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내가 내일의 너에게

by 수링


사랑하는 수린



아침에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는데 마을버스가 아파트 후문 정류장에 도착해서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뛰어가서 타기엔 늦은 것 같긴 했는데 걸어 나오면서 그쪽을 보니까 버스가 이제 막 도착해서 사람들이 타고 있더라고.


지금 뛰었다가 나를 안태워주면 창피할 텐데 그냥 집이나 다시 가서 우산이나 가져올까 고민을 했어. ( 우산 없어서 집 올 때 비를 좀 맞았는데 그것도 좋았지. ) 근데 오랜만에 가는 그림 수업에 늦기 싫어서 살짝 뛰는 시늉을 했어.


버스가 출발하더라고. 아… 난 이미 뛰고 있는데 어쩌나 싶었지. 자세히 보니까 버스 문이 열려있는 거야. 날 보시고는 태워주시려고 문 열고 조금 밑으로 기사님이 내려오신 거지.


마스크를 썼지만 평소보다 큰소리로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어. 역시 주말에 새로 산 청바지를 입고 나오길 잘했어. 너도 기억나지? 생일선물로 갱설 모가 골라주고 사준 그 바지. 아웃렛에서 샀지만 최신 상품이고 새 바지라 그런지 입으면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내가 구질구질해 보였으면 기사님도 그냥 가셨을 거야. 아니면 마스크 덕분에 내가 학생으로 보였을 수도 있어. 배낭도 메고 있었거든. 게다가 신발은 반스. 얼굴은 울긋불긋 에 잔주름이 자글자글이지만 아직까지 멀리서 보면 그 정도는 아니야. 새끈 하지.


어쨌든 기분 좋았어! 그림 수업 가서는 지연 선생님도 만났거든. 늘 그렇듯 굳이 얘기할 필요 없는 나의 이야기까지 맹렬하게 수다를 떨었더니 아마도 심리적 해방감을 느낀 것 같아. 다음 수업 때는 조금 일찍 오신대. 같이 점심도 먹자고 하셨어. 벌써 다음 주가 기대된다.



내일의 수린아 거긴 어때? 편안하니? 그림은 좀 그렸어? 내가 좋아하는 금요일이잖아. 저녁은 맛있는 것 먹었고? 궁금한 게 많지만 내일 다시 편지할게.



아침에 기분 좋았던 수린이가.



추신: 오늘 그린 그림 같이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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