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목요일 날씨가 선선하고 맑았다. 걷기에 좋은 날씨다. 아침 7시에 기상했다. 미국 뉴욕이다. 그 멀고 먼 한국 땅을 벗어 나, 하루 만에 미국 거대도시인 뉴욕에서 아침을 맞았다. 내 인생이 신기했다. 딸은 아침 7시 눈을 뜨자, 혼자 듣고 있던 핸드폰 소리를 크게 해 준다. 아침 말씀 생명의 삶이다. 딸은 아침도 준비해 놓았다. 치킨, 호박, 고구마가 들어간 간편식이다. 건강을 챙기는 나를 위해서 좋은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골랐다고 한다. 딸은 내가 오기 전에 이곳 호텔에 미리 입실하여 정리해 놓았다. 아침 일찍부터 투어를 하기 위한 준비였다. 패션 감각이 부족한 나를 위해 원피스를 샀다며 꺼내 주었다. 난 딸 앞에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랑받는 아이.
딸이 골라 준 가벼운 원피스를 입었다. 잘 어울렸다. 사이즈도 딱 내 사이즈였다. 9시 30분,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UN 본부로 향했다. UN이라니, 나는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사회 교과서에서 글자로만 읽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세계 평화의 상징인 UN본부가 있는 건물에 들어섰다. 본부 구석구석을 안내하면서 설명해 주는 분이 나왔다. 유엔 본부 한국어 가이드 투어를 딸이 미리 신청해 놓았다. 한국인 가이드였다. 한국인 가이드라니 정말 반갑기도 하고, 자랑스러웠다. 학생들에게 보여주라며 딸은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주었다. 1시간 30분 정도의 투어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유엔본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스테이크 전문집이다. 스미스엔울렌스키, 워런버핏이 단골로 다니던 음식점이란다. 뉴욕 3대 스테이크 음식점 중 1개라고 한다. 딸이 미리 예약을 해 놓았다. 엄마도 이런 곳을 경험해 보라면서. 점원분들이 나이가 지긋했다. 서두르거나 급한 모습이 아닌, 여유 있고 차분한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식전 빵도 정말 푸짐했다. 빵을 먹으면서 먹다가 남으면 다 버릴 텐데 아까워서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느 음식점에 가든지 거의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서다. 다 먹어야 하니,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
고급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은 후, 미술관으로 향했다. 모마미술관, 뉴욕에 있는 현대 미술관이다. 딸과 함께 작품을 보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재미있게 해석하며 많이 웃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기 위해 걸었다. 브루클린과 맨해튼 최남단을 연결하는 뉴욕의 상징적인 건물이란다. 딸과 나는 이 다리 위에서 말다툼을 했다. 사진 때문이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예쁘게 나오도록 구도를 잘 잡아야 하는데 잘 안된다. 다리를 건너면서 딸이 나를 찍어 주었다. 딸은 계속 찍어 주었다. 나도 딸을 찍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딸은 내가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고 안 찍는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한번 찍어보겠다며 딸에게 애원했다. 딸은 구도를 잡아주기도 하고 방법을 알려 주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다리 한복판에서 사진 찍기는 나에게는 너무 난해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는 나를 보고, 딸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지나가는 사람과 위험한 상황을 만들까 봐 긴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본 딸은 화를 냈다. 사진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찍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과도 그렇다고. 딸이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떻게 이 상황을 잘 풀어갈지 마음이 초조해졌다. 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는 딸을 찍고 싶었다고. 그건 엄마 욕심이라고 말하는 딸. 싫다고 말하면 싫은 거라고, 엄마 욕심대로 하느라 다리 한 복판에 가방을 놓고 사진 찍으면 어떡하냐고, 여기는 미국이라고, 한국이 아니라고, 사진 찍겠다는 일념에 가방도 던져 놓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내가 답답했던 것이다. 미국에 와서 첫날, 엄마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알려 준다. 5분 정도 다리 위에서 갈등상태로 대화하다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손을 잡았다.
그 후, 공원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갔다. 강가에 있는 공원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앉을자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미리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영화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것을 선택했다. 영화보다는 강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저녁노을을 감상하기로 했다. 주변 분식점에서 사이다와 새우 요리를 샀다. 딸과 함께 뉴욕에 있는 강가에서 저녁노을을 보며 먹는 새우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비록 분식점에서 산 빈약한 음식이었지만. 우리가 앉은 벤치 앞 강가에 젊은 연인이 왔다. 석양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중이다. 남자가 여자를 찍어주려 하니, 여자가 안 찍는다 한다. 남자가 사진을 못 찍는다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딸이 나에게 말했다. 저 연인들 모습처럼, 상대방이 사진을 못 찍으면 사진 찍어준다고 할 때 찍기 싫은 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이제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젊은 연인의 행동 덕분이다. 서로의 마음을 살짝 힘들게 했던 사진 찍기, 젊은 연인의 사진 찍는 모습으로 깔끔하게 해소됐다. 딸은 엄마에게 화내서 미안하다며 손을 꼭 잡아준다.
화장실이 급했다. 주변에 공공화장실이 없다. 딸은 브루클린 아이스크림 훽토리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자고 했다. 그곳에 화장실이 있을 테니까, 아이스크림도 유명하고,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고 싶었다고.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었다. 석양을 바라보며 먹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지만 화장실엔 못 갔다. 아이스크림이 아닌 음식을 먹어야 화장실이 있는 실내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아야 했다.
하루의 일정을 조목조목 알차게 준비한 딸이 고마웠다. 딸은 숙소에 돌아와 다시 컴퓨터를 켜고 확인한다.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왔는지.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에 좋은 합격 소식이 있어야만 한다. 합격된 곳에 가서 딸과 함께 방을 구하고, 짐을 옮기는 것이 내가 미국에 온 목적이기에. 그렇게 될 줄로 믿으며 또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