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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Apr 30. 2022

엄마는 전쟁 중

98세

엄마를 뵈었다.

한 달새 또 반으로 줄어든 엄마얼굴을 구슬처럼 잡고

자꾸자꾸 뽀뽀를 해드렸다. 엄마 엄마 엄마를 몇십번쯤 불러드렸다.

정신 흐릿한 엄마가,

그옛날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무릎에 앉아 이마와 눈과 코와 볼과 입에 전부뽀뽀를 해대던 나를 기억하시도록ᆢ

까무룩까무룩 자꾸만 긴잠에 빠지는 엄마가,

조동아리 막내딸의 시끄런 부름에 화들짝 깨어나시도록ᆢ


요즘은 종일 누워만 계시며

유동식만 드시다 만다던 엄마가

결국 식탁옆에 잠시 앉아

전에 좋아하시던 닭고기살을 한입 오물거리는 사이

오빠언니로부터 최근 엄마의 무용담을 들었다.


건강과 기억이 좀더 흐릿한 어느 날은

기어나오시듯 나오셔선

집도 오빠도 알아보지못하신 채,

두 손을 싹싹 빌어대며

 '내 집에 보내달라'고, '남편이 기다린다'고 애타하시고ᆢ


딸깍 전구들어오듯 정신이 또렷해진 어느 날은

며느리에게 '고맙다'며 감사인사를 전한 뒤

'난 이미 죽은사람이니 그만하라'는 말로

올케언니의 눈물을 짜내시고 ᆢ


또 어느 날은 간병사를 살짝 불러

은밀하고도 위대한 표정으로

'어디 가서 그만 죽는 약 좀 사오라'하여

모두를 놀래키시기도 했다는ᆢ


어떤 전쟁이

지금 엄마의 전쟁만큼

길고 독하고 지난할까. 외로울까.


그러니 역시 우리 엄마다.

평생 최고였던  평생 나의 기적이셨던 우리 엄마ᆢ

그러니 이제 다 필요없고

아들도 딸도 다 잊어도 상관없고

당신이 얼마나 영원한 승자인지만, 그것만,

오직 그것만 기억하시면 좋겠다.



#엄마 #나의기적 #98세 #엄마는전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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