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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수링 Sep 03. 2021

오늘의 내가 내일의 너에게


사랑하는 수린



 아침에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는데 마을버스가 아파트 후문 정류장에 도착해서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뛰어가서 타기엔 늦은 것 같긴 했는데 걸어 나오면서 그쪽을 보니까 버스가 이제 막 도착해서 사람들이 타고 있더라고.


 지금 뛰었다가 나를 안태워주면 창피할 텐데 그냥 집이나 다시 가서 우산이나 가져올까 고민을 했어. ( 우산 없어서 집 올 때 비를 좀 맞았는데 그것도 좋았지. ) 근데 오랜만에 가는 그림 수업에 늦기 싫어서 살짝 뛰는 시늉을 했어.


 버스가 출발하더라고.  아… 난 이미 뛰고 있는데 어쩌나 싶었지. 자세히 보니까 버스 문이 열려있는 거야. 날 보시고는 태워주시려고 문 열고 조금 밑으로 기사님이 내려오신 거지.


 마스크를 썼지만 평소보다 큰소리로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어. 역시 주말에 새로 산 청바지를 입고 나오길 잘했어. 너도 기억나지? 생일선물로 갱설 모가 골라주고 사준 그 바지. 아웃렛에서 샀지만 최신 상품이고 새 바지라 그런지 입으면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내가 구질구질해 보였으면 기사님도 그냥 가셨을 거야. 아니면 마스크 덕분에 내가 학생으로 보였을 수도 있어. 배낭도 메고 있었거든. 게다가 신발은 반스. 얼굴은 울긋불긋 에 잔주름이 자글자글이지만 아직까지 멀리서 보면 그 정도는 아니야. 새끈 하지.


 어쨌든 기분 좋았어! 그림 수업 가서는 지연 선생님도 만났거든. 늘 그렇듯 굳이 얘기할 필요 없는 나의 이야기까지 맹렬하게 수다를 떨었더니 아마도 심리적 해방감을 느낀 것 같아. 다음 수업 때는 조금 일찍 오신대. 같이 점심도 먹자고 하셨어. 벌써 다음 주가 기대된다.



 내일의 수린아 거긴 어때? 편안하니? 그림은 좀 그렸어? 내가 좋아하는 금요일이잖아. 저녁은 맛있는 것 먹었고? 궁금한 게 많지만 내일 다시 편지할게.



                     아침에 기분 좋았던 수린이가.



추신: 오늘 그린 그림 같이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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