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5일 목요일
이 아파트 숙소에서 짐을 가지고 나가는 날이다. 아침 햇살이 따사롭다. 낮에 더울 건가 보다. 밤에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졌다. 딸은 천둥 번개를 무서워한다. 딸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메일을 확인했다. "엄마, 교수님께서 연구실에 짐을 갖다 놓아도 된대." 딸은 신나서 말했다. 오늘 오전에 짐을 갖다 놓기로 했다. 큰 숙제가 해결됐다. 이렇게 좋은 답을 해주시다니! 밤새 천둥번개로 긴장되었던 마음과 몸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딸과 나는 어제 먹다 남은 먹거리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딸이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는 동안 치킨과 밥을 프라이팬에 볶았다. 나는 요리를 못한다. 하지만 딸은 맛있다며 맛있게 먹었다. 요리도 아니고 다 양념이 되어있던 것을 따뜻하게 볶기만 했으니 양념 맛인지도 모른다. 짐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결정이 되었기에, 마음이 홀가분하여 더 맛있었으리라!
우리는 이틀 동안 묵었던 아파트에서 나왔다. 모든 짐을 다 차에 실었다. 다행히 승용차에 간신히 다 들어갔다. 연구실 앞에 차를 세우고 딸은 연구실 건물로 들어갔다. 짐을 어디로 가지고 가야 할지 문의하러 갔다. 나는 차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딸은 어느 젊은 여자분과 같이 나왔다. 승용차로 가까이 왔다. 백인여성분이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쭈빗쭈빗 어색한 표정이지만, 반갑고 고마운 표정을 담아 그 여자분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분이 먼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딸은 그분께 나를 소개해 주었다. 교수님이셨다. 짐을 같이 들어주시려고 나오셨단다. 그분은 딸과 함께 짐을 건물 안으로 가지고 갔다. 나도 들어오라고 하셨다. 연구실 건물 앞 안내데스크에는 나이 드신 여성분이 앉아 있었다. 나는 교수실로 들어가지 않고 홀소파에 앉았다. 여러 가지 팸플릿이 꽂혀 있었다. 딸이 근무할 곳을 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경험이다. 딸은 교수님께 선물을 드렸다. LA에서 만난 목사님 사모님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꽃차다. 그때 교회에 가면서 선물을 챙겼어야 하는데 빠뜨리고 갔다. 그 차를 오늘 선물로 드리기로 했다. "이런 거 드려도 될까?" 딸이 고민하며 물을 때 나는 행복하다. 소소한 것들에 대해 잔잔한 대화가 오고 간다는 것, 그 행복을 딸과 만끽한다.
짐을 맡긴 후, 점심식사는 카페에서 샐러드와 어묵세트로 했다. 어묵 맛과 모양이 다양했다. 식사를 마치고 어제 보았던 방을 다시 들어 보러 다녔다. 방 주변 건물, 소음 정도, 주차공간, 안전한 곳인지 살펴보았다. 결정했다. 너무 한적한 곳은 오히려 외로움을 더 느끼게 할 수 있기에 선택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가 넓고 내부 시설도 좋은 곳은 주변에 편의 시설이 없었다. 딸은 운동을 매일 쉽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으로 선택했다. 아파트도 깨끗하고 내부 시설도 어느 정도 다 잘 갖추어져 있는 곳, 후미진 곳보다 안전한 곳, 주변에 상가도 있고 공원도 있는 곳, 그 아파트로 결정했다. 아파트 1층에 요가 학원이 있었다. 1층 로비는 마치 호텔로비처럼 넓다. 정원 뜰도 있고, 카페처럼 테이블이 있다. 나와 딸은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결정했다.
대여할 차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텍사스에 다녀와서 딸이 결정하기로 했다. 우선은 기아차를 마음에 두었다.
우리는 오늘 하루 묵을 숙소에 짐을 갖다 놓고 밖으로 나왔다. 렌트한 차를 반납하고 걸어서 저녁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가는데 무슨 행사를 준비하는 광경이 보였다. 딸 아파트 근처에 있는 공원이다. 아주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공원이었다. 재즈페스티벌을 한다고 했다. 우리를 반겨주는 공연인가! 우리는 신이 나서 마트로 갔다. 저녁식사는 마트에서 준비하기로 했다. 먹을 것을 사가지고 공원에 갔다. 무대와 멀리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준비했다. 돗자리가 없어서 쇼핑백을 찢어 깔고 앉았다. 30분 정도 지나니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공원에 캠핑을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캠핑 의자, 테이블, 와인, 치킨, 피자. 친구모임, 가족, 연인 화기애애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다. 동양인도 흑인도 없다. 모두 백인이다. "엄마, 다 백인이야."
딸은 앞으로 백인들하고만 지내야 한다며 그 긴장감을 표현한다. 이 공원이 딸이 지낼 아파트 근처에 있어서 감사했다. 딸과 나는, 혹시 밤에 시끄러우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페스티벌이 무르익어 갈 때, 우리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걸어서 숙소로 갔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백인들의 여가생활 중 한 면을 보았다. 이제 내일이면 오마하를 떠난다.
하룻밤 묵을 숙소는 좁았다. 이층에 있었는데 침대 하나와 움직일 좁은 틈만 있었다. 샤워실이 딸린 좁은 화장실이 복도옆에 있었다. 딸은 이렇게 좁은 줄 몰랐나 보다. " 엄마, 미안해. 엄마가 불안해할 만한 이런 방으로 숙소를 정해서. 이런 줄 몰랐어." 딸은 돈을 아끼느라 짐이 없는 오늘은 값이 싼 방으로 구했다며 미안해한다. 내일 새벽에 나가니 잠만 잠깐 자고 가면 되니까. 새벽 3시에 일어나 3시 30분에 출발하여 4시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일찍 숙소에 들어온 이유다. 좁은 침대에서 우리는 서로 끌어안았다. 아니 딸이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엉엉 우는 딸, 오마하에서 이제 엄마가 곁에 없고 혼자 외로움을 겪어야 한다며, 엄마 가지 말라고 운다. 혼자 버리고 가지 말라고 운다. 고등학생 때까지 거의 내 품에 잘 안기지 않던 딸이다. 스스로 강한 모습만 보이던 딸, 대학생 때 아픔을 겪었다. 그때 딸 곁에 있어 주었고 그 이후로 딸은 내 품에 안겨 운다. 지치고 힘들 때, 무서울 때. 그러고는 다시 다음날에 단단한 모습으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