고 싶은 어느 늦은 밤

이래서 독서가 좋다

 호주에 와서 첫 직장은 NGO단체에서 사회 복지사로 일하는 거였다. 유학생활을 마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면접에 갔다. 크리스마스 포함해서 잠깐 3개월 정도 일하는 거였다.  혹시나 너무 떨려서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고 갔다. 다행히 매니저가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고 며칠 뒤 난 캐주얼 잡이 아닌 풀타임으로 일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호주에서는 파트타임, 풀타임, 캐주얼 - 계약직에 가까움 - 일하는 포지션이 다양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부터 무슨 일을 할까 오랫동안 고민했었고, 여러 번 진로계획을 바꾸었던 내가 사회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5년으로 돌아간다.  


크로아티아 코출라 섬에서 우연히 만난 문구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를 간 건 일본이었다. 대학시절 한 달 동안 전도여행을 떠났다. 우리 팀은 주로 일본에 있는 양로원과 고아원을 방문하며, 준비한 공연을 했고 봉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그 기간 동안 내 진로를 정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떠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가 살아오면서 겪지 못했던 진정한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고아원을 방문할수록, 그리고 소외된 노인들과 눈 마주치며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다. 고민 많던 청춘의 시절에 가장 평온했던 기억은 바로 그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그렇게 살고 싶어 졌다. 내 마음이 기쁜 일을 하면서 말이다. 남을 섬기는 일이, 타인의 필요를 돌보는 일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큰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오늘 밤 읽은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으며 다시 한번 그 마음을 되새겼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내가 추구하는 마음은 잃지 말자고.



" 종종 우리는 행복이 소유에 달려 있는 것처럼 살고 있네. 그러나 나는, 소유 때문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네. 진정한 기쁨, 행복, 내적 평화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줄 때 생긴다네." 헨리 나우웬



대학시절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늘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 "공부해서 남주자" 었다. 난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참 좋았다. 남에게 주면서 내가 비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채워지는 이치를 서서히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호주에서도 그 배움은 계속되었다.


호주에서 사회 복지사로 일할 때, 표면적으로는 내가 그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지만, 그들과 함께 하다 보면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암에 걸려서 결국에는 돌아가신 장애인이 계셨는데, 그 누구보다 밝으셔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그분 덕분에 난 슬프지만 그 슬픔을 아름답게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늘 밝은 계열의 옷을 좋아했던 그분의 장례식에는 검은 옷을 입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분을 위해 참석한 사람들은 다 밝은 컬러풀한 옷을 입었다. 장례식 순서에 여러 스피치가 있었는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가 본 장례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제일 아름다운 장례식이었다. 마지막에는 색색의 풍선들을 하늘로 올리는 걸로 마쳤는데 그 풍선들을 보면서 슬프지만 이렇게 행복한 장례식도 있을 수 있구나,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세계 여행 중 미국 사라토가에서 동생이랑 같이 운동하러 간 곳에서 본 글.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마음에 와닿는다.


육아에 집중하는 시기라서 내가 꿈꾸던 일들을 하는 날이 언제 올까, 하는 의구심도 자꾸 생기고 자신감은 그저 바닥으로만 향하다가 문득 책에서 읽은 문구에 다시 불붙는다. 나 아직 끝나지 않았어, 혼자서 조용히 내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때가 올 거라고.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 중간중간에 이렇게 상기되고 기억하다 보면, 또다시 내 꿈을 펼칠 날이 내게로 다가올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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