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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03. 2024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딸을 만났다.

수영, 서핑, 스트레칭 등으로 체력을 단련했다. 미국 땅에서 영어 듣기가 익숙하기를 바라며 미국 영화를 수시로 보았다. 영어로 들었다. YBM온라인으로 독해 공부도 했다. 여행 경비도 어느 정도 채워졌다고 만족했다. 짐은 작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와 백팩 작은 것 하나가 전부다. 딸이 내 옷을 사 넣았으니 옷을 많이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2024년 7월 24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인천공항에서 내가 탑승한 미국행 비행기가 이륙했다. 미국에 도착하면 밤 9시가 되니, 기내에서 깨어 있으라고 딸이 당부했다. 기내에서 15시간이 넘는 시간 중에 반 정도의 시간은 미리 잠을 자고, 도착할 즈음 8시간 정도는 깨어 있으란다. 미국에 도착하면 바로 잠을 푹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고. 딸이 말한 대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질 않아 책을 읽었다. 차인표 작가가 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책이다.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다 읽고 딸에게 주기로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기내식도 두 번을 먹었다. 아마 모두 세 번을 먹었나 보다. 좁은 의자에서 오랜 시간을 앉아 있으니 허리가 불편했다. 잠깐 일어나 화장실도 다녀오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허리가 아파왔다. 이러다 허리 통증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살짝 걱정이 됐다. 그동안 열심히 운동했는데 기내에서 무너지는 느낌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시간이 꽤 지났다. 미국 공항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잠이 들었다. 딸의 당부가 무시된 상황이다.

밤 9시가 지나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태어나서 처음 밟아보는 땅이다. 내가 아직 밟아보지 못한 땅이 어디 미국뿐이랴마는. 작은 기내용 캐리어와 백팩을 챙겨 먼저 내리는 사람들 대열에 끼어 걸었다. 입국심사 하는 곳을 통과해야 한다. 나는 줄을 잘못 섰다. 미국 국내인이 들어가는 곳으로 간 것이다. 사람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줄을 서 있는데, 퉁퉁하게 생기신 흑인 여성분이 와서 나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안내하는 분이었다. 영어는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손짓을 보니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갈지 몰라 어리둥절 쳐다보니, 자기를 따라오라 한다. 잘못 섰던 줄은 길게 늘어섰는데, 제대로 줄을 선 곳은 사람들이 적었다. 외국인들 입국심사하는 곳에 제대로 줄을 섰다. 낯선 곳에서 무섭고 두려워해야 할 내 마음이 담담하다. 내 차례가 됐다. 되지 않는 영어로 말하려다가, 딸이 써 준 프린트 물을 보여 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바로 통과됐다. 종이 한 장에 쓰인 영어 문장 덕분이었다. 입국심사할 때, 보여주라며 딸이 써 준 내용을 프린트하여 가지고 왔다. 어느 호텔에 묵을 것인지, 딸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딸이 지내는 집에 거의 묵게 될 것과, 지인 분들이 어느 곳에 있는데 그분들을 만날 계획이라는 것. 돌아갈 비행기표가 있다는 것. 딸이 써 준 입국심사용 글이다.

To whom it may concern,

 My name is ***, and I am a master's student at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My mother is visiting me, and we will be traveling around the US for a month, including stops in NYC, Philadelphia, and LA. We will also visit her friend's house in Texas, where she has a return ticket from. We have a hotel booked in NYC, and we will be staying at my home in Philadelphia for most of the trip.

 My home address is:  

********** St,  

Philadelphia, PA 19104  

 Contact information:  

Phone: (445) ***-***

Email: *******k@gmail.com

 Thank you for your assistance.

 Warm regards,  

********

이 글 속에서는 개인정보는***로 표현한다. 읽으면 아는 내용인데 말로 나오질 않는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통과했다. 그렇게도 영어공부를 많이 했는데. 심사를 마치고 사람들 틈에 끼어 밀려 나왔는데, 와이파이가 안 되어 딸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긴장됐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시간이 가까워 왔을 즈음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로밍했냐고 묻는다. 깜빡 잊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했더니, 아들은 화들짝 놀란다. 엄마가 미국 공항에 가서 딸을 못 만나고 헤맬까 봐, 여행 중에 딸과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을 때 연락을 못하게 될까 봐. 아들은 바로 이것저것 알아본 후에, T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딸과 연락할 수 있는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갑자기 긴장됐던 마음이, 아들의 빠른 대처로 사르르 풀렸다. 아들이 다 해결해 주고 나니 바로 탑승시작을 했다. 그 시간, 아들은 강릉에 있었다.

존 F캐네디 공항.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걱정할 겨를도 없이 딸이 달려왔다. 쉽게 아주 가뿐하게 미국땅에서 딸을 만났다. 아들과 딸, 둘의 세심한 도움 덕분이다. 딸과 나는 뉴욕 도심 한복판 밤거리를 지나갔다. 거리는 높은 빌딩들, 반짝반짝 불빛들, 다양한 모습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딸이 미리 예약해 둔 작은 호텔로 갔다. 우리는 곧바로 샤워를 한 후, 잠을 잤다. 다음 날 여행을 위해.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며 준비했던가! 딸을 만나기 위해. 드디어 이루어졌다. 해냈다. 나에겐 그런 거다. 큰 역사를 이룬 날이다. 내 힘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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