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정도'의 마음
즉각적으로 진단하지 못하고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 감정은 유예되어 버린다.
평소 ‘피를 보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는다’라는 생활 패턴으로 살고 있는 나는 통증에 둔감한 편이다. 긁힌 상처 같은 건 신경 쓰지도 않고, 열이 오르면 잠이 해결해 줄 것을 믿으며 침대를 먼저 찾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심한 허벅지 근육통으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이번 주말 10km 달리기 대회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허벅지 상태에 대해 나와 의사 사이에 몇 차례 문답이 오간 다음, 나는 침상으로 안내되었다. 그는 내 다리를 접어 올리고, 누르고, 툭툭 두드리기도 하며 물었다.
“이렇게 하면 아픈가요?”, “지금은 어때요?”, “여기는 불편한가요?”
질문이 하나하나마다 내 머릿속은 혼란에 빠진다.
이 정도를 아프다고 할 수 있나? 분명히 불편하긴 한데… 아니 이 정도로 누르면 문제없는 다리도 아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 이건 안 아프다고 해야 하나? 참을만한 고통은 불편함일까, 아니면 여전히 아픔일까? 분명 방금 질문의 분위기가 ‘이 부분을 누르면 넌 반드시 아파야 한다’였던 것 같은데… 왜 별다른 느낌이 안 들지? 다시 한번 눌러 달라고 해야 하나?
질문 하나에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최종 후보에 오른, 어느 것 하나 확신하지 못하는 대답 중 적당한 것을 고른다. 의사는 또 다른 곳을 누르며 묻는다. 다시 많은 의문이 뒤따른다. 적당한 대답을 고른다. 내 대답에 따라 의사는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정답인가?), 갸우뚱(오답이었나?) 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 과정은 몇 번이나 반복되고 결국엔 어정쩡하게 끝나버린다.
물론 불편함과 통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대가로 다리를 절단하거나, 평생 걷지 못할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왠지 찝찝한 기분이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나의 대답에 기초한 진료결과가 나온다. 사실 나의 머릿속에는 ‘내 정답률이 몇 % 일까?’ 그리고 ‘이 진료 결과는 정답에 얼마나 가까울까?’ 하는 생각뿐이다.
통증에는 명확한 수치 기준이 없다 보니, 병원의 나는 늘 이런 식이다. — 그래서 피를 보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일 수도. 마치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신라면 정도’, ‘매워요’, ‘많이 매워요’, ‘입에 불이나요’ 같은 옵션 앞에서 한참 고민하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감정이라는 것도 그렇다. ‘어느 정도 기분 좋음’에서 ‘가슴 벅찬 행복’까지의 분절되지 않은 스펙트럼 속에서 내 감정은 어느 지점에 정확히 정지하지 않고, 이쯤 어디에서 저쯤 어디까지를 맴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에도 ‘불편하긴 한데, 이 정도면 화가 나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다가 대개는 ‘가벼운 짜증’으로 정리해 버린다. 나는 감정에도 쉬이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인간이다. 즉각적으로 진단하지 못하고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 감정은 유예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MBTI ’T’라는 게 이런 걸까.
이런 나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무덤덤하다고 하지만, 정말 무덤덤한걸 까? 아니면 사실은 너무 예민한 걸까?
아, 그래서 결국 의사는 내게 2주간 운동은 하지 말 것을 권고했고, 참가비까지 낸 10km 달리기는 결국 못 나가게 되었다.
진단명 : 가벼운 짜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