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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13. 2020

와이키키는 언제나 옳다

하와이

 시드니에서 떠난 지 약 10시간 만에 하와이 와이키키에 도착했다. 우리가 에어 비앤비로 예약한 집은 비치에서 걸으면 15분 정도 걸리는 작고 아담한 방 하나짜리 집이었다.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남편은 일을 해야 했고, 난 졸린 상태로 엄청 흥분되어 있는 아들을 돌봐야 했다. 아마 다시 여행을 한다면, 그렇게까지는 무리하지 않았을 텐데 남편도 나도 꼭 그렇게 해야 되는지 알고 제대로 쉬지도 않고 첫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첫날부터 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디지털 노마드 생활과 우리가 겪는 현실은 많이 다를 수 있구나. 어느 정도는 알았지만 조금은 잘못 생각했다. 계속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장소만 바뀔 뿐, 결국엔 난 육아를 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에는 남편은 일을 하고 난 육아를 하고, 주말에는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일주일 내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거 같다. 처음 일주일은 적응 기간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거 같다.

며칠 뒤 아기를 잠재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불평하면서 시간을 흘러 보낼 수도 있고,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걸 감사할 수도 있다. 두 가지 옵션이 내 앞에 있고 결정은 내게 달렸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왜 여기까지 와서 피곤하게 아기까지 힘들게 하면서 살아야 하나 불평을 하다가 내 태도를 바꿨다. 똑같은 육아를 세계를 보면서 할 수 있는 건 힘들더라도 감사하고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받는 걸 선택하기보다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아기를 재우면서 기도하기 시작하니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하와이, 우리 노마드 여정의 시작


사실,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 기대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이 있다면 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가 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있어서 힘들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유연함을 배우고 있다. 이상과 현실에는 항상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그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그걸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인 듯싶다.

그렇게 며칠간의 적응 기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는 아이 없이 하와이에 둘이 왔을 때, 가장 좋았던 장소에 다시 가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하나우마 베이라는 곳인데 2011년에 갔을 땐, 한국 사람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던 곳이었다. 그래서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인가 했는데, 2017년에 다시 오니 여기저기 한국분들이 꽤 많이 보였다. 2011년의 기억으로 돌아가면, 이 곳에서 스노클링 한 기억이 하와이 여행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큰 바다 거북이와 같이 스노클링을 해 본 게 처음이었고, 형형 색색의 아름다운 물고기가 그렇게 많은 걸 본 적도 없었다. 물속에서 스노클링 하는 순간은 모든 소리에서 자유로워지고, 내가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물소리만 들렸다.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너무 황홀해서 다시 꼭 오고 싶었다.

30분 동안 버스를 타야 갈 수 있어서 우리 셋은 처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하와이에 도착한 지 며칠 안돼서 그런지 아기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30분 내내 징징거리거나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나처럼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이런 순간은  고통스럽다. 너무 민망하고 자기 아기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냐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날 비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남편이랑 번갈아 가면서 아기를 보는데, 내가 아기를 데리고 버스 뒤쪽으로 잠깐 갔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어떤 아주머니랑 우연히 눈을 마주쳤고 그때도 아기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 순간이라 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 그 아주머니께서 ‘It’s ok’라고 웃으면서 아주 짧게 말했다. 그런데 말투와 표정에서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날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 아주머니도 엄마였을 수도 있겠다. 근데 그 순간 내가 아기 때문에 심신이 지쳐있던 터라 나도 모르게 낯선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울컥했다. 울음을 애써 참았다. 아마 엄마들은 그 날의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에게는 별거 아닌 한 마디가 힘들어하는 엄마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했던 따뜻한 한마디였다. 아기를 낳고 나선 이 세상이 참 달라 보인다. 미안한 것도 많아지고, 고마운 것도 참 많아진다.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는 친절이 한없이 고맙다. 그래서 나도 낯선 이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고 싶다. 겉으로 보면 모르지만 속으로 지친 이들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친절 말이다.


하나우마 베이를 내려가며 찍은 사진
다시 찾은 하나우마 베이


하나우마 베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전처럼 영상 교육을 받고 베이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6년 전에는 햇빛이 가득해서 더 예뻤는데 이번에는 약간 구름이 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확실히 하나우마 베이는 햇살이 가득한 날 가는 걸 추천한다. 남편은 피곤해서 잠깐 쉰다고 해서 아들이랑 둘이 물가에서 놀고 여기저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장기 여행하기 때문에 짐을 줄이기 위해서 장난감이나 책을 많이 챙기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 하지만 하나우마 베이에서 물과 모래만으로도 몇 시간 잘 노는 아들을 보니, 역시 자연만 한 장난감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아기한테 얼마나 중요한지는 ‘엄마 냄새’라는 책을 통해 더 알게 되었다. 여러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자연에서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열게 하고,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아픔들을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자연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정서적으로 커서, 저자도 본인의 아이들을 주말마다 꼭 자연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다.


자연에서 놀다 보니 나도 아기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드니에서 정리한 아이 장난감과 책들에 미안한 마음보다, 지금 아들과 같이 누릴 수 있는 해변에, 앞으로 만날 세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더 지혜로운 선택임을 그 날 가슴 깊이 느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노마드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남편이 숙소에서 일을 하는 동안, 유모차에 아들을 태워 혼자 걸어 나가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매일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와이키키의 선셋, 다시 와도 참 좋은 곳이다. 물론 6년 전에 비해서 번화해진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 비해 어딜 가나 한국말이 들려서 깜짝 놀랐다. 맛집들도 이제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는 못 들어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이는 언제나 옳다. 핑크빛, 오렌지빛이 엉키다가 언젠가 보랏빛이 되는 그 와이키키의 선셋, 살살 부는 기분 좋은 밤바람, 맑고 투명한 물에 물고기들은 언제나 옳다. 다시 와도 언젠가 또 오고 싶은 하와이의 매력은 정말 끝이 없구나.


듀크카하나모쿠라군 일명 힐튼 라군이라고도 불린다. 아기가 놀기 최적의 장소. 물 밖에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고, 라군 옆에 비치도 있어 라군과 비치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곳.
내가 좋아라 했던 와이키키의 선셋, 엄청나게 활발한 아드님 덕분에 카메라는 꺼내지 못하고 모든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와이키키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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