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17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이다.
여름철 수박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태아 시절부터 수박을 무척 좋아했다는 나의 유전자가 아이들에게 잘 계승(다행스럽게도 둘 다 얼굴은 아내를 닮았다.)이 된 것인지, 우리 집은 수박 한 통을 사면 불판 위의 차돌박이 마냥 ‘있었어요? 아니 없어요.’와 같은 느낌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 덕분에, 나는 오늘도 수박을 자르고 있다. 오늘 우리 집에 온 수박은 6~7kg 중량으로, 씨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절한 편이다. 이 녀석을 고른 건, 나와 아내가 기억하는 수박 선별의 중요한 원칙, ‘줄무늬가 선명하며, 꼭지 상태가 탄탄하고 신선해 보이는 것’에 충실했기 때문이다.(꼭지 반대편 배꼽 부분이 작고 단단해야 된다는 의견도 더러 있는데, 사실 그건 경험상 잘 모르겠다.)
보통 수박을 사러 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이 수박 저 수박을 살펴보다가 결국은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방문 판매원이나 포교인처럼 수박에 ‘똑똑’ 노크를 하는 모습인데,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은 진정 수박 하나하나의 타격음을 구별할 수 있는지를. 그것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평균 이상의 청력과 음감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러한 우월한 능력이 없기에, 나의 기준은 언제나 줄무늬의 선명함과 꼭지의 건강함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과일을 잘 깎는 편은 아니다. 한번은 초등학교 실과 시간(지금의 기술·가정 정도로 알고 있다.)에 실기 시험 과목이 사과 깎기였는데, 당시 내가 깎은 사과는 시작할 때만 해도 탐스러운 부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시험 종료 즈음에는 자두 정도 크기의 투박하기 그지없는 다면체로 바뀌어 있었다. 이 때문에 껍질을 깎기 어려운 과일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아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사과 한 알을 껍질 채 베어 먹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과일을 굉장히 잘 깎는다. 사실 악기를 다루거나 머리카락을 깎는 일 외에 손으로 무얼 하는 대부분의 능력(만들고, 고치고, 그리고, 조립하는 일 등등)은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낫다. 그래서 대부분의 과일은 아내 덕분에 그 고운 속살들을 분에 넘치도록 즐기고 있지만, 수박만큼은 아내가 손질이 힘들고, 손목도 아프다며 내게 분발할 것을 명하셨다.
그렇게 나의 수박 깎기 도전이 시작되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언급하기도 지루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다음과 같은 루틴이 생겼다.
당연하게도 시원하게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수박을 물로 깨끗하게 씻는 것이 먼저다. 이후에는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도마와 수박을 올려두는데, 되도록 두세 장을 겹쳐 두는 것이 좋다. 처음에 한두 덩이를 자를 때는 못 느끼겠지만, 한 통을 다 자르고 나면 싱크대 주변이나 식탁 위가 과즙으로 흥건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수박 꼭지와 배꼽 부분을 매끈하게 잘라낸다. 이후에는 각자 방식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아는데, 나는 우선 수박의 정중앙을 가로로 자른다. 그다음 바가지 모양이 된 두 조각을 뒤집어서 속살 부분이 아래로 오게 하고, 각각을 다시 그 상태에서 4등분한다.
이후는 나름의 요령으로 체득한 방법인데, 칼날만으로 너무 정교하게 곡면을 만들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수박 속살이 울퉁불퉁해지거나 껍질과 제대로 분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약 속이 옹골차고 비교적 단단하게 잘 익은 수박이라면, 차라리 칼끝으로 껍질과 속살의 경계 부분을 옆에서 푹푹 찌르면서 점선 느낌으로 칼자국을 낸다. 그러면 어느새 가운데 부분만 살짝 껍질과 붙어 있는 알맞은 상태가 된다. 이때 손으로 요령껏 속살을 떼어내면 거의 대부분의 과육을 잃지 않고 껍질과 속살을 분리할 수 있다.(선뜻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나의 부족한 필력을 탓하시라. 원하신다면 다음에 사진이나 영상을 첨부하겠다.)
이후에는 수박 속살을 도마 중앙에 놓고, 식구들이 한입에 먹기 좋게 깍둑썰기를 한다. 이때 재미가 꽤 쏠쏠한 것이 있는데, 어설프게 큐브 모양이 되려다 만, 여남은 수박 조각들을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내 입에 쏙쏙 넣어주는 일이다.
위의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수박 한 통이 다 조각이 나 있고, 가지런히 잘린 육면체들은 통에 담겨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냉장고 속에 안착하게 된다. 이 통들이 이번에는 또 얼마나 빨리 비워지게 될지를 불안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나를 뒤로 하고서.
고생스러운 척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 손으로 자른 수박보다, 내가 자르지 않았음에도 내 입에 거저 들어간 수박이 훨씬 더 많았음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 장롱면허셨던 어머니는 무더운 여름이면 늘 시장까지 직접 걸어가셔서 아주 크고 무거운 수박 한 통을 사 오시곤 했다. 그리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주방에서 한참 동안 수박을 자르고, 껍질을 벗겨 반듯하게 깍둑썰기한 수박 조각 수백 개를 밀폐용기에 정성스레 담아주셨다.
지금도 여름날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선풍기를 틀어놓고 민소매 차림으로 허밍과 함께 피아노를 치시는 모습만큼이나, ‘수박 바보’인 아들과 식구들을 위해 주방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수박을 자르시던 뒷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하지만 그 수고와 고생스러움에 비해 나와 식구들은 너무나 빨리 수박을 흡입했고, 또 너무 자주 새 수박을 내놓으라며 어머니를 보채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다시 마트로, 시장으로, 청과물 가게로 가셔선 그곳에서 제일 컸을 것 같은 수박을 사 가지고 와, 앞서 말한 지난한 과정을 다시금 반복하셨다. 그게 주와 달에 몇 번씩 있던 일이었고, 나는 그렇게 어머니가 잘라준 수박을 먹으며 무수한 여름을, 유년을 비롯한 내 모든 지난 시절들을 더할 나위 없이 달고 청량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식구들을 위해 수박을 자르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냥 한 번씩 먹을 때마다 부채꼴로 잘라먹고 다시 넣어두면 될 것을, 굳이 고생스레 일일이 통에 담아주셨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내가 집에 없을 때, 무더위를 뚫고 집에 도착한 식구들이 시원한 수박으로 묵은 피로와 더위를 달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그 꽉 들어찬 밀폐용기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듬직하고 이뻐 보여서, 괜스레 혼자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이제는 나도 잘 아는 것이다. 비록 그 든든함이 채 이틀을 넘기지 못한다는 게 문제지만.
아까 수박을 자르는 과정만을 이야기했는데, 마무리도 중요하다. 껍질은 물기를 잘 털고, 오래 두면 벌레가 꼬이니 수박을 자른 당일에 바로바로 버린다. 남은 수박 껍질로 김치나 무침, 피클을 담그는 분도 있다지만, 나는 재주가 좋지 못해 대부분 버리는 편이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로 그것을 버릴 때마다 새삼 놀라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껍질의 무게다.
보통 6~7kg짜리 수박이면 껍질 무게가 2.5kg 정도에 이른다. 어림잡아 3분의 1이 넘는 것인데, 수박 몸통에 담긴 그 달콤한 무엇만큼이나 겉을 감싸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은 무게감을 가진 셈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맛보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본연의 것에서 극히 일부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다 누리고, 두루 경험해 보았다고 섣불리 자신하는 것인지도.
이런 개똥철학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나는 내일도 나서야 한다.
수박을 사러, 그리고 수박을 자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