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by 수링


1. 외부 일정이 전혀 없는 화요일이다.


2.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먹고 난 뒤 세수는 안 하고 이를 닦으며 아이를 기다린다.


3. 뭘 입을까 고민하다가 외출복인 cos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혼자 지퍼를 올릴 수 없는 옷이라 아이의 도움도 받았다.


4. 짧은 원피스를 입을 땐 속바지나 레깅스를 안 입으면 항상 기분이 찜찜한데, 솔직히 속바지는 입으면 편하진 않고 레깅스는 보여서 안 예쁘다.


5. 이 원피스는 주황빛 갈색이고 꽤 두꺼운 편으로 겉모양이 잘 잡혀있어 굳이 속바지를 안 입어도 괜찮다. 그래도 외출 시에는 늘 속바지와 함께 했다.


6. 아이만 등교해주고 들어올 거니까 편하게 원피스만 입고 나갔다 오기로 결심하고 속옷 위에 원피스만 입었다.


7. 모자를 쓰고 쪼리를 신고 현관문을 연다.


8. 더 이상 어디까지 데려다준다는 실랑이는 이제 필요 없다. 아이도 나도 씩씩해졌다.


9. 여름이라 양심이 생기셨는지 요즘 개똥이 안 보인다. 굴러다니는 솔방울을 개똥으로 착각할 정도다.


10. 외출복인 원피스를 입었더니 자신감이 생긴다. 마주오는 아는 엄마에게 세상 밝게 인사도 했다.


11. 정글짐에 가기도 전에 우리는 안녕. 이따가 만나. 인사를 했다. 아이는 두세 번 뒤돌아 인사를 하더니 사라져 간다.


12. 어느 길로 가야 조용히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왔던 길로 돌아가기로 한다.


13. 월요일인 어제는 피곤해서 기록도 못했다. 오늘은 꼭 글을 써야지 다짐한다. 어제 새로 주문한 책도 읽어야지. 펜으로 선연습도 해야지. 커피도 내려야지. 아침에 먹고 남은 마늘빵도 구워야지.



14. 집에 와서 애드 시런 노래를 틀어놓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구성한다.


15. 이제 됐다. 오랜만에 잉여롭고 따뜻하고 충만한 오전을 보낼 것을 생각하니 나에게 한없이 다정해진다.


16. 잘 지내고 있어. 잘하고 있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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