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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Aug 09. 2020

비를 피하는 법/호우경보

오빠생각/오일파스텔


벌써 몇주간을 거친 폭우와 산사태에
병까지 나서 시달리고있는 오빠에게
오늘도 전화를했다.
오빠의 목소리로 오늘의 무사함을 확인하며
건강과 안전이 최고라고 얘기하는 끝엔
저절로 복숭아의 안부와 복숭아주문취소를 받아야할지, 선입금반환 등에 대해 묻게된다.

사실 내게 중요한게 오빠인지,
내가 민망함을 무릅쓰고 동창홈피에까지 올려
판로를 부탁한 복숭아, 그것을 보고 주문해준 고마운 선후배 지인들과의 신뢰와 약속인지 모를 지경이다.

(다행히 복숭아는 달고
곧 수확해 배송할 예정이라지만
여러 악재로 너무 늦어지니 오빠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내 간과 심장을 쭉쭉 땡겨늘리고있는 심정ㅠㅠ)

오빠와 올케언니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다.
어느 교회에선가 권사노릇을 하며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성극의 희곡을 쓰고 연출을 해 선교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오빠언니가 딸의 돌연사를 맞고 언니의 우울증을 거치고 오빠사업이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 오빠가 깊은 우울 속에 홀로 귀농해
몸을 혹사하는 걸로 시간을 살아내
이제 겨우 두번째 복숭아 수확을 보려는 때에 내리는
이 폭우엔 대체 무슨 뜻이 있는건지 ᆢ

그걸 모르면서도
정작 교회에 다니지않는 나는 오빠보곤 늘
그곳에서라도 교회에 가라고 말했었다.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의 부담을
그곳 교회와 이웃신도들과 하나님께 맡기려고ᆢ성당이든 절이든 어디든 좀 덜어주시고 누구라도 좀 나누라고ᆢ

***

이번 폭우가 내리고 근처에 강이 넘쳤을 때
오빠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키우던 유기견 두 마리의 목줄을 풀어준 것이다. 혹시라도 사람도 못 피하는 순간에 저희라도 어떻게든 피하라고ᆢ

강이 넘칠땐 산으로 올랐다가
산사태가 날땐 밑으로 내려왔다가
오르락 내리락 오빠곁을 떠나지않는 개 두마리는
오빠에게 의지하는건지, 오빠를 지키는 건지 ᆢ

나도 모르는 어느 새벽에, 내 귀한 친구가
얼굴도 모르는 내 오빠에게 전화를 해
함께 영동의 비 걱정을 나누고,
폭우로 유실된 오빠네 복숭아나무
스무그루를 안타까워하고,
자신이 묘목을 서른세그루쯤 선물해드리고 싶다해 마음으로만 받았다는 것을 오빠에게 전해들으며
이래도 이래도
오빠의 세상에
사랑과 은혜가 없다고만 할수있는지 ᆢ
이래도 이래도
마음과 기도가
사람과 하늘을 움직이지않는다고 할수있는지 ᆢ

집은 잠겨도 지붕은 소와 사람을 구하고
소는 강아지에게 등을 내주고 사람은 쓸려내려가는 또 하나의 생명을 구하고ᆢ
복숭아는 떠내려가도 나무는 다시 사람과 새를 구하는 ᆢ 우리는 서로를 구하고 도우며 살아갈 것이다.

걱정은 참으로 무력하고
나의  기도는 내 그림만큼 참으로 무안하나
걱정도 기도도 마음이 하는 일,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것이 길을 내는 때가 있을것이다.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내리소서.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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