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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준비

by 수리향

잘 지내고 있다. 막판까지 동교과 교사가 구해지지 않아서 어렵게 연변대에서 강사를 구하고, 과목이 꼬일 대로 꼬여서 새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빼고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다행인 것은 이곳은 공문이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스도 생활기록부만 가능하다. 신학기 공문 폭탄, 쿨메신저 안 읽음 100개 이런 건 연변의 사전에 없다. 딱 짜인 매뉴얼과 공문서는 없어지고 대부분은 교사 자율로 행해진다.


교사가 소수이기 때문에 업무는 한 사람 당 2-3개 부서의 일이 할당되어 있다. 잘못하면 업무 폭탄인데 다행인 것은 학생 수가 적고 유능한 선생님들이 있어서 대부분의 상황은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해결이 잘 안 되면 기다리고 서로 도우면 된다. 빨리빨리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타지를 살아가는 지혜인가 싶다. 빠름의 대명사인 나도 어느 새 마음이 느긋해져서 게으름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오늘은 개학을 앞두고 전교생과 전교직원 PCR 검사를 실시했다. 처음으로 학생들을 보아서 두근거리는 마음에 새벽부터 꽃단장을 했던 것 같다. 이전 학교의 반톡을 나온 후 허전했는데 담임할 아이들도 보고 반톡도 만드니 적지 않게 안심이 되었다. 매년 담임을 해서 그런지 이제 내 반이 없으면 허전한 것 같다. 오전에 대충 이전 학년 명렬을 뽑아 대조해보았다. 거의 달라진 바가 없다.


이곳은 중국 내에서도 학생수가 적어서 한 학년이 한 반이고, 한 반 인원도 14명이 채 되지 않는다. 왜 이 숫자가 중요하냐면 14명 미만은 절대평가로 성적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재외국민학교 학생들은 대입에서 특례입학 전형이 있는데 그것도 내신 성적과 생기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교내에서도 절대평가라니, 정말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 같다. 이 맘 때 학생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외로운 경쟁 앞에 놓이게 되는지 아는 나로서는, 아이들이 부럽고 또 부럽다.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데 강당은 꽤 넓어서 전교생이 다 앉고도 자리가 남는다. 1학년부터 곧 졸업할 12학년까지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보니 초중고의 발육 차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정말 작고 작아서 귀여웠다. 곧 졸업하는 고등학생들도 친구들의 PCR 검사를 보며 서로 장난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아직 어린아이들 같았다. 사실 한국도 연령 대가 많이 노후화되어서 서른 즘 되어야 좀 어른인 것 같다. 나도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다고 주장하고 싶다.


PCR 검사는 명단대로 줄을 서서 한 명씩 입 안에서 시료를 채취한다. 격리 기간 동안 잦은 PCR 검사로 코가 헐어서 아직도 코피가 나는 나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보건 인력이 돌아간 후 일을 조금 하고 점심으로 연길 냉면과 꿔바로우를 먹었다. 냉면은 한국 냉면과 비슷한 듯, 다른 듯 맛이 있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밖에 나와 봄 날씨를 만끽하며 집으로 걸었다. 일찍 풀린 연길의 봄은 쾌청하고 푸르다. 조금 걸었더니 조금 피곤하다. 공부는 역시 벼락치기로 해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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