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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20. 2020

유모차는 내가 밀어줄게

포르투갈 리스본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계획은 오클랜드에서 런던까지 노르웨지안 항공 (Norwegian air)으로 10시간 비행 뒤, 런던에서 리스본을 TAP 항공으로 가는 거였다. 노르웨지안 항공은 처음 타 보는 거고, 게다가 장기 비행이라 걱정이 좀 되었다. 조금 망설였지만 한번 시도해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만족으로 바뀌었다. 비행기도 드림라인이라 최신식이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다행히 아들도 잘 자고, 우리도 정말 만족했던 비행이 되었다. 아이러니하지만 2시간 40분 걸리는 리스본 가는 비행기에서 아기가 너무 울어서 장기 비행보다 더 힘들었다.


우리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창가에서 보였던 맞은편 풍경


포르투갈은 미국과 시차가 나서 시차 적응하는 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다. 물론, 어른들은 아마 이틀에서 삼일이면 가능하겠지만, 아이들 경우에는 더 오래 걸린다. 아들이 계속해서 낮에 통잠을 자고, 새벽 1시에 멀쩡히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리스본에 도착해서 일주일 동안 집에서 나간 시간은 저녁을 먹으러 나간 게 유일했다. 나도 모르게 아기가 적응하는 시간을 나에게 맞춰서 예상했던 거 같다. 조금 더 기다려주는 게 맞는 데 말이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놓치기 쉬운 게 바로 ‘아기의 속도 기다려주기’ 이지 않나 싶다. 나는 또 급하게 아기가 빨리 적응해주길 바랐고, 나는 다시 배웠다. 기다려 주는 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리스본 엽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프램28이 있는 언덕길


우리 컨디션이 멀리 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서 동네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갔다. 골목길에 있던 로컬들만 보이는 식당이었는데, 아담하고 왠지 사람들도 좋아 보여서 앉자마자 좋은 선택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이제 밥을 먹으려고 하는 데, 아들은 식당에 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유모차를 끌고 식당을 나가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걸었다. 밖에서 밥을 먹으면 이렇게 번갈아 먹어야 하는 때가 대부분이라서 우리는 익숙하게 늘 그래 왔듯이 그날도 한 명은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식당에서 우리 주문을 받았던 아주머니께서 내 쪽으로 걸어 나오셨다.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바디 랭귀지로 나에게 자기가 유모차를 밀 테니 너는 밥을 먹으라고 표현하셨다. 한 번도 그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먹먹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게 내가 경험한 리스본 사람의 첫인상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따뜻한 배려심 덕분에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외식하면서도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날의 레스토랑. 찍은 사진이 없는 줄 알았는데 우연히 발견했을 때 반가움이란.


여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때부터 이미 느꼈다. 여행하면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광경들, 멋진 건축물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결국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아직도 리스본을 생각하면 그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유모차를 밀면서도 아들을 귀여워해 주시며 방긋 웃으시던 그 아름다운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주는 감동이 더 오래 남고 더 깊게 남는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세상에는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여행이지 싶다.  저녁 산책을 했을 때 로시오 광장에 갔었는데 그 광장 맞은편에 큰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보다 더 기억에 남은 건, 건물 앞에 사람들이 줄 지어 있던 모습이다.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던 거다. 지나가면서 잠깐 봤는데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 따뜻하게 포옹하며 격려하는 모습이 사실 건물보다 더 아름다웠다.


로시오 광장에서 봤던 건물, 왼쪽에 사람들이 음식제공을 받고 있다
Alfama, 여기서 들리던 길거리 음악이 너무 좋았다
자꾸만 사진찍고 싶게 만드는 거리들
리스본은 아기자기 하면서 뭔가 그림같은 도시로 기억된다
마냥 걷기만 해도 거리가 너무 예뻐서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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