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 Mar 27. 2024

고맙다 자녀들아.

2023년3월27일 수요일

잠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전화벨이 울렸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딸이다. 그곳은 오전이다. 내 잠을 방해할까 봐 카톡을 남겨 놓는 딸이다. 전화벨이 울리면 급한 일이 있다는 신호다. 딸이 생활하는 집은 월세로 얻은 집이다. 계약이 6월까지라 한다. 나는 7월에 미국에 가기로 했다. 딸은 나와 지내기 위해 6월까지인 방 계약을 7월 까지로 한 달 연장했다. 그 방을 계약할 사람에게 7월 한 달은 딸이 낼 테니 더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상태다. 그 집에 들어올 학생이 지내고 있는 월세방 계약이 다행히 7월까지 이기에 쉽게 타협이 됐다. 그 학생은 약속을 깼다. 딸이 지내고 있는 방 벽에 페인트칠을 해준다는 주인의 말에 바로 깼다. 원래 6월까지 계약이기에 주인은 6월 이후 바로 페인트칠을 하겠다고 한다. 아래층에 같이 살던 룸메이트도 5월까지만 살고 나간다. 아래층도 페인트칠을 할 것에 대비하여 모든 가구들을 치워야 한다. 딸은 그 가구들을 딸이 있는 동안 쓰고나서 딸이 처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1층을 지나다니기가 썰렁함을 미리 걱정하는 딸이다. 7월까지 지내도 된다고 말했던 학생이 주인에게 7월이 지나고 나서 페인트칠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먼저 타협했던 약속을 지키게 된다. 

그 학생은 입술로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상황이 살짝 바뀌니 약속했던 것은 그저 물거품으로 흘려 버린다. 딸이 화난 부분이 이것이다. 그 약속을 믿고 7월 한 달간 살 집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은 딸이다. 딸은 속상함을 토로하기 위해 전화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이러한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나와 딸은 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쳤을 때 그 당황함과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것은 어렵다. 준비되지 않아 요동치려는 마음을 잘 붙잡아야 한다. 그 상황에 맞대응하여 마음이 요동치게 하면 안된다. 그 거센 파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딸과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대화했다. 처음에는 나와 대화를 하다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속상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힘이 부족했나보다. 딸이 전화를 그렇게  끊고 나니 걱정이 됐다. 그때 바로 기도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기도했다. 딸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상황을 잘 풀어가는 힘을 딸에게 달라고 기도했다. 다시 잠을 자려고 누우니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전화를 끊을 때 불안했던 목소리가 밝고 희망찬 목소리로 바뀌었다. 나와 전화를 끊고 바로 오빠랑 전화했나보다. 딸은  오빠와 대화하며 위로를 받았고 방법을 찾았다. 아들과 딸은 급한 일이 생기면 서로 대화를 한다. 딸은 7월 한 달간 지낼 방을 구하기로 했다. 딸이 그 방을 더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에 속상했던 이유가 있다. 내가 미국에 가면 딸이 지내던 집에서 함께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딸은 나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미안해하며 속상한 마음을 전해 준다. 나는 괜찮다고 엄마가 미국에 가는 것은 딸을 보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딸이 지내던 곳을 보지 못하는 것에 내 마음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도 속상하다. 딸은 약속을 쉽게 깨버린 그 학생에 대하여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 학생이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딸이 속상하지 않았다. 그 태도가 미웠다.딸은 마음을 정리하고 그 학생에게 화난 마음을 표현하지 않기로 했다.  상황들이 변하고, 약속이 깨어지고, 내 계획이 산산조각 무너지고, 언제 약속했냐는 듯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로 물거품으로 만드는 사람을 경험하고. 딸과 나와 아들은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찾아갈 길을 이제 안다. 그 길을 찾는 훈련을 아픔을 통하여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딸과의 전화 통화가 끝난 후 침대에 누워 기도했다. 우리가 서로 평안을 주는 방법을 찾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딸이 화난 마음을 잘 풀어가는 방법을 찾아가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두 남매가 대화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이가 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딸이 어려운 상황들이 생길 때마다 낙심된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손가락을 꼽으며 감사할 일들을 찾으니 열 손가락을 다 오므렸다. 고맙다 자녀들아.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궁금하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