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토요일.
첼시마켓, 센트럴파크, 자유의 여신상, 뮤지컬, 미용실, 베슬, 하이라인파크, 지인가족과 저녁 식사
뉴욕 마지막 여행날이다. 어제저녁에 마트에서 산 김밥과 과일을 아침식사로 먹었다. 짐을 다 정리하여 1층 로비에 맡겼다. 저녁 식사 후에 바로 기차 타고 필라델피아로 간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딸이 지내던 곳이다. 아침 8시 첼시마켓에 들러 캐리어 코너에 갔다. 딸이 이사를 하기 위해 큰 캐리어가 필요했다. 가격과 모양을 살피며 구경만 하고 나왔다. 구입은 필라델피아에서 하기로 했다.
바로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엄청 큰 공원이다.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큰, 산책하기에 좋은 산과 들판이다. 걷고 걸어도 산책로 끝이 안보였다.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달리는 사람들 연령대가 다양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가족과 산책 나온 모습들도 많이 보였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배를 타러 가야 했기에, 1시간 정도만 걸었다. 넓고 넓어서 공원 밖으로 나오는 길을 찾느라 헤맸다. 점심식사로, 딸이 맛있는 햄버거를 먹자고 했는데, 배 타는 시간을 맞춰야 해서 점심식사를 포기해야 했다. 공원에서 헤맨 시간이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딸은, 내가 뉴욕 전철을 무서워할 거라 말했다. 우리나라 전철이 얼마나 깨끗하게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전철에서 내려 달렸다.
뉴욕에서 계속 달린다. staten Island ferry를 탔다. 달려서 간신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까지 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타지 못할 줄 알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타다니. 무료로 운행하는 배다. 유료인 것도 있지만 딸은 무료를 준비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좀 먼 거리에서 보았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우리가 탄 배가 바로 돌아서 다시 올 줄 알았다. 그래야 다음 코스, 알라딘 뮤지컬 관람 시작 시간에 맞게 입장할 수 있다. 달려야 할 순간이 또 왔다. 우리가 탄 배는 갈 때만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다시 다른 배로 옮겨 타야 했다. 딸과 나는 배에서 내려 다시 달렸다. 출발하려는 배를 타러 달렸다. 우리를 태운 배는 다시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향했다. 뉴욕의 맨해튼 허드슨 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얼마 전 학교 아이들과 교과서에서 보았던 사진, 그 사진을, 나는 며칠 후인 오늘 실제로 보고 있었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 주변을 돌아 다시 미드타운으로 왔다. 허드슨강은 강이라기보다 바다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또 달려야 했다. 배에서 내려 뛰었다. 딸을 놓칠까 걱정되어 딸 손을 잡았다. 미국에서 길 잃고 헤매게 될 수도 있는 나다. 다시 전철을 탔다. 뉴욕 거리는 밤과 낮 풍경이 너무도 달랐다. 밤에는 술 취한 젊은 이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고, 낮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하다. 물론 세계 어느 도시든지 거의 비슷한 모습이겠다. 하지만, 뉴욕은 그 간극이 더 심한 느낌이었다. 도로가에 있는 건물, 뮤지컬 극장일 거라는 생각이 안 드는 극장 입구, 그 정도로 건물 외벽이나 입구가 거창하지 않았다. 공연 시작 10분 전쯤 도착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밖과 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밖은 허름한 벽이었는데, 안은 완벽한 뮤지컬 공연장이다. 이곳은 음식물도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수시로 다녀와도 되는 분위기였다. 알라딘, 서울에서 아들과 영화로 관람했던 뮤지컬이다. 영어로 공연을 하니, 잘 알아들을 수은 없었지만, 내용의 흐름을 미리 알았기에, 공연 내내 재미있었다.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점심을 굶었기에 무어라도 먹어야 했다. 물론, 딸은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된다 한다. 저녁 7시 30분에 지인분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딸은 그때까지 안 먹어도 된단다. 배고파하는 나를 보며, 딸은 파리바게트에 들어갔다. 빵과 녹차라떼를 샀다. 파리바게트가 한국 거란다. 이곳에서 인기가 좋단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미용실로 향했다. 딸이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서다. 한국인 미용사님이셨다. 20년 동안 이곳 뉴욕에서 미용사로 일하신단다. 돈을 많이 모으셨겠다고 물으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생활에 필요한 돈 밖에는 여유가 없다고 하신다. 물가가 너무 비싸단다. 지금도 점원으로 일하신단다. 미용사님은 내가 모델을 해도 좋겠다며, 내 모습을 칭찬하신다. 낯선 곳에서 듣는 칭찬이다. 미용실에서 나와 다시 뛰었다.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보여줄 것이 많다며, 딸은 내 손을 잡고 달렸다. 오늘이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베슬, 벌집처럼 생긴 건축물이다. 딸은 가는 곳마다 사진 찍어주기 바쁘다. 나에게 멋진 포즈를 취하란다. 나는 딸 앞에서 모델이 된다. 저녁 식사 전, 마지막 코스에 가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다. 택시를 탈 수도 있느냐, 교통이 혼잡하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딸은 달리자고 한다. 그동안 체력을 기른 효과가 나타났다. 하인라인 파크, 예전에 기차가 다니던 곳이란다. 기차 철로가 그대로 있었다. 공원 양옆으로 건축물들이 아름답게 세워져 있다. 건축 디자인이 독특하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딸은 걸으면서 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들어도 금방 잊는 나였지만, 잊지 않고 잘 간직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공원을 뒤로하고, 또 달렸다. 이번에는 정말 더 전력으로 달려야만 했다. 저녁식사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한식 솥밥집,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교회 집사님 가족이다. 뉴욕으로 떠나 오시기 전에 한 번 만났는데, 아마도 6년 전인 듯하다. 내가, 집사님 막내아들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였다. 그 막내아들이 대학생이다. 그 학부모님과 같은 교회를 다녔다. 그 가족분들을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정말 반가웠다. 어색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저녁도 먹고, 차도 마셨다. 같이 있는 시간이 짧아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헤어졌다. 내일 아침거리를 사기 위해 H마트에 갔다. 뉴욕에서 유명한 한인 마트란다.
기차 시간에 맞춰 또 달렸다. 케리어를 끌고.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1시간 30분 정도 기차를 탔다. 우리나라 KTX 같은 기차다. 정해진 자리가 없다. 비어 있는 곳, 아무 곳에나 앉으면 된다. 필라델피아에 한밤중에 도착했다. 딸이 지내던 곳은 아파트처럼 생겼다. 주변 건물들 벽이 좀 어두운 색이었는데, 우리가 가는 곳은 흰색으로 최근에 정비된 아파트란다. 딸은 6월까지는 외국인 학생 한 명과 월세로 자취를 했다. 그 방 계약이 끝나면서 갈 곳이 없어졌다. 다행히 다른 친구가, 쓰던 방을 한 달 동안 지내라고 내주었다. 당연히 월세를 받고.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거실과 부엌을 지나야 한다. 방이 세 개인데, 각각 다른 방에서 지내는 학생들이 오늘 잠깐 밖에 나갔다 한다. 조용했다. 딸은, 엄마 먼저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란다. 내일 아침 일찍 버스 타러 나가야 한다고. 뉴저지주에 있는 교회에 간다. 나는 얼른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딸은 또 노트북을 켠다. 나와 딸은, 지원한 곳에서 보내 올 좋은 소식을 기다렸다. 걱정과 긴장을 가셔 준 오늘 여행, 딸과 나는 그 긴장을 풀기 위해 달리고 달렸나 보다. 딸의 모습이 짠하다. 마음이 얼마나 복잡할까! 하루가 또 지났다. 간절함이 더 강해진다.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