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한나 Aug 07. 2020

별을 보았고 노래를 듣다가 알게 되었다

엄마와 소녀 그 사이에서

 빨래를 걷으러 잠깐 뒤뜰에 나왔다. 큰 타월을 걷으며 우연히 밤하늘을 보았다. 빛나는 별들이 하나둘씩 내 눈에 들어온다. 20대 대학생 시절, 호주에 처음 왔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시드니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에 우선 자원봉사를 하면서 6주 정도 지냈더랬다.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이름마저 생소한 와가와가라는 마을에 떠나야 했다. 시드니도 낯설었는데 7시간 걸려 도착한 한적한 마을은 나에게는 참 생소했다. 자원봉사 온 다른 나라 사람들과 숙소 생활을 하며 지냈는데 영어가 서투른 나에겐 힘든 시간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영어 소리에 스트레스성 위염이 도지곤 했다. 그 삭막했던 시간들을 보내며 어느 밤, 우연히 와가와가의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시골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그 순간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 별들이 나에게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위로를 해주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 이후로 종종 밤하늘의 별들에게 위로를 얻곤 했다.

와가와가에서처럼 별들은 그대로인데 난 뭐가 그리 변했을까.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흘러 시드니에서 두 아들의 엄마가 된 난, 혼자 있는 찰나를 조금이나마 누리려고 천천히 빨래를 정리했더랬다. 그러다가 우연히 별을 보았다. 별은 그대로인데. 엊그제 같은 20대라는 청춘은 어느새 저만치 흘러갔고, 30대는 눈 깜빡하는 사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정말 끝부분을 걸어가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40대라는 새로운 길에 도달할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엄마로 사는 게 싫은 것도 아닌데 종종 이렇게 마음이 허하다. 별은 그대로인데 내 꿈은 어디로 간 걸까. 지금도 꿈이 없는 건 아닌데 또 그렇다고 정확한 꿈을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답은 모르겠다.

2년 넘게 세계 여행을 하며 동적인 삶을 살다가 둘째 아들을 낳고 계속 집에만 있는 정반대의 삶을 살다 보니 그때 자유롭게 세상을 보던 시간들이 정말 있었나 싶다. 코로나 19로 인해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세계 여행했던 그 시간들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디지털 노마드 가족으로 삶을 살다가 시드니에 다시 정착해서 살다 보니 그 차이가 굉장히 커서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가 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상념에 빠지곤 했는데 요새는 이상하리 만큼 지나간 청춘에 대해 생각이 많이 다. 그래서 오늘도 별을 보며 와가와가를 기억한 게 아닌가 싶다.

20대의 난, 나 다운 건 열정이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라고 말해야 할까. 겨우 말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마음이 소망하는 그 무언가를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하겠다. 집안 뒷정리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며 노래를 들었다. 전람회의 '세상의 문 앞에서'라는 노래인데 오늘 우연히 처음 듣게 되었다, 마치 운명처럼.


"난 꿈꾸며 살 거야
세상의 문 앞에서 쓰러지진 않아
나 눈감는 날에 내 노래를 들으면서
후회는 없을 거야 내가 택한 길은 영원한 걸"


이 노래가 나다운 삶을 상기시켜 주었다. 꿈을 꾸며 살아야 나일 수 있다고. 그건 매일 반복되는 엄마의 삶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내 안의 소녀와 같은 마음이다. 그 마음은 소소한 꿈을 꾸게 만들고, 일상의 찰나에서 새로운 글을 창작하게 만든다. 사실 요즘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하고 지냈는데 그 시간이 가을 낙엽 부서지듯 건조했다.

밥을 차리고 또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말리고 접고 하는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시간들 속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엄마의 세계가 끝나면 시작되는 소녀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까만 밤 별을 보는 그 마음이 그렇고, 모유 수유하면서 글을 쓰는 마음 또한 동일하다. 아줌마가 되어도 포기할 수 없는 소녀의 마음이다.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바로 이 소녀를 내가 놓아주지 않아서이다. 그 소녀에게 이끌려 용기 내어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되었고, 자주는 아니어도 글을 올리고 있다. 구독자 수가 그리 많이 늘지 않아도,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 계속 글을 올릴 수 있는 건 글 쓰는 자체가 나에겐 꿈이고 기쁨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라는 세계를 만나 느리지만 글을 쓰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꿈을 키우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언젠가는 나만의 책도 만들 수 있기를.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써 내려가려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안의 소녀가 행복해하는 그 모습을 보며 오늘도 쓴다.

나이가 들어도 꿈꾸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노래처럼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은 바로 꿈을 꾸는 삶이니까. 할머니가 되어도, 내 안의 소녀와 함께 나이 들고 싶다. 그때도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소녀와 이야기하고 싶다.

이전 09화 곰돌이와 눈을 마주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