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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08. 2024

필라델피아에서의 첫날

2024년 7월 29일 월요일. 허리통증.

7월 29일 월요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니, 딸이 없다. 일찍 학교에 간다고 했다. 좁은 방 안, 창가에 책상 하나가 잇다. 그 위에 접시 두 개가 놓여 있다. 야채샐러드다. 삶은 계란도 올려 있다. 따뜻하게 데워진 찌개 냄새도 난다. 김밥도 있다. 외국인 학생 두 명과 거실 겸 부엌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집이다. 딸은 내 아침을 다 준비해 놓고 나갔다. 새벽에 일어나서, 내가 깰까 봐 소리 없이 걸어 다니며 바쁘게 움직였을 딸. 지원한 곳에서 면접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 면접을 보러 나갔다. 이 방에서는 내가 잠도 자야 하고, 또 집중도 해야 하니, 학교로 간다고 했다.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허리가 삐끗했다. 허리 힘이 쫙 빠지면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를 어쩌나!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살살 간신히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한걸음 한걸음 엉거주춤 걸었다. 이 상황을 딸이 보면 안 되는데. 예전에 한번 이렇게 허리가 아픈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살살 움직이며 걸었었다. 허리를 펴고 바로 서기도 하고, 두 팔을 하늘 높이 쭉 뻗고 스트레칭도 했다. 아주 살살 움직이면서. 우선, 딸이 준비해 놓은 아침을 먹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딸이 미국에 오기 전에 제주도에서 잠깐 함께 지낼 때도,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맛있는 요리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 내가 만들어 먹지 못하는 특별한 요리다.

  움직일 때마다 허리 통증이 심했다. 가까스로 일어나 움직였다. 방이 좁아서 많이 움직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딸은 다른 곳에도 지원서를 보내야 한다고 한다. 정오쯤 되어서야 집에 온다고, 그동안 푹 쉬고 있으란다. 아삭아삭 오이를 씹어 먹으며 창밖을 보았다. 블라인드를 환하게 걷어 올리고 싶었다. 거리에서 이 쪽을 올려다보면 이 방 상황을 알게 되니, 좀 답답해도 블라인드 틈 사이로만 내다보았다. 필라델피아 거리는 위험한 곳이 많다. 지나가는 누구와도 눈을 맞추려 하면 안 된다고 딸은 당부한다. 다행히 지금 머무는 곳은 가장 위험한 지역은 아니다. 6월까지 지낸 곳은 이곳보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한다. 학교 근처는 깨끗하고 안전하단다. 방값이 비싸서, 딸은 학교 근처에서 살지 못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기 오기 전까지 달리고 뛰어다니느라 체력이 고갈된 것 같다. 딸은 달리는 중간중간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잠을 푹 자야 하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마 곯아떨어졌나 보다. 딸이 오후 1시쯤에 들어왔을 때, 그때에야 눈을 떴다. 딸은 점심을 안 먹어도 된다며 같이 자자고 했다. 딸도 얼마나 피곤하랴! 나보다 더 힘들고 지칠 텐데 말이다. 나도 챙기랴, 지원서도 내랴, 합격 소식도 기다리랴, 여행 계획 하나하나 점검하랴. 나와 딸은 침대에 누워 둘 다 잠에 빠졌다. 허리 아프다는 말을 딸에게 하지 않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4시쯤이다. 저녁에는 딸이 좋아하는 교회 언니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만난 언니다. 미술 전공하고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치고 외로울 때면 힘이 되어 주고 챙겨 주던 언니다. 그 언니 이야기를 전화로 많이 들었었다. 먼 타국에서 의지할 사람 없는 외로운 상황, 딸은 교회에 다니며 언니를 알게 됐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절망의 순간에, 생명과도 같은 만남을 만들어 주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 딸은, 내가 그 언니를 만나면 어색해하지 말고 편하게 대화를 하라고 한다. 좋은 언니라고. 나도 그 마음을 간직하고 환한 표정으로 식사 자리에 갔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을 풍기는 모습이, 딸이 의지할 따뜻한 모습이다. 우리는 문어 요리를 먹었다. 접시에 담겨 온 음식 양이 적고, 요리 모양이 정말 고급스러웠다. 향기도 고소했다. 맛집이란다. 우리 셋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른이면서 딸의 엄마로서, 말 실수하지 않으려고 살짝 애썼다. 나중에 헤어지고 나서 딸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언니랑 말할 때 기분 안 좋은 거 있었냐고, 엄마는 원래 좋은 사람 만나면 신나서 말하는데,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내가 힘들 것 같았으면 안 만날 걸 그랬다고. 딸은 내가 그 언니를 만나면 엄청 좋아할 줄 알고 나를 위해서 만났다고 한다. 나는 정말 좋았다. 딸이 믿고 따르던 언니를 만나다니 얼마나 큰 기쁨인가! 내가 긴장했을 뿐이다. 어쩌면 허리 통증 때문에 더 긴장되었나 보다. 나는 딸에게 그 감정을 말해 주었다.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허리 통증으로 걷기가 불편했다. 딸은 "엄마 괜찮아?" 하며 손을 잡아준다. 나는 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환하고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힘내어 걸었다. 미국 필라델피아 거리, 내 손을 잡고 종알 종알 이야기하며, 밝고 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딸. 지쳐 쓰러질 것 같은두 모녀의 상황. 나와 딸은 서로 마음의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딸은 나에게, 서로 힘이 되는 말과 행동만 찾는다. 방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일찍 침대에 누웠다. 내일 갈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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