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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09. 2020

우연히 디지털 노마드 연습을 하다

홍콩

 어린 아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 곳은 홍콩이었다. 2016년에 8개월 된 아이를 아기띠에 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홍콩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다녔다. 아기를 데리고 찌는 듯한 더위를 견디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아들과 처음으로 한 해외여행이었기에 더 소중했고 고생한 기억도 웃으며 추억되는 홍콩 여행이었다. 여름밤에 빅토리아 피크에서의 야경은 아름다웠고, 좁은 골목길에 숨겨져 있던 맛집들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우리 둘만 하는 여행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지만, 더 고생하는 만큼 더 웃을 일이 많았고, 가족이 다 함께 한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걸 느낀 여행이었다. 홍콩을 갔다가 한국에 가는 4주 동안의 스케줄이었는데, 그 몇 주 동안 남편은 중간중간 일을 하기도 했다.


비바람 몰아치던 빅토리아 피크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 남편은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불안정한 삶이라는 생각과 잘 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때 남편의 모습은 마치 날고 싶어 하는 독수리 같았다. 그런 남편을 날지 못하게 날개를 꺾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우리가 80대 노인이 되었을 때, 나의 불안함 때문에 남편의 꿈을 막았던 걸 후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결정을 지지하기로 하고, 믿기로 했다. 뒤돌아 보면,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고 계속 직장 생활을 했더라면 우리 가족의 삶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다.

갈림길이 연속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고, 우리는 어쩌면 더 힘든 길을 선택했고, 그래서 불안한 밤들을 지샜고 두려워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어두운 밤이 지나면 늘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이 뜨고 지듯이, 우리 삶은 오르락 내리락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남편이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고,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과 한국에서도 여행하면서 조금씩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페리를 타고 볼 수 있는 홍콩의 야경


남편은 시드니에서 태어났고 2017년까지 내내 호주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20대에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여러 상황 때문에 하지 못했고, 그걸 늘 아쉬워했다. 그러다가 홍콩과 한국을 여행하면서도 일을 종종 할 수 있었던 걸 기억하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그렇게 여러 가지를 리서치하던 중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을 꺼냈다. 자기가 찾아보니 자기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다. 나도 그 개념이 너무 신기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는 한글로 된 정보는 거의 없어서, 영어로 유튜브를 보거나 이미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가족들의 블로그를 읽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이게 가능한 일인 걸 알기 시작했다.


당일 치기로 갔던 마카오


디지털 노마드를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장소에 구애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일도 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은 인터넷이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들이 많다. 남편이 프리랜서처럼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한번 시도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시드니에서처럼  내가 아기 육아를 맡고, 남편이 일을 하면서 여행하는 삶을 계획하기 시작한 게 2016년부터이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지 상의했고, 시드니 물가와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더 나은 곳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우리가 언제 돌아올지, 어디서 다시 정착할지도 몰랐기에, 가지고 있던 차, 가구, 살림살이들을 다 정리했다.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3개월 정도 걸렸다. 대부분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팔았고, 주변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기부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때쯤, 미니멀리즘이라는 컨셉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는데 우리가 하기로 결정한 게 그 컨셉과 비슷했다. 가지고 있는 걸 줄이는 과정,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세계여행을 하며 다 가지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여행 떠나기 전에, 텅 빈 집을 바라본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내가 어떤 기분일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자신도 너무 궁금했었다. 내 모든 짐들을 다 정리한 기분은 과연 어떨까. 슬플까, 아님 허전할까.

내가 예상했던 그런 허한 마음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참 많이 홀가분했다. 아직도 그 날의 기분을 바로 어제처럼 기억한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오랜만에 느꼈던 그 자유로운 기분 말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오랜만에 진정한 행복감과 동시에 평안함을 느꼈다. 날아갈 것 같았다. 우리는 더 가지길 원하고 그걸 위해 많은 걸 희생하며 사는 데, 왜 아무것도 없이 세 개의 여행 가방만 달랑 남은 내가 그 전보다 더 행복감을 느꼈을까. 내가 원했던 삶은 더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게 뭔지 알고, 필요 없는 걸 내려놓는 거였나 보다. 그렇게 디지털 노마드 가족이 된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모험에 잔뜩 기대를 품은 채, 시드니를 떠났다.


텅빈 집에서 여행 가방과 찍은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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