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계란

물건백써 #20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by 숲일생활


출장 중에 점심때를 놓쳤다. 만날 사람을 만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외지에 공장이 몇 군데 들어선 동네라 가까운 곳엔 식당이 마땅찮았다. 보통 이럴 때면 나는 편의점을 찾곤 한다. 다행히 차를 세워둔 곳 주변에 편의점이 하나 보였다.


최근 들어 건강 관리 차원에서 가급적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있다. 지금과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 외에는 집에서 싸 온 음식을 먹고, 사 먹는다 하더라도 재료에 무언가를 최소로 더한 메뉴를 고르려고 한다. 그리고 출출하거나 허전할 때는 과일이나 견과류, 구운 계란 같은 것들을 먹는다.(이렇게 말하면 내가 굉장히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나도 라면을 비롯한 밀가루 음식을 몹시 사랑했던 사람이다. 단지 이제는 그렇게 먹었다가는 몸이 피로의 부하를 견디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아무튼 구운 계란은 그런 내게 꽤 중요한 간식이자 영양 공급원인데, 삶은 계란도 마다하진 않지만 구운 계란 특유의 그 퍽퍽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내 입맛에는 더 맞는 것 같다. 마침 그때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손아귀에 꼭 쥘만한 작은 크기에, 짙은 갈색빛으로 노릇하게 잘 익은, 구운 계란이었다.


편의점으로 들어가 냉장 코너 앞으로 가보니, 소시지와 핫바 제품류들 밑으로 진열된 계란들이 몇몇 보였다. 쭈그리고 앉아 신중히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당장의 허기를 달래는 정도다 보니, 많은 개수가 필요하진 않았다. 평소 자주 사 먹는 2구짜리 제품을 찾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퉁명스레 구운 계란은 거기에 있는 게 전부라는 답만 돌아왔다. 고민이 든다. 3구짜리와 6구, 그리고 지금 사 먹기엔 몹시도 부담되는 10구짜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은 두 개를 먹고, 남은 건 나중에 먹거나 사무실 옆자리 후배에게 줘야겠다 싶어 3구짜리를 들었는데, 문득 가격을 비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러면 안 되지 싶어, 들었던 제품을 다시 내려놓고 그때부터 제품 하나하나의 가격을 들여다보는데, 당황스러워졌다.


3구짜리가 3,200원인데, 바로 옆의 6구가 3,900원이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동네 편의점 구운 계란은 뭐가 이렇게 비싸’였고, 이어서 든 생각은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닌가’였다. 하지만 다시 살펴봐도 제품 이름과 그 밑에 붙은 가격표는 틀림없이 일치했다. 머릿속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계산이 더디게 굴러갔다. 3구는 개당 1,200원이고, 6구는 개당 650원이었다.


선택의 고민이 눈 녹듯 사라졌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3구짜리도 부담된다고 했지만, 6구는 하루 구운 계란 두 개가 정량인 내게 3일간 먹을 수 있는 풍족하고도 만족스러운 분량이었다. 그것도 옆의 3구보다 훨씬 저렴한.


행여나 유통기한이나 원산지에 문제가 있나 싶었지만, 그런 차이도 없었다. 이쯤 되니, 이건 그냥 6구짜리를 이 편의점에서 팍팍 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그렇지 않은가? 이 수량에, 이 가격이면, 그 누구도 3구짜리를 택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알만한 분들은 알겠지만 모든 오프라인 매장의 매대에는 판촉을 위한 마케팅적 관점의 제품 배치가 행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경쟁사와의 관계(선두냐, 쫓는 입장이냐), 패키지 디자인(비슷할 것이냐, 아예 다르게 갈 것이냐)의 특징,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대를 고려한 그 나름의 정교한 설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같은 종류의 제품을 내놓은 회사 간에는 서로 눈높이 근처에 제품을 두겠다고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흔하다. 괜히 매대 경쟁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것이 이 편의점이 세운 모종의 어떤 판매전략이나, 일종의 경쟁제품 말살정책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3구와 6구는 서로 다른 회사의 제품이었다. 만일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라면, 이건 3구 제품의 회사가 시장 내 가격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안일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것 아닌가 싶어졌다.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6구 제품 회사가 저마진이나 매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3구짜리 회사를 반드시 짓밟아 버리겠다는, 어떤 결연한 의지가 깔려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만약 이 둘 모두가 아니라면, 가장 의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편의점 본사다. 3구짜리는 버젓이 3,200원에 팔게 놔뒀으면서, 그 옆에 6구짜리는 3,900원으로 대놓고 앉혀두다니. 이것이 곧 자본주의고, 시장경쟁이오, 신자유주의의 발로라고 한다면 나로서는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이곳의 단골이 가격 따윈 안중에 없는 어느 재력가가 아니고서야, 6구짜리가 모두 팔리기 전까지, 3구 녀석은 언제쯤 자선사업가 한 분이 날 데려가려나, 하면서 하염없이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게 아닌가.


자기가 있고 싶어서 있는 자리도 아니고, 달고 싶어선 단 가격표도 아닐 텐데. 그저 여기 가라면 여기 가고, 저기 있으라면 저기 있었을 뿐인데. 개당 가격 하나에 누구는 금세 팔려 가고, 누구는 두서없이 매대만 지키고 있는 신세라니. 다른 무엇의 경쟁 우위를 증명하는 신세라는 건, 그게 설령 사고파는 물건이라 해도, 안쓰럽다 못해 애처롭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서글픔이 꼭 물건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란 걸, 요즘 들어 부쩍 많이 느끼고 있다.


이런 혼자만의 망상 아닌 망상을 하면서, 나는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여섯 알의 계란 중에 두 개를 우걱우걱 까먹었다. 나머지 네 알은 내일과 모레에 먹으려고 고이 다시 포장해 가방에 넣었다. 무더위 탓인지, 어떤 생각에 너무 몰입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슬슬 들어가봐야 될 시간이었다.


텀블러의 냉수 한 모금을 들이키고, 나는 그렇게 다시 길을 떠났다.




<작자 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계란’보다는 ‘달걀’이란 표현을 쓰도록 권하고 있다. 나 또한 평소 업무를 위한 원고 작성, 편집, 교정교열을 할 때는 그 권고를 충실히 따르려고 늘 ‘계란’을 ‘달걀’로 고쳐 썼다. 하지만 내가 평소 사 먹는 제품들이 패키지에 버젓이 ‘구운 계란’, ‘구운란’이라 써둔 탓인지, 글을 쓰는 내내 어색한 기분을 느껴 계란으로 표기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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