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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l 11. 2020

곰돌이와 눈을 마주친다

외로움, 계절이 바뀌듯 그렇게 흘려보낸다

 브런치에서 여러 번 읽어본 내용 중에 하나는 글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슬럼프에 관한 글이었다. 사실 글쓰기를 늘려면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내용을 많이 읽었기에 그렇게 노력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현실은 아주 많이 달랐다. 어쩌면 내 마음과 반대로 글을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들 둘 키우는 육아 생활의 반복 가운데서 뭔가 창조적인 글 내용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해야 하나. 에세이는 보통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글을 쓸만한 내용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체크해보니, 마지막으로 새로운 글을 쓴 게 5월 20일이다. 딱 한 달 전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글이 나에게 다가와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 걸 느낀다.

남편이 생일을 맞은 나에게 자유시간 3시간 정도를 줘서 혼자 동네 쇼핑센터에 나왔다. 애들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제대로 밥을 먹은 게 정말 몇 개월 만인지 모른다. 혼자 식당에 가 일본 라면을 호로록 먹고, 커피맛이 맛있는 카페가 아닌 혼자 오래 앉아 책을 읽어도 눈치가 안 보이는 카페를 찾아 독서를 하고 있었다. 책을 한참 읽다가 문득 고개를 올렸다. 무언가 하고 눈을 마주친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도서관 창문에 큰 곰돌이 인형이 혼자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그 혼자 있는 곰돌이를 보는 순간, 웃기지만 곰돌이가 나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외로움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는 확신이 내 안에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내가 글을 써야지 노력할 때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써야 할 글이 나에게 다가온다.


나와 눈 마주친 곰돌이. 이 글을 쓰게 해 준 녀석


2005년부터 시작된 해외 생활로, 외로움은 줄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고 생각을 많이 한 주제이기도 하다. 사실, 해외생활을 하기 이전에 한국에 살 때도 외로움이란 감정은 늘 내 안에 있었다. 2017년에 장기로 세계여행을 하게 되면서 늘 떠돌아다니니 외로움이란 감정이 증폭되기도 했다. 2018년, 아는 이 한 명도 없는 골드 코스트에서 6개월 살았던 시간에도 외로움은 내게로 찾아왔다. 외로움은 결국 어디에 있든지, 나를 찾아왔다. 외로움을 없앤다는 건 결국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 살 때는 나와 같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음에 외로움을 느꼈다. 이상주의자라는 코멘트를 종종 들었다. 내가 정말 유난스러운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호주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타지에서 살면서 느끼게 되는 이방인으로서 외로움을 경험했다. 세계 여행을 끝낸 후, 시드니에 다시 돌아온 후 여행 후유증을 느꼈다. 익숙한 곳에 사는 것이 오히려 익숙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많은 이들은 자녀들을 생각해서 이제 한 곳에서 정착하는 삶이 옳은 답이란 걸 우리에게 거듭 강조한다. '안정감'을 제공하는 게 부모의 역할 중에 하나라며. 그 말이 옳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단지 진정한 안정감이 과연 환경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지 생각이 든다. 시드니에 돌아오면 왠지 모르게 허했던 내 맘이 더 나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하며 돌아왔나 보다. 시드니에 돌아와서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고는 난 당황스러웠다.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다시 온 거 같아서 말이다.


캐나다 몬트리올 식물원에서


외로움과 싸울 필요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그 감정에 대해 실패감을 느끼지 않기로 한다. 벗어나지 못한다고 실패하는 것이 아님이 알기 때문이다. 매번 반복되는 것 같은 것 같아도 이 시기를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은 외로운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나를 마주한다. 외로움이란 감정 자체가 그리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겨울이 지나면 자연스레 봄이 찾아오듯이, 외로움도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떠난다. 외로움을 껴안을 만큼 안다가 시간이 되면 놓아주면 될 거다.  세계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것도 다 나쁜 게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도 그렇게 내 품에 안는다. 곰돌이를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것만으로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제 다시 내 품에서 놔줄 수 있다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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