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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23. 2020

기차에서 마주친 오해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에서 포르투 가는 기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가 기차 예약을 했을 때 좌석을 잘못 예약해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 보는 곳으로 앉게 됐다. 아기가 있어서 아무래도 눈치도 보이고 해서, 마음속으로 우리 앞에 아무도 앉지 않았으면 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한 커플이 맞은편 좌석에 왔고 그 둘은 나와 아기를 보자마자 얼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눈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기차는 떠났고, 난 솔직히 말하자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단지, 그 커플 때문만은 아니라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이 쌓였기 때문이리라.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데, 나는 왜 꼭 미안해야 하고, 눈치를 봐야만 할까, 하는 생각에 약간 서러웠다. 물론,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 아기를 예뻐해 주고 더 친절하게 대해 주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때때로 레스토랑에 가면 유모차를 끄는데도 앉아있는 의자도 비켜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비행기에 타면 아기를 보자마자 ‘하필이면’ 이란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다. 암튼, 곳곳에서 겪었던 일들 때문에 내 감정이 상해있었다.


동 루이스 다리.  여기 풍경이 너무 예뻐서 5번 정도 갔던 기억이 난다.   포르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


기차가 출발하고 아기가 너무 보채서,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식당칸으로 갔고 난 혼자 앉아 있었다.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가 멀미를 하기 때문에 역주행하는 자리에 앉아 힘들어서 남편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은 것이다. 난 당연히 괜찮다고 했고, 그 여자는 내 옆에 앉았다.

아뿔싸. 내가 엄청난 오해를 했구나. 이 여자는 멀미 때문에 그 좌석을 보자마자 표정이 안 좋았던 건데 내 관점에서 생각해서 우리 때문일 거라 짐작하고, 혼자 속으로 화내고, 혼자 속으로 화를 삼켰던 거구나. 너무 미안했고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람인가 다시 느꼈다.


크리스탈궁 정원. 아이들과 가기에 좋은 공원으로 두오로강의 경치를 높은 곳에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공원
위에서 언급한 공원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이번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이 누군가의 행동과 말을 내 기준에서 판단해 버리고, 오해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품지 못했던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든,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문 사람들이든 말이다. 내가 더 품을 수 있는 순간을 어이없는 오해들 때문에 얼마나 놓쳤을까.

2006년, 대학시절 마지막 여름방학에 인도로 배낭여행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3등 칸 기차를 탔는데, 리서치했을 때 인도에서 3등 칸은 안전하지 않다, 절대 타지 말아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긴장 속에서 기차를 탔더랬다. 기차가 출발하고, 인도 사람들이 우리 근처에서 큰 소리로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삭막하고 해서 너무 무서웠고, 무슨 말들이 오가는 건지 몰라 답답했었다. 다행히 그곳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인도 대학생이 있었고, 그가 우리에게 친절히 설명해줬다. 위에도 앉는 자리인데 우리 친구들이 누워서 자고 있어서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는 거라고 말이다. 아래 좌석에 앉아있던 대학 후배와 나는 사과를 했고, 그 인도 학생이 통역을 해줘서 인도 아저씨들과 대화를 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무섭다고 느껴졌던 그 기차 안이, 인도 여행 중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공간이 되었다. 그 정 많은 아저씨들은 그리 여유가 있지도 않을 텐데, 후배와 나에게 짜이 티를 사주기까지 했다. 인도 대학생이 없었다면 너무 아름다웠던 사람들을 우리는 아직도 무서운 사람들로 기억하겠지. 오해가 이렇게 무섭다.


클레리구스 교회. 우연히 걷다가 들어간 곳인데 신비롭고 아름다웠던 교회. 우연히 발견한 곳이 좋을 때가 많다. 그게 여행의 묘미인듯 하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 어렸을 땐 위대하고 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 때론 날 비판하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정말 멀었다.

 

화려한 것보다 이렇게 꽃으로 자연스럽게 꾸민게 포르투 같았다. 나에겐 포르투가 이런 느낌.
흐린 날의 포르투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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