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끝났다. 전 학년 시험 문제를 검토하다 빠개진 머리를 수습하기 위해 로망 시전에 나섰다. 이곳에 올 때 윤동주 초판본 시집을 가져왔는데(굿즈를 사니 책을 주더라) 윤동주 시집을 들고 윤동주 생가에 가는 게 내 로망이었다.
윤동주 생가는 연길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용정(룽징) 시에서 또 20분 거리를 가면 있는 명동촌이란 곳에 위치한다. 오전 8시에 룽징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얼핏 '대성학교' 표지판을 보았다. 룽징 광장 거리에서 내린 후 순이네 냉면 쪽으로 쭉 내려오니 룽징 중학이 있었고 그 울타리 안에 대성학교가 있었다.
대성학교
동주가 다녔다는 그 대성학교 건물은 과거에 만든 것 치고는 건물이 무척 좋았다. 물론 용정에서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를 잘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 정문의 경찰 분께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 중국에서는 학교에 일반인 출입이 어려운 건 알지만 너무 단호해서 아쉬웠다.
룽징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명동촌으로 갔다. 명동촌을 정말 산으로 둘러싸인 저 푸른 초원 위의 시골이었다. 산 아래 구릉 쪽에 조선인들이 살던 집들이 민속촌처럼 보존되어 있었다.
명동학교
말로만 듣던 명동학교를 두 눈으로 보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교육운동가 김약연
건물 옆에 명동 사숙을 세운 김약연 선생의 동상이 있다. 알고 보니 동주의 외삼촌이란다. 외가에서 독립운동도 학교도 세우고 했으니 진정 비범한 가문에서 태어난 것 같다. (금수저...)
동주 네
명동 학교 뒤편으로 돌아가면 동주 네 집을 찾을 수 있다.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는 없었는데 집 터가 딱 봐도 커서, 부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주 네는 부자네
부자 분들이 뜻이 있으면 학교도 세우고 나라도 구하는구나 싶다. 내 로망 1호가 동주 시집 들고 동주네 찾아가는 거였는데 드디어 로망을 이루었다. 와 너무 기분 좋았다.
서시
왼편에는 나의 최애 시 서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었는데 오타 지우고 다시 쓴 것도 잘 복원했지만 글씨체가 좀 다르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도 서시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몽규 네
다시 명동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송몽규의 집을 발견했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서로 외사촌인데 몽규가 행동파였다면 동주는 사색 파였다고 한다.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주인공보다 기억에 남았는데 역시나 집도 좋은 엄친아였다.
그 주변으로도 조선인 전통 가옥을 복원하거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타까운 건 코로나 때문에 주변 시설들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지나면 더 좋은 모습으로 문을 열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앞으로 더 못 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만큼 본 것으로도 사실 만족한다.
윤동주는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사랑받는 시인으로 미묘한 이견이 존재한다고 한다. 사실 역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것 같지만, 확실한 건 윤동주가 어느 나라 사람이 건 그의 생각과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는 그저 윤동주라는 사람의 것이며, 그가 사랑한 언어로 쓰인 시도 그가 당시에 느꼈던 내적 갈등과 투쟁도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단순한 시가 아니라 그 시절 고뇌하던 청춘의 자화상이 아닐까. 그 여운을 간직한 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한 장씩 넘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