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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이란”
도 씨 성을 가진 이 남자는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혀를 끌 찼다. 길 맞은편 담배꽁초를 버리는 젊은 남자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도 형, 무슨 일인데 그러우?”
김 씨는 검은 가방에서 몇 가지 도구를 꺼낸 후 그중 하나를 골라 파트너에게 건네며 물었다.
“길에 담배꽁초를 버리잖아. 산불 뉴스도 못 본건가? 요즘같이 날씨에 불이 번지기라도 해봐.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은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젊은 애들이 다 그렇죠 뭐.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겠수?”
검고 흰 것조차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도구를 주고받고, 또 조립하는 일이 두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오랜 세월 해 온 일에는 이 밤이 그러하듯 오감 중 몇 가지가 제한된다고 해도 ‘익숙함’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다. 지금 시간은 밤이지만, 설령 대낮이라한들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의 동작은 아주 자연스럽다. 마치 수행과도 같이 오랜세월 계속해 반복해 온 결과다.
“젊은 나이에 멋 모르고 행동할 수 있는 건 이해하지. 김 씨나 나나 젊은 치기에 실수 한 번 안 해본 것도 아니고. 그래도 생각이란 건 하면서 살아야 된다 이 말이야.”
“알겠으니까, 이제 집중해요. 내가 조금씩 돌려볼 테니까, 도 형은 그쪽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으라고. 소리라도 잘못 냈다가는..”
“그거야 말로 민폐지. 옆 집 개라도 짖어봐. 금세 온 동네 개들이 다 짖어댈 테니까. 잘 잡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 우리 야간작업 때문에 이 동네 사람들 내일 출근을 다 망칠 수는 없으니까”
“… 그렇죠. 민폐는 … 안 되지”
도 씨가 연장을 홈 모양에 맞추어 끼워 넣었고, 김 씨는 그 아래로 ㄱ자 모양의 도구를 괴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힘을 주었다. 끄그극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이 정도 소리라면 괜찮다. 늦은 밤 거리에서 흔히 들리지만 정체를 알 수는 없는, 그러나 전혀 거슬리지는 않는 그런 소음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밤은 여전히 고요하다.
“이제 형님이 열어봐요. 조심해. 녹 때문에 쇳소리가 날 수 있어. 큰 소리보다 오히려 이 쪽이 더 골치 아프다니까. 개들은 날카로운 소리에 더 예민해.”
도 씨는 손잡이를 잡고 잠시 예의 담배꽁초 현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 역시 이 쪽 만큼이나 아무 일도 없다. 다행이다. 트렁크에 소화기가 실려있는지 확실치 않아 내심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제 내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심호흡을 내쉬었다. 사실 준비는 진작에 끝났기 때문에, 뭔가를 다짐하는 심호흡은 아니었다. 오히려 불이 번지지 않았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은 잠깐 찌걱이는 소리를 냈지만 이내 고요해졌다. 개들이 일반적으로 얼마나 귀가 밝은지 그런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 상 이 정도라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담뱃불 걱정에 잠시 다른 생각을 했던 것만 제외하면 작업은 대체적으로 아주 순조롭다. 모든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 기념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쉿, 잠깐만”
다급히 김씨가 한쪽 손가락으로는 입을 가리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위쪽을 가리켰다. 도 씨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김 씨의 손가락 끝을 확인하고는 안도했다.
“당연히 확인했지. 작동을 안 하더라고, 고장 난 모양이야”
“혹시나 했지, 뭐. 도 형이 확인했다면 확실하겠구먼”
“그런데 말이지. CCTV를 달아두려면 ‘촬영 중’이라는 경고문이라도 붙여야 되는 것 아니야? 요즘 불법촬영이니 뭐니 해서 시끄러운데, 아무리 방범용이라지만 다른 사람을 저렇게 막 찍어도 되는 건가?”
“가정용은 경고문을 붙일 의무가 없는 모양이유. 법적으로”
“가정용 CCTV야 말로 경고문을 붙여야지. 보안이니 뭐니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찍은 영상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 그 영상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누가 알아?”
“그런 종류의 변태들도 있는 모양이더라고. 고장 난 채로 둔 걸 보면 이 집주인은 그 쪽은 아닌 모양이유. 다행이야, 다른 사람들한테든 우리한테든. 그것보다 준비됐으면 어서 다음 작업 시작하죠.”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현관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집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저택이라고 하기엔 힘들어도, 꽤나 부유한 집임은 틀림없다. 혹시 집 안에 누가 있는지 다시 확인할 필요도 없다. 오늘 일찍이 캐리어를 잔뜩 싣고 떠나는 가족을 멀리서 남몰래 배웅하는 것이 김 씨의 역할이었다. 캐리어 수나 갯수로 보았을 때 여행지는 최소한 동남아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유럽일지도 모르지. 사실 며칠 전 도 씨가 오늘의 작업지를 알려줬을 때 조금 못 미덥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오늘 수율은 확실하다. 도 형이 빡빡하긴 해도 일은 참 잘한단 말이야.
“아아, 이건 안돼. 결혼반지인 것 같은데?”
각자 자신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가운데, 도 씨는 어느새 김 씨의 꾸러미 속에서 짝이 맞는 한 쌍의 반지를 골라내며 말했다. 흠집이 나진 않았는지 확인한 후 조심스레 화장대에 올려놓았다. 이를 본 김 씨가 투덜거렸다.
“상관없지 않아요? 어차피 빼놓는 거라면, 결혼반지라고 해서 특별할 것 없다는 이야기 아니겠어?”
“혹시 모르지, 부부싸움 때문에 잠시 빼놓은 것일 수도 있고”
“가족끼리 해외여행까지 가는 걸 보면 부부싸움은 아닐 텐데, 권태기라 빼놓은 것일 수 있잖소. 그리고 그런건 반지같은 걸 다시 낀다고 해서 돌아오는 게 아니란 말이지.“
김 씨는 미세하게 반지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자신의 빈 약지를 슬쩍 만지며 투덜거렸지만, 도 씨가 일을 대충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란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명심해 김 씨. 우리는 물건의 위치를 옮겨놓을 뿐이지, 무언가를 망치는 사람들이 아니야.”
“아까 그 담배꽁초가 그랬다는 것처럼?”
김 씨가 담배꽁초 청년을 언급하자, 도 씨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게 정말 나쁜 짓이지. 태우고, 파괴하고, 망치는 것. 그런 건 단순히 ‘실수였다’라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 형님 또 시작이네. 그냥 쉽게 쉽게 가면 좀 괜찮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적당한 정도로만 해두면 되지 않겠어요? “
“직업윤리란거지”
김 씨는 화장대 위 제 자리를 찾은 반지를 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단념했다. 이 것 말고도 이미 충분한 소득이 있었던 데다가, 유능하고 오래된 파트너인 도 씨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 도 씨의 말에는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는 망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이 설령 형체가 없는 추억이라고 할지라도. 단지 우리는 물건의 위치를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길 뿐이다. 이쪽에서는 (-)가 되겠지만, 저 쪽은 (+)가 된다. 넓게 보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두 사람은 남은 작업을 마저 처리했다. 엄선한 물건들을 꾸러미에 담을 뿐, 불필요한 건 일체 건드리지 않는다. 열어 두었던 서랍은 닫았고, 파헤쳤던 옷가지는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지런하게 다시 정리했다.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이 집에 들어서기 전보다 조금은 더 정리된 기분까지 든다.
도 씨는 완성된 꾸러미에서 챙겨선 안 되는 것들이 있는지 그의 ‘기준’에 따라 마지막 점검을 한다. 몇 가지는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이 일은 결단력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오늘 해야 할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직업윤리 이전에 직업 그 자체가 계속될 수가 없다. 무엇보다 꽤 값이 나가 보이는 결혼반지를 돌려놓다는 사실이 그가 ‘결단을 내리는 것’에 힘을 실어 주었다.
최종 검수가 끝난 꾸러미를 하나씩 짊어진 두 사람은 신발을 신고, 문을 닫고, 현장을 조용히 떠난다.
퇴근길 자동차 속, 도 씨는 무표정하게 운전대를 잡았고, 오늘의 성과가 흡족한지 김 씨는 조수석에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데,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불법 취득 협의를 받고 있는 여당 유력 대권주자 A의원에 대해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습니다. A의원은 ‘정의가 승리한 것’이라며 검찰의 결정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한편 광장에는 검찰의 결정을 듣고 몰려든 여당 지지자와 야당 지지자들이 충돌하여..”
김 씨가 흥얼거리던 콧노래를 멈추고 혀를 찬다.
“증거불충분이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일이지.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 모양이야?”
도 씨 역시 뉴스가 달갑지 않은지, 음악 방송으로 주파수를 돌리며 중얼거린다.
“진짜 나쁜 짓은, 오히려 늘 당당하게 저질러지지.”
“우리도 이 일 언제까지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치 쪽 일을 알아보는 게 어때요? 거기선 결혼반지니 뭐니 신경 안 써도 될 테고”
“어쩌면 가정용 CCTV도 ‘촬영 중’ 경고문을 붙이는 법안을 낼 수도 있겠지. “
두 사람은 말없이 피식하고는 이내 정적.
그때 열어둔 차창 밖으로 개 짖는 소리가 나나 싶더니, 온 동네 개들이 따라 짓기 시작하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창을 올리고, 도 씨는 액셀을 밟아 속도를 올린다. 차는 밤길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몇 가지 물건들이 ‘위치를 이동한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 밤은 다시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