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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캠핑

by 수수

2023년 9월 연휴. 아들은 나를 강릉으로 초대했다. 친인척 하나 없는 제주도에서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남편은 서울에서 바쁘게 직장생활을 한다. 딸은 유학을 떠나기 전에 제주도에 몇 번 와서 나와 함께 보냈다. 자녀들이 성장하니 이제 함께 보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터전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릉에 와서 연휴 동안 함께 보내자고 아들이 말하자마자, 나는 기뻐 두 손을 들고뛰며 그러마고 말했다. 강릉은 내가 가장 아플 때 머물렀던 곳이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안목해변까지의 쭉쭉 뻗은 소나무숲, 파랗고 확 트인 바다, 입암동에서 안목해변까지 걸었던 남대천, 경포생태저류지, 대관령자연휴양림, 대관령옛길, 선자령, 강릉솔향수목원, 경포호 산책로, 걷고 또 걷기를 반복했던 장소들이다. 내 아픔을 나무, 풀, 바람, 꽃, 구름, 계곡물, 바위와 대화를 나누며 걸었었다. 폐암 수술 후, 익숙했던 삶의 터전에서 뚝 떨어져 나와 홀로 된 내가 다가갈 때마다, 내 모습 그대로 맞아 준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에게 맘껏 말했고, 신나게 노래도 불렀었다.


"엄마, 강릉에 와서 아들이랑 뭐 하고 싶은 지 미리 생각해 오세요."


아들은 내 마음을 미리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들과 아들이 돌보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소나무숲을 산책하고, 경포호수 산책로를 걷고, 애견카페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들과 여행도 가고 싶고, 캠핑장도 가고 싶었지만 연휴기간이라 여행객들로 붐비면 아들이 힘들까 봐 그랬다. 내 생각을 카톡으로 아들에게 보내 놓고, 셀레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강릉 아들집에 갔다.


"엄마, 캠핑장 갈까?"


와우, 아들은 평창에 있는 캠핑장으로 1박 2일 캠핑을 함께 가자고 했다. 정말 신나고 기뻤다. 아들이 번거로울까 봐 캠핑장은 생각에서 지웠었는데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강아지 두 마리와 평창 깊은 산속에 있는 캠핑장에 가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9월 연휴 기간을 외롭게 홀로 보내야 했는데, 그 고독함을 날려줬다. 캠핑장 가기 전날, 아들과 홈플러스에서 먹을 것들을 샀다. 저녁 늦게 마트에 오면 세일하는 음식들이 있다고 하며 아들은 닭볶음 요리, 오리고기, 샐러드, 과일 등 세일 상품을 챙겼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중형견 두 마리를 돌보며 생활하는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짠하기도 하고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며 사는 힘을 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기도 했다.

나와 남편의 갈등으로 자녀들은 항상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지내야만 했다. 나는 자녀들이 그러한 환경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고, 자녀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두 자녀 모두 지방에 있는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들은 강릉, 딸은 포항에 있는 대학에서 대학생활을 했다. 두 자녀가 갑갑했던 가정,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지낼 수 있는 축복이었다.

강릉에 도착한 다음날 점심때, 우리는 평창 깊은 산속에 있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산, 산, 산이 계속 겹쳐는 곳으로 들어갔다. 깊고 높은 산속이었다. 연휴를 자연 속에서 보내려는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와 있었다. 우리는 텐트 칠 좋은 자리를 물색하며 다녔다. 두 마리의 강아지도 함께 걸었다. 산 정상쯤 되는 언덕 평평한 자리가 있었다. 산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깊고 깊은 계곡처럼 산들이 줄지어 내려가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언덕에는 풍력발전기의 하얀 날개들이 꽃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몽글몽글 하얀 구름이 언덕 아래에 있었다. 우리는 높고 높은 산 정상 언덕 전망 좋은 곳에 1박 2일 머물 텐트 집을 만들었다. 아니 아들이 다 했다. 원터치 텐트도 아니었다. 도와준다고 했지만 "엄마, 엄마는 미소, 세상이랑 산책해요. 엄마가 그렇게 해야 제가 좋아요." 라며 혼자 크고 복잡한 텐트를 다 설치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며, 오히려 하나하나 손으로 세워갈 때 마음이 뿌듯하다며 행복해했다.

나는 강아지들과 산책하면서 그 많은 자연을 누렸다. 바람, 공기, 푸른 나무들,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 연인들로 인해 나도 행복해졌다. 아들은 하나하나 꼼꼼하고 안전하게 텐트를 치고 있었다. 산책하며 그런 아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것이 꿈만 같았다. 하루 전만 해도 바다 건너 제주도에 내 발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산속에서 강아지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내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아들이 텐트를 다 치고 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오붓한 모습들을 보며 산책을 하고 왔다. 저녁으로 닭갈비를 구워 먹었다. 닭갈비를 다 먹고 양념에 밥을 볶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강아지들과 함께 설거지를 하러 아래로 내려갔다. 아들이 세제로 그릇을 닦고 나는 헹구었다. 정말 행복했다. 이 시간을 주신 신께 감사했다. 깊은 산속이라 저녁이 되니 추웠다. 아들은 담요도, 전기장판도, 난로도, 장작불도 준비해 왔다. 아들이 준비해 준 장작불 곁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산의 모든 밤 경치를 다 만끽했다. 강아지들이 곁에 있고, 아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고, 멀리 미국에서 딸이 카톡으로 함께 해주었다.

개운하게 자려면 샤워도 해야 한다며 아들은 샤워장으로 안내를 해주었고, 샤워장 밖에서 강아지들과 기다려 주었다. 산속이라 캄캄했지만 무섭지 않았다.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도 서로 대화하는 듯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들이 정리해 준 폭신하고 따뜻한 침대에 누웠다. 아들은 내가 찬양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아들도 요즘 찬양을 들으면 평안해서 좋다며, 계속 찬양을 틀어 주었다. 평안하고 행복했다.

밤에 가는 비가 왔다. 아들은 피곤한지 곤히 자고 있었다. 텐트 문을 열고 밖에 나갔다.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물건들 몇 가지를 텐트 안으로 들여놓았다. 가는 빗소리는 산속 깊은 곳 조용하고 평화로운 밤 분위기를 더 차분하게 해 주었다. 텐트를 걷을 때까지도 비가 오면 어찌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다음 날 아침 비가 그쳤다.

우리는 아침으로 오리 고기도 구워 먹고, 라면도 먹었다. 평소에 혼자는 먹지 않는 라면이다. 나는 맛있어서 게걸스럽게 먹었다. 아침을 먹고 또 설거지를 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설거지가 참 좋았다. 남편과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지 하고 결혼 전 꿈꾸었었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나를 싫어하는 건가? 왜 결혼을 한 건가?' 하는 자문을 많이 했었다.

"엄마 있잖아. 아빠, 나에게도 그래. 엄마에게만 그런 모습 아니더라고. 엄마에게만 그런가 했던 아빠의 모든 행동이 나에게도 그래. 아빠가 엄마랑 오빠에게만 함부로 한다고 생각했었잖아. 나에게는 안 그런다고. 아니었어. 아빠는 엄마에게 한 것처럼 나에게도 그렇게 해. 텔레비전 소리도, 세탁기도, 설거지도, 담배도, 엄마에게 했던 반응 그대로 나에게도 똑같이 해."

유학준비를 하는 동안 서울집에서 아빠와 둘이 지내면서 겪는 일들을 딸이 말해주었다. 딸은 내가 남편으로부터 겪었던 불편함을 그대로 다 겪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엄마 아빠의 다정한 모습을 거의 못 보았던 아들이 결혼을 하면, 부인과 다정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나는 아들 곁에 서서 따뜻한 말을 주고받으며 설거지를 했다. 텐트를 걷는 일도 아들이 했다. 나는 강아지들과 또 산책을 했다.

세상을 헤쳐 고난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자녀들이다.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소박하고도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들은 지금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딸도 멀리 미국 땅에서 카톡으로 그 감사함을 함께 나누어 주었다. 나는 그동안 내 인생은 너무도 억울한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억울하게 끝나나 하는 슬픔이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더 많은 것을 찾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 인생은 어떻다고 섣불리 결론짓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오늘을 이기며 희망을 품고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나는 아들과 딸이 주는 사랑으로 힘든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형제들, 친구들, 지인들도 하루를 뚫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남편도 자녀들의 아빠의 자리를 잘 지켜 주어서 고맙다. 1박 2일 아들과의 캠핑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깊은 산만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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