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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27. 2020

진정한 색을 찾고 보니

스페인 카나리섬

 혼자 비치에 누웠다. 라스 마스 데 그란 카나리아(스페인의 카나리 섬 중의 하나)에 오고 나서 4일 만에 처음이다. 남편이 아들을 봐줘서 잠깐의 휴식이 허락됐다. 포르투갈의 포르투는 생각보다 날씨가 추웠는데 이곳은 내가 선호하는 그런 여름 날씨다. 25도 정도 되는 온도로, 많이 덥지 않아 비치에 누워있기에 딱이다.

여행하면서 SNS를 시작한 나는 핸드폰을 늘 끼고 살게 되었다. 전에 그렇게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나도 똑같이 그렇게 된 거 같다. 블로그를 쓰고, 가족 인스타그램 동영상 편집하고 관리하는 데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현재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동영상에 어떤 사진들을, 코멘트를 넣을지 생각하며 현재를 놓치는 날 자주 발견했다. 기록이 여행보다 한참 밀리게 되니, 언제 그걸 다하지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그 날 내가 누웠던 라스칸테라스 비치


그래서 오늘 비치에 누워 핸드폰을 보지 않기로 하고 그냥 눈을 감고 누웠다. 눈을 감으니 파도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고,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여러 가지 잡념들도 파도 소리로 채워져 갔다. 그런 순간이 필요한 거 같다. 눈을 감고, 손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보지 않고 그냥 자연을 느끼는 순간 말이다. 마음의 평화를 선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게 꼭 여행일 필요는 없다. 집의 베란다에서 보이는 하늘을 볼 수도 있고, 아기랑 가는 공원에서 풀을 멀뚱히 바라보는 시간일 수도, 커피 한 잔 마시는 잠깐의 여유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그리 긴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으니, 엄마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가질 수도 없다. 그 시간을 길지 않지만 적당히 갖고 나니,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아, 주객이 전도되기 전에 다시 중심을 잡자. 무슨 말이냐 하면, 기록하는 것이 ‘주’가 아니라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경험하는 바로 ‘오늘’이 ‘주’인 것이다. 글을 올리기 위해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걸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록이 우리 현재를 담고 있지 않다고 해서, 늦어진다고 해서 밀린 과제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카나리 섬 길거리. 섬 자체가 작아서 걸어서 다 볼 수 있다


내 글이 나 다울 수 있을 때, 그게 가장 잘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난 그리 똑똑하지 않기에 깊은 철학적인 사고를 써 내려갈 수도, 또한 미친 듯이 웃기지도 않기에 남들을 깔깔거리게 할 만한 글도 쓸 수도 없다. 다만, 난 나 다운 글을 경험에 한해서 솔직히 쓸 수 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받아들인 건 20대 후반 정도부터이다. 그 전에는 내가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고, 나중엔 내가 원하는 나로 살고자 몸부림쳤다. 그러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나인걸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마음의 진정한 평화를 느꼈다. 다른 이들이 원하는 나로 살 필요도, 내가 원하지만 절대 될 수 없는 나로 살 필요도 없이,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세상의 색깔이 더 보였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던 이 세상의 색깔이 펼쳐졌다. 아마 그건 내가 내 색깔을 제대로 찾았기 때문일까.


당일치기로 갔던 아마도레스 비치


가끔 이 시대 청춘들을 생각한다. 청춘들의 특별함이 있지 않은가. 그들의 도전, 열정, 방황, 아픔. 그 청춘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받아들이고 찾았으면 좋겠다. 이건 여행하는 30대 아기 엄마가 20대 초반의 어떤 앳된 대학생에게 말해 주고 싶은 거다. 물론 마음이 청춘인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음이 청춘인 사람들은 어떤 나이임에 상관없이 기쁨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70대 노인이어도 마음이 청춘인 사람과 대화하면 20대 청춘보다도 큰 열정을 느낄 수도 있으니, 나이 제한을 두는 건 절대 아니다.


당일 치기 코스 중 하나 였던 Maspalomas, 바다와 사막이 공존하는 곳. 사막의 목마름과 바다의 파도소리가 같이 있는 역설적인 공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자기다움을 찾았을 때 가장 잘 꿈을 꿀 수 있으니 이 사회의 기준과 버거운 주변의 기대감에 짓눌려 자기 자신의 색깔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 것도 알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의 기로에 있는 청춘들이 있다면, 그 시절을 지나온 청춘 선배로서, 애정 어린 응원을 하고 싶은 거다. 나도 어느 때에는 포기했었고, 때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버티면, 그리고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일어서면 지금 당장은 어디인지 모르지만 그 어딘가로부터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아름다운 색깔의 카나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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