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를 걷다 보면 꽃집에서 예쁘게 포장된 꽃이 아닌, 종종 보게 되는 들꽃에 더 눈길이 간다. 20대 때에는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들꽃이, 30대 후반이 된 지금 더 내 눈에 들어온다. 장미, 튤립, 수국처럼 유명한 이름이 아니라 이름 조차 모르는 꽃들인데 그 삐가뻔적한 꽃들보다 매일의 위로를 가져다주는 건 바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다.
포르투의 공원에서 봤던 들꽃
세계 여행을 하면서 점점 더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이 좋아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느낌으로는 뭔가 꽃에게 감정이입을 한 거 같기도 하다. 어렸을 땐, 막연하게 대단한 성공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들꽃
이름은 몰라도 길거리 지나가는 이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안겨다 주고, 때로는 기대치 않았던 위로를 주는 그 들꽃처럼 살고 싶어 졌다. 어쩌면 아직은 너무나도 부족한 내 글이 소수의 독자에게 (소수정예라고 칭하고 싶군요) 딱 들꽃만큼의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멋들어지게 포장할 기술도 없어서,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의 내 감정을 전달할 뿐이다. 글쓰기 실력이 늘어서 어여 내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기를.
몬테네그로 코토르의 들꽃
나이가 들수록, 변하는 게 많다.피부는 더 건성이 되어가고 아이 둘을 낳고 나니 허리와 손목이 돌아가며 말썽이다.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20대 때 사진을 보면 놀랄 때가 있다. 너무도 앳된 모습이어서 말이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나이 든다는 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나이 듦으로 얻게 되는 부분이 더 많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20대의 불안과 망설임은 서서히 파도에 밀려 저 멀리 떠나가고, 예전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들이 될 수 있는지 보는 눈이 생긴다.
가족을 이루는 것, 하루를 살아내는 것, 소소히 기록하는 것, 고마운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들은 별 거 아닌 게 아니다. 누군가 그랬다. 나중에 죽기 직전이 되면,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걸, 혹은 그때 일을 더 많이 할 걸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아마 내가 왜 그때 더 가족과 시간 보내지 않았을까, 왜 사랑한다고 더 표현하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더 하지 않겠냐고. 그럴 것 같다. 미래의 난 그런 미련을 갖지 않을까 싶다.
드브로브니크의 들꽃
세월이 흐르니 더 분명해진다. 포장지를 걷어내고 단단한 흙 안에서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힘을 보태 줄 그런 투박한 들꽃이 되고 싶다. 미련 없이 사랑해내고 싶다.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Do you love the world?" 세상을 사랑하냐는 질문은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이 질문이 내 머릿속을 계속 서성거렸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하는가.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꽤 존귀한 마음이라는 거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내 꽃밭이 더 풍성해질 거라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