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衣), 사(思), 주(住)

Think Pray Love

by soormj
내게 있어 풍요란, 많이 생각하고 잘 사는 것


오랜만에 고향집에서 먹는 집 밥.

‘오랜만에 집에 내려오는데 먹고 싶은 게 없냐’라는 말에 평범한 집밥이면 충분하다고 했었다. 근데 엄마 마음은 그게 또 아닌지 이것저것 많이도 차리셨다. 숟가락을 뜨고 있는 나에게 날아드는 엄마의 한 마디.


“넌 어떻게 된 게 평생 엄마 음식 맛있단 말 한 번을 안 하니”


하긴 생각해 보니 그렇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할 말은 있다.


“엄마, 그럼 반대로 내가 평생 맛없다, 뭐 먹고 싶다. 아니면 반찬투정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우리 모자는 엄마의 음식 솜씨에 대해 ‘쿨’하게 퉁치기로 했다.


먹는 것에 관하여서는 배만 채우면 된다는 주의이다. 식어버린 음식이 있어도, 레인지에 한 번 돌리는 수고로움이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너무도 쉽게 이기기 때문에, 냉장고 앞에 서서 음식 뚜껑을 열고 우적우적 씹어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모님께서는 ‘넌 나이가 들면 음식도 좀 즐기고 할 줄 알아야지. 맛도 모르고 그렇게, 꼭 짐승같이’라고 핀잔을 주곤 하시지만, 그건 사실 틀렸어요. 강아지들도 편식은 하더라고요.



‘맛있는 걸 먹는 것’은 내 인생 우선순위에서 저 아래에 위치해 있다. 대충 50위 바깥, ‘외출 전 핸드폰과 스마트 워치 충전 확인’와 ‘안보는 OTT 구독 해지 확인’ 사이 그 어디쯤인가에 위치해 있다. 사실 나 같은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멋이 없다는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먹는 것에 민감하지 않은 덕에,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점심으로 중국집 어때?’, ‘아, 어제 짜장면을 먹어서 그건 좀…’ 하는 식의 대화를 보며, 같은 음식을 하루 세끼, 일주일 내내 먹어도 물리지 않아서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불어난 체중에 식단 조절을 결심했을 때도, 먹고 싶은 걸 못 먹어 우울해하는 사람의 영상을, 간장도 없이 맨 두부를 우걱우걱 씹으며 보고 있는 나는 얼마나 다행인지. 나만이 느끼는 감사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경제적, 신체적으로 유지비가 덜 드는 사람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으니 식비에 큰돈 쓸 필요가 없다.(면서 아이패드는 세 개나 가지고 있다.) 뭘 먹을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없다. 그저 냉장고를 열고 눈앞에 보이는 걸 입에 넣으면 그걸로 만족이다. 다만, 그렇게 아낀 시간에 이런저런 사소한 생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는 하지만. 끼니는 걸러도 사소한 생각들은 거르지 못한다. 간식 대신에 망상에 가까운 상상들로 심심함을 달랜다.


흔히들 ‘잘 먹고 잘 산다’라고 하지만, 내게 있어 풍요라는 건 ‘많이 생각하고 잘 사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사실,

나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맛있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의외로 좋아하는 맛과 그런 음식들은 많이 있다. 와사비의 짜릿함을 좋아하고, 마라의 얼얼한 맛도 좋아한다. 타코같이 이국적이라면 이국적인 음식을 좋아하고, 차가운 면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사실 이건, 후후 불어먹는 수고로움을 피하려는 ‘게으름’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수. 고수를 곁들여 먹는 음식을 먹을 때면, 오히려 고수가 메인디쉬요, 메인디쉬가 사이드 격이 될 정도로 먹어댄다. 그 쌉싸름함과 특유의 향을 사랑한다. 다만, ‘게으른 삶’을 조금 더 사랑할 뿐 — 김광석의 말을 빌려 ‘너무 게으른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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