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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Sep 23. 2020

절박함이 두려움을 밀어내는구나

남편의 어깨 탈골과 주행 연습의 연관성에 대해서

 남편의 어깨가 또 말썽이다. 습관성 어깨 탈골이 있는 그는 종종 어깨가 빠지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좀 심하게 넘어져서 그 충격이 좀 컸다. 당장 아들을 픽업해야 하는 상황인데 운전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겨우 겨우 우리 동네에서 일하는 남편의 사촌 동생한테 부탁해 아들을 데리고 왔다.

오늘 운전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몇 년 동안 미루고 미뤘던 일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자신이 없는 일이다. 두려움도 있다. 운전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그냥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다. 난 그렇게 하지 못할 것만 같다. 자신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면허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완벽한 장롱면허이다. 남편이 어깨가 탈골되고 아들을 픽업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되니 이제는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착해, 피하지 말고 부딪혀야 한다고 되뇐다. 그런 결심을 하자마자 주행 연습을 받을 연락처를 찾아 전화 문의까지 하니, 몇 년 동안 묵혀있던 그 무언가가 쏙 내려가는 기분이다. 오랫동안 밀려서 쳐다보기도 싫었던 숙제 하나를 이제야 시작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미련스럽게 회피했던 이유를 무엇일까. 왜 이리 자신이 없었던 걸까. 모르겠다. 어느 영역에서의 내 자신감은 평균 이하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이 없고 마냥 두려운 게 있다. 쑥스럽지만 나에게는 운전이 그 부분 중에 하나이다. 그냥 이유도 모른 채 난 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짓고 선을 그어 버린다. 그러고 나니 더욱더 자신감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채워진다.

하지만 절박함은 이 두려움을 이긴다. 어깨 탈골로 아픈 남편과 돌봐야 할 두 아들이 있다. 시드니에서 독박 육아를 하며 사니, 도움을 구할 사람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이 되니 그전에 없던 용기가 생긴다. 웃기지만 그 자그마한 용기가 생기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른다. 5-6년 전쯤에 주행 연습을 했다. 다시 시작이다. 우선 첫째 아들이 가는 데이케어까지만 왔다 갔다 주행 연습을 할 예정이다. 이게 뭐라고 그래도 오랜만에 내 자신에게 뭔가를 투자를 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오전까지만 해도 암울했던 내 마음이 비가 개인 후의 청량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위기가 기회가 되었구나 싶다. 물론 지금 당장은 남편이 아들 둘을 봐줄 수 없어 주행 연습을 하진 못하지만, 연습을 할 마음을 먹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게 나에겐 큰 두려움 일 수 있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중의 하나가 내겐 운전이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내가 두려워하는 혹은 겁내고 있는 걸 넘어서고 싶다. 그게 운전이든, 수영이든, 다시 일을 시작하든 거든 조금씩 뛰어넘으면 내 삶이 조금 더 뿌듯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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