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와 노트북

나의 원격 수업 대응기, 열여덟 번째 이야기

by 수리향

갑작스럽게 늘어난 확진자로 수도권의 학교와 지자체에서는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실시간 원격 수업을 주로 하므로 조금 늦은 저번 주부터 재택근무 허용하기 시작했다. 나도 하루 써보았는데, 담임에 정보부장이 집에서 업무를 보니 좀 그렇더라. 여하튼 Zoom으로 집에서 조종례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게 되려면 결국 학교에서 호스트를 넘겨주고 컴퓨터 전원을 끄고 켜줄 사람이 필요하더라. 조금 머리를 써서 서버실에서 학급 컴퓨터를 끌 수는 있지만 조명과 난방을 꺼야 하는 문제도 생기고, 결국 실시간 수업을 하면서는 재택근무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내 생각이고 만약 교사 분들이 재택근무 중에 Zoom 수업을 하겠다고 하면 물심양면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아침저녁으로 컴퓨터를 끄고 켜는 문제는 부담임에게 맡겨야 하지만 호스트를 넘겨주는 정도의 문제는 학교 서버실에서 일괄로 가능하더라. 그런 꿀팁을 깨닫고 나서 약간 실험 정신이 생겨서 교사들에게 재택근무 중 Zoom 수업을 열심히 권장해보았다. 근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가정이 있는 분들은 집에서 '아이 돌보기, 집안일 하기'라는 또 다른 형태의 근무를 하더라. 가정 내 아이들이 여러 명인 경우 생각보다 컴퓨터 확보도 쉽지 않고 그 외 여러 애로 사항이 있어서 Zoom 수업을 하려면 학교에 나와서 하는 게 편하다는 여러 교사들의 결론이었다. 물론 학기말이라 수업이 대부분 끝나서 EBS 온라인 클래스로 수업을 전환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당분간 재택근무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재택근무 업무 효율화 연수' 자료를 몇 번째 뿌리는 지 모르겠지만, 다들 도움이 된다니 계속 리뉴얼하고 있다. 하지만 집에 컴퓨터가 부족한 교사에 대한 재택근무 지원은 난감하다. 학교에 데스크톱은 많은데 노트북은 3대밖에 없는지라 노트북 신청자는 항상 넘치고 노트북은 모자라는 실정이다.


다행히 교육청에서 이에 발맞춰, 조금 늦었지만 교사용 노트북을 보급하였다. 원래는 저번 주에 올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늦어져 이번 주에 오게 되었다. 아무래도 정산 때문에 정신없던 나는 노트북이 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일도 따라올게 뻔한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되었다. 노트북 오기 전 날 연락이 왔는데 오기로 한 날에 마침 전산실무원님이 재택근무를 신청하셨다. 설치를 담당한 유지보수 업체의 팀장님은 굳이 사람 필요 없다고 했는데 60대나 되는 노트북을 점검하고 포장 벗기는데만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실무원님을 설득해 재택근무를 취소시켰는데 다음 날 일정이 미뤄졌다며 오지 않았다.(졸지에 악덕 부장이 된...)


다음 날 노트북이 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노트북 배송 기사는 엄청난 양의 노트북 더미를 가져왔는데, 그 엄청난 양의 포장을 일일이 벗기고 (덕분에 손도 벗겨지고) 일일이 가방에 넣고 다시 꺼내서 상태 확인하고 미설치된 프로그램들 설치하니 오전이 다 지나갔다. 겨우 일을 끝내고 오후에 교감 선생님께 내려가 보고하며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와서 보고하고, 일이 끝나면 보시라고 노트북 하나쯤 가지고 내려와야 하는데 왜 일을 이렇게 하냐'라고 또 화를 내는 걸 들어주고 또 내려가서 교사들에게 '내일부터 노트북을 수령해 달라'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행정실에서 준 비품 딱지를 붙이고 물품 관리 대장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좋은 노트북이지만 역시 노트북이라 무거운 그래픽 프로그램이나 게임은 힘들고 딱 업무용으로 사용하면 되겠더라. 하지만 막상 선생님들 반응이 시큰둥 한데, 이미 연초에 컴퓨터, 태블릿이 없는 분들은 대부분 사비로 산 상태인 것이다. 다행히 가정이 있는 분들은 컴퓨터가 모자라다며 좋아라 하지만 역시 너무 늦게 주었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앞으로 30대는 더 올 예정인데 이걸 어떻게 관리한다. 요즘 정보부실을 발 디딜 틈 없이 매운 노트북 가방들을 볼 때마다 정신이 아찔하다.

keyword
이전 07화컴퓨터에게 새 생명을, 두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