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게 새 생명을, 두 번째 이야기

나의 원격 수업 대응기, 열일곱 번째 이야기

by 수리향

저번 '컴퓨터에게 새 생명을(https://brunch.co.kr/@soori/64)'에서 불용 처리하는 컴퓨터를 학생에게 기증하는 사업에 대해 다루었다. 교육청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사업이라 고개를 젓고 완전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어찌어찌 주변의 도움과 무한 서류 처리로 잘 완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교사들의 '서브 모니터'에 대한 요청과 컴퓨터 기증 대상에서 탈락한 학생들의 민원이 폭주했다. 몰랐을 때라면 모를까, 교내에 자신들이 받을 수 있는 모니터와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교사들과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것이 관리자 분들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교감 선생님 : 당장 원하는 교사들에게 모니터를 나누어 주시오. 내 명령이오.

교장 선생님 : 당장 원하는 학생들에게 컴퓨터와 모니터를 나누어 주시오. 내가 책임을 지겠소.


문제는 남아 있는 모니터의 대수가 그것을 원하는 교사의 명수보다 적다는 것이다. 입장 차이도 있었는데 교감 선생님은 학생들의 학습보다는 '교사'들의 업무 효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교사들에게 먼저 서브 모니터를 나누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일도 적은데 신청한 분들도 있고 기존의 모니터로도 충분히 업무를 볼 수 있다 판단하여 '학생'에게 먼저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을 교사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입장이었다. 이것 때문에 교감 선생님과 많이 다투었는데, 교감 선생님은 그때마다 '그냥 하라는 데로 하지 왜 토를 다냐. 이건 명령이다.'라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군대도 아닌데 업무 담당자를 설득할 생각도 안 하고 다짜고짜 명령이라니, 내가 따를 리가 만무하다. 내가 보았을 때 급한 건도 아니고 일 많이 하시는 분들은 이미 (무척 구형인) 서브 모니터를 가지고 있어서 문제가 없다. 나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판단였기 때문에 더 이상 일을 진행하지 않았다.(추후 일이지만 학생 컴퓨터 기증 이후에 교사 모니터를 분배하였다. 다행히 중간에 포기한 분들이 있어 모니터가 모자라지는 않고 잘 분배되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교장 선생님의 지시사항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법적으로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다문화 가정을 제외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교장 선생님의 '책임지겠다'는 말만 믿고 덜컥 일을 진행했다가 결국 다치는 것은 임기 얼마 안 남은 교장 선생님이 아니라 업무 담당자인 나이고, 무엇보다 이 일의 담당자를 맡으신 선생님이 극구 반대를 하셨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일을 잘해도 결국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것을 많이 보셨다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선생님의 조언이고 무엇보다 학교에 오래 남을 내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에는 나도 공감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공무원으로서 눈에 보이는 법을 알고도 어긴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결국 여기저기 시달리면서 일주일 동안 눈이 뒤집히도록 법령을 다시 읽고 뒤져보았지만 진척이 없었다. 뉴스에 보면 법을 요리조리 잘 해석해서 불법을 합법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에게는 도통 그런 재주가 없나 보다.


여러 날 고민하다 결국 '안 돼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최선을 다해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일단 교장 선생님의 확답을 공개적으로 받기 위해 회의 시간에 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생 컴퓨터 기증' 건에 대해 '정말 교장 선생님이 책임지겠는가'에 대한 확답을 얻었다. 교장 선생님은 왜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냐고 화를 내셨지만 최소한 공개적인 확답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교육청에서도 눈여겨보고 있고 문제 삼고 싶으면 언제든지 삼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음은 교육청에 문의하기였는데 교육청 담당자는 이미 우리 학교의 사업을 들었는지 '취지는 무척 좋고 법이 낙후되었다는 점에서 공감하나, 교육청 내에서 공론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법적으로 맞지 않으므로 여전히 반대한다'는 답변을 주었다. 그래서 '위험성은 알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공론화가 끝났고 교직원과 교장 선생님 모두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며 나도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라 생각하므로 그냥 하겠다'라고 답정너 통보를 하고 바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뒤 교육청에서 다시 전화가 와서 '기증할 수 있는 대상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과 지자체장인데 그분들이 모든 기관의 물품을 관리할 수 없으므로 <물품 관리자>에게 위임을 한다. 그 사람이 교장이고 교장이 정하는 사람에 대해 물품을 양도할 수 있다'는 매우 훌륭한 해석을 알려주었다. 교육청에서도 어차피 내가 반대해도 할 사람이란 걸 깨닫고 나름 열심히 뒤져보며 해석했다고 한다. 덕분에 합법이 된 학생 컴퓨터 기증 2차 사업은 두 번째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끝났던 것 같다. 이번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컴퓨터를 간단히 포맷만 해서 넘겨주었는데 성능이 좋지 않음에도 학생들은 '그동안 데스크톱 없어서 숙제도 못했는데 감사하다'며 가져갔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이제야 나누어 주어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 학생이라도 제대로 된 원격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니... 그 많은 토론(?)과 서류 처리가 쓸데없는 고생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았지만 다시 하고 또다시 해야 하는 사업이 된 컴퓨터 기증 사업, 내년에도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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