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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16. 2020

엄마는 공사 중

샌프란시스코

 어떤 홍콩영화에서 그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사 중에 기억나는 건 ‘california dreaming’라는 부분이다. 중경삼림이었던가, 요즘에는 이상하게 가물가물해지는 게 많아진다. 참 좋아했던 영화였는데 말이다. 암튼, 그 음악으로만 듣던 캘리포니아주의 한 곳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 주말이었고, 남편이 일을 하지 않을 때 최대한 많이 관광을 하는 게 우리의 계획이라 많은 곳을 다녔다. 다니면서 느낀 건, 참 이곳은 꿈꾸는 사람, 비전이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구나, 하는 거다. 먼저, 유명한 곳 중에 하나인 Fisherman’s Wharf의 Pier 39을 만든 분의 짧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파일럿으로 세계여행을 한 뒤에, 자신의 비전이었던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만나는 장소를 이뤄냈다. 설명되어 있던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 Simmons saw something no one else saw.’ 이 말이 내 가슴에 두고두고 남았다. 비전을 이뤄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거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못 보는 것을 미리 볼 수 있는 사람. 그는 버려진 공간을 보면서 Pier 39을 미리 보았고, 꿈꿨고, 결국에는 이뤄냈다. 한 사람의 꿈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장소에서 추억을 만들고 무수한 꿈들을 꾸는가. 멋지다, 꿈꾸고 그걸 이뤄내고야 마는 사람들.


점심 먹으러 가면서 2층에서 본 Pier 39의 모습
우연히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문구를 읽으면 뭔가 보물찾기에 성공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또 그런 사람의 집념으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금문교를 만든 이가 그렇다. 이 이야기도 무심코 걷다가 다리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는 걸 읽었다. 그 또한 이 다리를 짓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다리는 조수를 견딜 수 없다고 했고, 경치를 망칠 것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2000번이 넘는 소송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샌프란시스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콘이 되었는데 그런 반대가 있었단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지만, 이건 비단 금문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 파리의 에펠탑에 갔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수많은 이들이 경치를 망칠 거란 이유로 에펠탑 건설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지금 들으면 참 재밌는 이야기구나, 하겠지만 예전의 비전너리에겐 커다란 벽이었으리라.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짓는 것 같은 일은 아니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친절함을 실천하는 것, 지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견뎌내는 것 또한 우리의 꿈을 이뤄가는 길이 아닐까.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50년 뒤에 우리 가족의 역사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역사가 조금은 따뜻하게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샌프란시스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인 금문교


샌프란시스코는 이렇게 꿈을 속삭이는 도시였다. 어느 곳에 가나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꿈꾸는 사람이 모이는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자들도 많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쁘게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길 건널목에 앉아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다. 보는 순간, 목이 매어 버렸다. 그 조그마한 아이는 이 추운 겨울날 도대체 어디에서 자는 걸까. 우리 아들은 따뜻한 방에서 잘 때, 누군가의 아이는 이 차가운 길바닥을 헤매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이 장면이 마음에 남아서 여행할 때마다 종종 생각이 나곤 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주변의 힘든 이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조그만 꿈들이 내 안에 차곡히 쌓이기 시작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있다. 남편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사이, 아기를 돌봤는데 그 날따라 아기는 아침부터 계속해서 징징거렸다. 1시간 넘게 유모차를 끌고 걸어 다녀도 낮잠도 자지 않았고, 포기하고 놀이터에 갔는데 잘 놀다가도 뭐가 맘에 들지 않는지 다시 징징거렸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다시 남편이 돌아왔고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면서 우는 아들의 손을 살짝 때렸다. 이 낯선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사람들 북적 거리는 거리에서 못난 엄마가 되고 말았다. 예전에 결혼하기 전, 길거리에서 지나가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혼내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냥 참고 집에 가서 혼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말이다.

지금 내 모습은 예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길거리에서 자기감정도 통제 못하는 엄마가 되어 버렸다. 여러 핑계를 들 수 있지만 어찌 됐건 잘못이었고 내 실수였다. 난 내가 원하고 상상했던 따스하고 온화한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실패감에 사로잡혔고 내 자신에 대한 화를 감당치 못했다. 남편은 눈치를 챘는지 아기를 데리고 호텔로 먼저 돌아갔고, 난 처음으로 ‘혼자’ 이 샌프란시스코를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아기를 보는 동안 계속 서 있어서 다리가 아팠지만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계속 멍하게 걸어 다녔다. 뭐가 잘못된 건가, 난 왜 내가 원했던 엄마가 되지 못하나, 우리 아기가 특히 유별난 걸까, 이 여행의 고단함이 아기를 힘들고 지치게 하고 나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걸까, 무수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공사 중인 거리를 스쳤다.


걷고 또 걷다가 마주한 공사 중이었던 거리


문득, 그런 생각이 내 뇌리에 스쳤다.

나도 엄마로서 공사 중인 거라고. 부서지고, 깨어지고 그러면서 다듬어지고 있는 거라고. 공사 중인 게 실패는 아닌 거라고. 더 나은 거리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처럼, 나도 더 나은 엄마로 만들어져 가는 거라고. 처음부터 완벽한 엄마는 없고, 점점 더 좋은 엄마가 되어가는 거라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걷고 또 걸었다. 그래, 실패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책감에 휩쓸리지 말고, 공사 중인 거라고 결론을 내자. 내 마음을 보듬어서 이 감정을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응답하라 시리즈 1988년도 편에서, 성동일이 딸에게 자기도 아빠가 된 거 처음 아니냐면서 이해해달라고 하는 그 장면이 공감이 되고 좋았는데 딱 그런 기분이었다. 나도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 되본 거 아닌가. 이 세상의 아기들아, 우리들도 엄마가 된 거 처음이란다. 조금만 이해해주렴. 엄마도 사람이란다. 엄마도 실수를 많이 한단다. 너희들이 우유를 흘리고 과자를 흘리는 것처럼 우리도 때론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한단다. 그런 우리들을 너그러이 용서해주렴. 엄마도 너희들을 통해 배우고 고치면서 그렇게 매일매일 더 나아지고 있어. 우리 서로 천천히 기다려주자. 기다림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육아라고 느껴지는 건 우연이 아니겠지.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나온 Lombard Street
 Painted Ladies,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해서 유명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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