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시끄러운 생각들

by soormj
살살 걸으려 노력해 볼게요



쿵쿵쿵-


언제부턴가 들리기 시작한 소위 ‘발망치’ 소리. 최근에 누가 새로 이사 온 것도 아니고, 사람의 걸음걸이가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테니, 저 소리는 늘 계속 저기에 있었고, 둔감한 내가 이제야 알아차린 게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 다.


쿵쿵쿵-


평소 무감각하던 사람도 ‘귀 트임’이라는 게 오면 예민해진다더니 내가 지금 그 단계인 모양이다. 꽤나 거슬린다. 나야 집에 있을 땐 보통 한 자리 -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책을 보고, 아니면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하기 때문에 집 안에서 움직일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윗 집 사람을 도대체 얼마나 바쁜 인생을 살고 있기에 집 안에서조차 저렇게 분주할까.


쿵쿵쿵-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가끔 통화를 하다 보면 “목소리가 왜 그렇게 작아” 하신다. 사내 녀석이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냐고, 목소리를 좀 키우라고 하신다. 나는 나대로 지금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 있기에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고 항변하다가도, ‘자신감이 없다’라는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이내 삼켜버리고 만다.


사실 내 목소리는 지하철, 버스, 기차 같은 대중교통뿐은 아니다. 카페나 공원, 길거리, 다른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목소리를 낮춘다. 딱히 에티켓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내 목소리와 통화내용이 다른 사람 귀에 흘러들어 가는 게 싫을 뿐이다.


식당 사장님이 내향적인 단골손님에게 티를 내기 시작하면 단골을 잃게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사실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살아있는 증거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매일같이 들리는 1층 편의점의 친절한 점원 아저씨께서 혹시나 ‘안녕하세요’ 말고 다른 말을 꺼낼까 봐 조마조마하며, 이어폰을 꽂고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나다. 나는 제삼자에게는 철저한 익명이 되고 싶다.


현명한 사람들은 대개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감추려고 한다. 존재가 쉽게 드러나는 사람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적이 되기도, 혹은 불편한 부탁의 대상이 되거나, 불필요한 관계에 놓이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꼭 필요한 순간이 오면 짠- 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반면, 매 순간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당사자에게 충분히 들릴 법한 속삭임으로, 그리고 ‘발망치’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한다. 마치 드러내지 않으면 존재하지조차 않는다는 듯이.


쿵쿵쿵-


다시 천장을 보며 생각한다.

당신은 대관절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기 에 - 핵융합이라도 진행 중인가? 아니면 초전도체 연구가 1002호에서 재개되기라도 했나? - 발자취를 세상에 그리 진하게 찍으려 애쓰는 건지.


그러고 보면 목소리가 작다고 한 나도 조용한 편은 아니다. 돌어보면, 내 잡념과 감정 - 짜증, 불만,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우월감이 글에 미묘하게 배어있다. 혹시 이 글이 책으로라도 엮이게 되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도 ‘눈 트임’이 오게 될 거고 내 생각은 ‘책간소음’이 되어버리겠지.


‘생각망치‘는 미안하게 됐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살살 걸으려 노력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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