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만두

물건백써 #21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by 숲일생활


프라이팬을 꺼낸다. 인덕션을 켜고, 식용유를 몇 바퀴 두른다. 30초 정도가 지나자, 올려둔 프라이팬 위로 온순한 열이 올라온다. 냉동실에서 꺼내둔 만두를 팬 위에 두세 주먹 올리는 순간, 기름이 튀며 마치 드럼 롤 같은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진다.


그렇다. 오늘 점심은 군만두다.



난 아이들에게 종종 만두를 구워준다. 특히 요즘처럼 여름방학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는 빈도도 잦아진다. 사실 나는 찐만두를 무척 좋아하는데, 아이들이나 아내의 입맛은 군만두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져 있어서, 혼자 먹는 게 아니고서야 우리 집 식탁 위에 오르는 만두는 대부분 군만두다.


개인적으로는 해태에서 나온 고향만두를 가장 선호한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자주 해주셨던 만두 브랜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크기와 형태가 적당하다. 어른인 나에게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편이고, 아이들이 호호 불며 한입씩 베어 물기에도 딱 알맞다. 왕교자나 동그랗게 말린 모양의 만두에 비해 아담하기 때문에, 떡국이나 만둣국을 만들 때나 찌개의 사리로 쓰기에도 부담이 적은 편이다. 심지어 굽든, 찌든 조리 시간도 여타의 만두보다 짧아 간편하다.


그런데 한때 고향만두를 좋아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입맛이 왜 그렇냐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다른 회사에서 나온 만두들이 훨씬 고급스럽고, 맛도 뛰어나지 않냐는 반문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고향만두 애호가로서 장담컨대, 냉동만두로서 가장 알맞은 맛과 모양, 균형감을 가진 제품은 바로 고향만두라고, 애정을 듬뿍 담아 감히 말하고 싶다.


여하튼 오늘은 특히나 배가 고프다고 성화라서, 마음이 급하다. 스무 개 남짓으로도 모자라지 않겠나 싶어 프라이팬 한가득 만두를 넣었더니 더욱 더디게 익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불을 높일 수도 없는 것이, 만두 하나하나가 노릇노릇 잘 익으려면 중불이나 혹은 그것보다 약한 불에서 은근히, 차근차근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프라이팬에서 만두를 구우면, 어쩔 수 없이 중앙에 있는 녀석들이 빨리 익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뒤집어 가며 각각의 위치를 바꿔 줘야만 한다. 잠시 주의를 소홀히 해 중앙과 변방의 위치를 제때 바꿔 주지 않으면, 중심에 있던 녀석은 겉이 새까맣게, 변두리에 있던 녀석은 속이 냉담해지고야 마는, 마치 어설픈 인간관계의 말로와도 같은 아찔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맛있는 군만두를 완성하는 데는 조급함이 아닌 느긋함이, 그리고 어느 하나 등한시하지 않는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릴 땐 이런 걸 잘 몰랐다. 몹시 철없게도 어머니가 해주는 모든 음식이 그저 불 위에 올려두면 금세 익고, 뚝딱 만들어지는 줄만 알았다. 속까지 노릇하게 익혀 주시려는 걸 모르고, 눈대중으로 다 익은 거 아니냐며 배고픔에 어머니를 독촉했던 기억이 지금도 아이들에게 만두를 구워줄 때면 얼굴이 화끈거리게 떠오르곤 한다.


고작 냉동만두 하나 굽고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민망할 따름이지만, 그만큼 부모가 되고 하루하루 느끼는 감정이란 늘 고마움과 미안함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미 젓가락을 들고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팔자 눈썹을 하고선 언제 다 되냐고 묻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내게 묘한 압박감을 준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선 하나하나 골고루 익었는지를 확인하며 만두를 뒤집고, 또 위치를 바꿔 준다.


포장 뒷면이 권고한 시간을 살짝 넘기고선, 접시에 만두를 하나하나 올리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눈으로 보았을 때 딱히 덜 익은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몰라 노릇노릇 가장 잘 익은 녀석들을 아이들 앞접시에 올려놔 준다.


분배를 다 해주고 나니, 군데군데 뭔가 조금씩 굽기가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의 만두들이 남았다. 굽는 내내 프라이팬 앞에 서 있었는데도 이렇다. 아마 나의 관심이 부족했거나, 알게 모르게 내 눈길과 손짓이 조급했었나 보다. 그런 녀석들은 내 접시에 올려놓는다. 한입 먹어보니, 그래도 다행히 속은 그럭저럭 잘 익었다.


바삭해요, 맛있어요, 뜨거워요, 라며 묻지는 않았지만 듣기엔 마냥 행복한 아이들의 반응을 들으면서, 나는 다음엔 더 맛있는 군만두를, 오늘보다 조금 더 침착한 마음가짐과 능숙한 손길로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름방학이 또 하루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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