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오밀조밀한 거품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너무 강한 향은 싫다. 코코넛 향기, 살구 향기, 베이비파우더 향기 같은 은은한 향기가 좋다. 어릴 적 비누에 몸을 씻는 것이 당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 하나 씻는데 너무나 많은 통들이 생겨났다.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바디워시, 폼 클렌저.
돈과 효율을 중시하는 나는 이 중 샴푸만은 꼭 사용했다. 혹시 모르니 사은품으로 받은 린스도 구석에 한 자리 차지했었다. 화장을 하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폼 클렌저도 필요 없고 머리 감는 것을 빼고 모두 비누를 사용했다. 비누가 모낭염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모낭염 나라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런 것 나지도 않더라.
그러던 나에게 큰 결심이 생겼으니, 최후의 보루인 샴푸를 치워버리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긴 머리에 이 무슨 어리석은 도전이란 말인가? 샴푸를 없애기로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샴푸 성분
화장품 쓰기 시작한 시절에 성분 공부를 했었는데(덕분에 화장품을 거의 사지 않게 되었다…) 샴푸의 주성분은 소듐라우릴설페이트이다. 광고에서 엄청나게 좋은 천연 성분을 넣었다고 광고하는데 성분표 읽어 보면 거의 가장 하단에 존재하는 미미한 존재감. 간혹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도 있는데 대부분은 소듐라우릴설페이트다. 이 설페이트 계열은 강한 계면활성제로 환경과 피부에 모두 좋지 않다. 개인적으로 써보았을 때 소듐라우릴설페이트 샴푸가 머리카락이 잘 빠지고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가 그나마 덜 빠진다. 그래서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 샴푸를 사는 편인데 요즘 점점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가 들은 샴푸가 줄어들어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2. 피부 트러블
화장품 쓰기 전에 화장품 성분부터 공부한 나는 화장품이 필요악이란 것을 인식하고 대단히 적게 사용한다. 사용하는 건 선크림, 아토피용 바디로션, 가끔 바르는 작은 에센스가 전부다.(물론 색조도 있다.) 근데 화장품보다 나쁜 트러블메이커인 샴푸가 얼굴에 닿는 것을 방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항상 이마에 좁쌀 여드름을 달고 살았다. 분명 이것은 샴푸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샴푸만 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3. 경제적 비용
샴푸가 그리 비싸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렴하지도 않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샴푸 고르러 가는 것도 스트레스라 그냥 비누 하나만 쓰면 편할 것 같았다. 개인적인 비용 말고도 사회적 비용도 있는데 환경오염에 영향을 미치는 샴푸를 끊으면 플라스틱과 계면활성제로 아파하는 지구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나 하나 샴푸를 치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름다운 꽃과 푸른 하늘을 보면 덜 미안해진다.
이렇게 작은 이유들이 모여 비누로 머리 감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소중한 나의 머리를 위해 샴푸바를 사용했다. 사회적 기업이 만들었다는 동*바도 써보고 물 건너왔다는 아*존 허니 샴푸바도 써보았다. 녀석들은 나의 소중한 긴 머리를 뻣뻣하지 않게 잘 감아 주어서 린스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세정력이 별로라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을 빗을 때마다 먼지가 묻어나고 머리에 기름기가 있는 것 같이 개운하지 않았다. 결국 보름에 한 번은 여행용 샴푸 뚜껑을 열어 머리를 헹궈주었다. 게다가 이 작은 샴푸바 하나가 샴푸 큰 것 한통 가격이니,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아 돈 아까워….
한두 달 정도 샴푸바를 써보며 고민했는데 해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그냥 내가 사용하는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된다. 내가 사용하는 비누는 유서 깊은 무*화 살구비누였는데 세정력도 훨씬 좋고 내 피부에 맞는 순한 비누라 두피에도 좋다. 하지만 문제는 감은 후 머리가 너무 뻣뻣하다는 것이었다. 린스를 쓰면 되지만 그럴 바에야 샴푸를 쓰는 게 낫다. 이것도 며칠 고민했는데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식초를 이용하면 된다. 마트에서 파는 큰 양조 식초 한통 사서 그냥 화장실에 넣어두고 비누로 머리를 감은 후 헹구었다. 머리가 부들부들 해졌다. 린스나 샴푸바 했을 때의 기름기는 느껴지지 않고 산뜻한 느낌. 기분이 좋았다. 단점도 있었는데 다 안 말리고 밖에 나가면 식초 냄새에 날벌레가 꼬인다. 하지만 머리만 다 마르면 식초 냄새는 없어지니 걱정할 건 없다.
보글보글 비누거품이 좋다
생각보다 머리카락 감는 데에 비누로 정착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돈도 아끼고 샴푸 사러 가는 시간도 아끼고 머리카락도 더 풍성해지고(목이 뒤로 쏠린다…) 일석삼조다. 단점은 비누 소진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이것도 쉽게 해결이 되었는데 부모님이 도매로 저렴한 비누를 한 박스 사두셔서 부모님 댁에 갈 때 한 봉지 입양해왔다. 저렴한 비누이긴 하지만 써보니 순하고 코코넛 향이 은은하게 나는 것이 나에게 딱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돈도 굳고 환경도 굳고 피부에도 좋은 즐거운 비누 생활 실천은 성공적. 샤워 끝나고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은은하게 나는 비누향을 느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 한 실천 중 가장 잘 한 실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