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18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덥다.
그것도 아주 많이.
2025년의 여름을 이야기할 때 이 두 줄을 빼놓을 수 있을까? 뉴스에선 2018년 이후 가장 더운 여름이라곤 하지만, 우린 늘 바로 앞에 마주한 그해의 여름을 우리 생에 가장 더운 순간이라 여겨 왔던 것 같다. 지구는 애석하게도 계속 뜨거워지고 있고, 우린 또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다시금 지구를 후끈하게 만들 낯 뜨거운 실수와 낯 두꺼운 안이함만을 반복하고야 말겠지.
아름다운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냉소와 회의는 잠시 내려두고,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물건, ‘선풍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여름에 선풍기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냐고? 글쎄, 확실한 건 최근 들어서 ‘에어컨’이라는 강력한 존재에 밀려 예전만큼 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1980년대생인 내게, 어린 시절 무더운 여름을 견디게끔 해주던 것들은 얼음과 부채, 모기장과 찬물 샤워였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절대적 우위를 점했던 것이 바로 ‘선풍기’다. 얼음을 씹을 때도, 부채를 부칠 때도, 모기장 속을 뒹굴거리거나, 찬물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욕실을 나온 직후에도 언제나 그 모든 상쾌함을 최대로 끌어올려 주었던 건, 선풍기 날개에서 불어 나오는 살랑거리는 바람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거실에 에어컨이 설치되기 전까지, 선풍기는 우리 집에서 냉감(冷感)을 전해주는 거의 유일한 물건이었다. 당시 총 두 대의 선풍기 중 한 대는 보통 거실에 뒀었고, 나머지 한 대는 TV가 놓인 안방에 두곤 했는데, 그때만큼은 남매간에 아무리 다툼이 있고, 부모님에게 크고 작은 반항심이 들끓을지라도 결국은 선풍기가 있는 곳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들게 되는, 자력(磁力)과도 같은 선풍기의 놀라운 힘을 여름 내내 목격하곤 했다.
그러한 추억과 습관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에어컨보다 선풍기가 더 친숙한 편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뒤나, 어쩌다 한낮에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거실 바닥에 누워 반쯤 감긴 눈으로 몸을 뒤척일 때, 그리고 잘 먹지도 못하는 매운 음식을 먹고서 쩔쩔매며 손등으로 땀을 훔칠 때면, 선풍기가 전해주는 그 곰살맞은 실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물론 에어컨이 선사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청량하고도 뽀송한 공기의 기운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선풍기를 좋아하는 건, 설령 조금 허술하고 어설플진 몰라도, 도리어 그렇기에 은근하고도 꾸준히, 오래도록 곁에 둘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주 읽는 과학잡지를 보니, 선풍기의 원리가 설명돼 있었다. 그 내용은 꽤 흥미로웠다. 선풍기가 일으키는 바람은 실제로는 시원한 게 아니라고 한다. 선풍기의 바람이 뜨거운 공기는 위로, 차가워진 공기는 아래로 보내는, 이른바 대류 현상을 일으키고, 그것이 공기를 순환시켜 우리가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공기 자체를 냉각시켜 온도를 낮추고, 직접적으로 습도를 조절해 상쾌함을 안겨주는 에어컨의 쿨한 능력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대신 우리 몸 주변에 있는 체온보다 낮은 온도의 공기를 우리 곁으로 슬그머니 보내 준다는, 선풍기의 그 소박하고도 단순한 원리가 나는 제법 친근하고 미덥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선풍기 같은 이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전원을 켜자마자 삽시간에 냉기를 내뿜는 에어컨처럼,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좌중을 사로잡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유형의 사람도 참으로 멋지지만, 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저 서로가 가진 온도와 기운을 조금씩 주고받으며, 갑작스러운 진전이나 전환은 없을지라도 차츰 서로에게 어울리는 흐름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그런 선선하면서도 느긋한 바람 같은 이를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순풍을 넉넉히 맞고 싶다면, 무엇보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그나저나 체온보다 주변의 공기가 더 뜨거울 때는 아무리 강풍을 틀어도 선풍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아무리 센 바람도 우리 바깥의 무엇까지는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럴 땐 곧바로 에어컨을 트는 방법도 있겠지만, 곳곳의 창문을 열고서 선풍기를 회전으로 틀어둔 채, 잠시 주변의 공기가 식어가길 차분히 기다리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싶다. 한 번쯤은 그런 미련스러운 여유를 가져도 될 만큼, 여름은 길고 기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뺨에는 선풍기 바람이 스치고 있다. 주절주절 이어지는 문장들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는 내게, 부담스럽지 않은 미풍이 다음과 같이 말을 거는 것만 같다.
‘꼭 지금 모든 걸 마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여기서 계속 잔바람을 보내 주겠노라.’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