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격 수업 대응기, 열아홉 번째 이야기
바야흐로 12월이 되었다. 연말에는 무척 바쁠 예정인 것을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이사에, 건강 문제에, 대학원 기말 과제에, 몰려드는 일에 정말 정신이 없었다. 원래 일은 바쁠 때 들어온다고 해야 하나? 돈 받고 일을 하면 프로라는데, 돈 받으며 일하는 이상 일이 많다고 일처리를 못 하겠다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12월 달은 '못 해 먹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바로 정산 문제 때문인데, 학교 자체 예산이라면 정산서를 작성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교육청과 중구청에서 목적사업비와 교육경비 보조금을 받아 사용하였다. 그 정산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중구청 교육경비 보조금은 연초에 다른 목적으로 신청했는데 갑작스러운 코로나 19로 인해 사업 변경을 3번이나 하고 계획성 없이 예산을 썼던지라 정산하다가 머리가 도는 줄 알았다. 내가 올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싸운(?) 곳이 바로 행정실이었는데, 정산을 하면서 깨달았던 것 같다.
아 행정실 주무관님이 화를 덜 냈던 것이구나.
정산을 하면서 그분의 화가 절로 이해가 되면서 앞으로 정말 행정실에 잘해야겠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중구청 교육경비 보조금을 결산하겠다고 행정실에 이야기하자 주무관님이 야근하시면서 책갈피 해놓은 첨부 서류를 복사하는데 꼬박 2시간은 걸린 것 같다. 그렇게 손이 베이도록 복사한 200페이지 분량의 서류를 보면서 마음이 겸허해졌다. 실장님은 웃으면서 '그래서 계획성 있게 사용하라고 했던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계획에 없는 코로나 19와 원격 수업 앞에 예산 계획을 세우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도 중구청에서 원격 수업으로 예산을 돌리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 덕에 학기 초부터 원격 수업 장비를 사고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지 이거라도 돈이 없었다면 94% 실시간 원격 수업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덕에 연말에는 야근이 시작되었다. 마침 대학원 수업도 끝난 주이고 수업도 3학년밖에 없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가는 학교에서 날밤 샐 뻔했다.(말이 야근이지 7시 전에 퇴근했다.) 3학년은 원서와 수능 문제로 얼마 전부터 EBS 온라인 클래스로 돌려서 수업만 올리면 된다. 다른 학교에서 EBS로 연초에 얼마나 꿀을 빨았는지 깨달으며 강의를 올리는데 그 마저도 듣는 학생이 적다. 원서 접수도 학생부 마감도 끝난 학생들 덕분에 나도 수업은 신경 안 쓰고 업무만 보는데, 출근하고 책상에 앉아서 퇴근할 때까지 죽어서 서류와 씨름하면서 내가 수업하러 교사를 한 건지 행정 업무 하러 교사를 한 건지 많이 헷갈렸다.
여하튼 그렇게 죽어라 서류를 만들고 숫자를 맞추고 있는데 아무리 야근을 해도 9500원이 맞지 않는다. 그깟 9500원 그냥 내 돈에서 던져주고 싶은데(그래서는 안 되지만) 모자란 것도 아니고 넘친다. 예산을 필요할 때마다 마구 사용해서 이 예산 저 예산 끌어다 짜 맞춰 사용하다 보니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인데 200장의 서류를 2번이나 복습해도 맞춰지지 않더라. 속으로 울면서 결국 주무관님께 다시 SOS를 해서 필요한 목록을 받아 겨우 겨우 맞추었던 것 같다. 엑셀에서 오차가 0원이 되자 그동안 해묵은 감정이 눈 녹듯 녹아내리며 훈훈한 봄바람이 불더라. 그렇게 가뭄의 단비였던 (하지만 연말에는 고통이었던) 중구청 정산보고를 마무리하고 겨우 주말을 맞이하였다.
사실 대부분의 학교가 학기 초에는 예산 문제 때문에 실시간 원격 수업 환경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예산은 무조건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학기 초에 세운 데로 집행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인데, 그러한 경직성이 결국 코로나 19라는 돌발 상황에서 걸림돌이 된 것이다. 현재 교육청에서는 원격 수업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 이번 주에 온 교사용 노트북도 있고 전 교실 AP와 학생들에게 보급할 장비도 검토하는 것 같다. 물론 그 많은 것들이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고 연말에 이루어지고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일단 세팅된 물품들은 어떻게든 교육적으로 사용될 것이고 IT 장비에 익숙하지 않은 교사들에게도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