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7일 토요일
아침 식사로 여자간사님이 팬케이크와 커피, 과일을 주셨다. 오랜만에 먹는 팬케이크이다. 달콤했다. 따뜻한 커피가 팬케이크 맛을 한결 더 맛나게 해 주었다. 남자간사님은 새벽 6시쯤 사업장(식당)을 둘러보러 나가셨단다. 새벽에 일어나 두 군데 식당을 돌아보는 것이 일상이라 한다. 딸과 두 아이도 팬케이크와 과일을 먹었다.
텍사스에는 관광할만한 곳이 없는데, 그래도 볼만한 텍사스 로데오 행사를 보러 가자고 한다. 소몰이 행사다.
집에서 오전 10시쯤 출발하였다. 두 간사님은 과일, 계란 구운 것, 물을 챙겼다. 같은 음식을 세 개의 통에 담았다. 도시락 챙기는 모습을 보며 소풍 가는 느낌이 들었다. 두 간사님 가족, 작고 따뜻한 공동체 안에 나와 딸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언제 소풍을 간 적이 있었나! 없었다. 나와 딸은 안전하고 평안한 가족과 소풍을 떠났다.
두 아이는 차 뒤칸에서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두 부부는 다정한 모습이다. 이야기도 차분하게 한다. 조곤조곤 말하고 듣는다. 두 분은 내 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딸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야기다. 딸이 이런 젊은 가정의 삶을 보게 되어 감사하다. 딸에게 결혼에 대한 긍정의 마음이 더 커지도록 도움이 된 가정 모습이다. 로데오 행사를 보러 가는 중간에 어느 호텔 로비에서 잠깐 쉬었다. 그 호텔 밖 야외 분수시설이 유명하단다. 징검다리처럼 연결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길 사이사이로 물이 흘렀다. 간사님 가족이 징검다리를 건너 건너 아래로 내려갔다. 딸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고생 끝에 자리 잡은 미국 이민자 생활, 간사님 부부는 두 자녀를 힘겹게 출산했다. 미국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부부다. 두 부부가 다정하게 서로 바라보며 웃는 모습이 해바라기 꽃처럼 환하다.
텍사스 로데오 경기, 티켓 비용을 우리가 지불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간사님 집에 오기 전에 무언가 선물로 보답하고 싶어서 고민했다. 다 갖추고 사시는 분들이라서 딱히 선물로 드릴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선물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도 준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간사님들은 나와 딸에게, 여행을 마치고 나서 마지막 일정으로 푹 쉬었다 가라고 하였다. 텍사스에는 볼 것이 별로 없으니, 집에서 여독을 풀며 편안하게 지내다 가면 좋겠다고 하였다. 간사님들도 8년 만에 보는 로데오 경기라고 하였다. 간사님 집에서 로데오 경기장까지 오는 시간이 좀 걸린다. 아마도 이곳에 올 계획은 없었던 듯하다. 8년 만에 왔다고 하니! 우리가 와서 특별히 낸 시간이라고 하였다. 나와 딸 덕분에, 두 자녀와 특별한 나들이를 하게 됐다고, 고맙다고 하였다. 경기장에서 신나게 환호하며 관람하는 4명의 가족, 나와 딸로 인해 더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달리는 소 위에서 오래 버티는 경기, 말을 타고 달리며 양 목에다 목줄을 거는 경기, 말을 타고 장애물을 빨리 돌고 오는 경기다. 경기 내내 소와 말, 양이 불쌍해 보였다. 경기 시간이 길었다. 배가 고팠다. 남자 간사님은 중간에 도시락통 뚜껑을 열고 구운 계란과 과일을 먹었다. 나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먹고 싶다고 말을 못 했다. 사실 간사님이 나에게 먹을 거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을 하였다. 그렇게 말한 것이 후회가 됐다. 배가 너무 고파왔기 때문이다. 경기가 일찍 끝날 줄 알았는데, 2시간은 하는 듯하였다. 사실, 아침으로 팬케이크를 먹고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였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집에서 오전 10시에 나왔는데 오후 3시가 넘어갔다. 용기를 냈다. 간사님께 말했다. 구운 계란을 먹고 싶다고. 남자 간사님은 도시락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 도시락은 나와 딸을 위해 따로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나는 내가 먹겠다고 하면 간식이 줄어들까 봐 참았던 거였다. 간사님 부부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을 것을 미리 아시고, 도시락에 과일과 계란 구운 것을 모두가 먹을 만큼 충분히 준비했던 거다. 로데오 경기장은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면서 지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정해진 방향 없이 날뛰는 소 등에서, 선수가 떨어지지 않고 버텼을 때 관중은 환호를 하였다. 어린아이선수가 실수를 하면 격려의 말로 가득했다. 서로를 맘껏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많이 들으니 덩달아 신이 나고 힘이 났다. 나와 딸은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손을 높이 들어 환호도 하였다. 간사님 가족 모두도 그랬다. 비록 소와 말, 양은 불쌍했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관람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넓은 들판 한가운데 멋진 호텔도 있고, 그 주변에 커다란 고깃집이 있었다. 텍사스에서 유명한 훈제 고깃집이란다. 간사님 부부가 고기를 구워 오는 동안 나와 딸은 두 아이와 2층 식탁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딸은 두 아이와 놀아 주었다. 어쩌면 다 피곤할 텐데, 신난 모습이다. 간사님 부부는, 나와 딸에게 이곳 고기를 사주고 싶었다고 하였다.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골고루 맛보았다. 배고 고팠어서 그런지 모두 다 맛있었다. 그동안 만난 지인분들에게는 나와 딸이 식사 대접을 해드렸다. 이 간사님 가족에게도 사드리려고 했는데, 두 분이 우리는 편히 쉬며 맛있게 먹기만 하란다. 지쳤던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딸도 엄청 행복해 보였다. 오마하에 가서 혼자 있게 될 일을 잠깐 잊은 듯 보였다.
집에 돌아와 간사님 부부는 아이들이 잠잘 준비를 하게 한 후, 재우러 2층으로 올라갔다. 딸 카톡에 문자를 남겼다. 우리와 조용한 대화시간을 못 가졌다고, 저녁 8시쯤 모여 기도제목도 나누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자고. 아이들이 잠을 안 자고 뒤척여서 그런지 두 간사님은 10시가 지나서야 내려왔다. 나와 딸은 그 사이에 내일 떠날 준비로, 가방을 정리했다. 딸은 그동안 찍었던 사진도 노트북에 옮겨 주었다. 용량이 너무 커서 다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 일부만 옮기고 나머지는 나중에 이메일로 건네받기로 하였다. 딸과 헤어질 준비를 여기서 하니, 허전하거나 울적한 느낌이 없었다.
내 짐을 정리하는 중에 딸은 내 핸드폰 유심칩을 나에게 달라고 했다. 핸드폰 요금을 아끼려고 빼놓았었는데, 이제 다시 끼우려 했다. 그런데 없다. 딸 이삿짐 큰 캐리어에 넣어 놓았는데, 그 캐리어는 지금 이곳에 없다. 가지러 갈 수도 없다. 나와 딸은 큰 실수에 잠깐 당황했다. 나는 딸을 안심시키려고 다 괜찮다고 말했다. 정말 괜찮은 마음이었다. 두 가지 걱정되는 일 중 하나는, 서울에 도착하여 다음날 바로 건강 프로그램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그 촬영팀과 연결이 잘 안 될까 봐서다. 두 번째 일은, 서울에 가서 아들과 통화를 해야 할 때다. 카톡은 되지만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에서는 카톡도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 후, 다다음날 서울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제주도로 떠나기로 했다. 강릉에서 서울로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아들과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딸이 이 상황을 아들에게 말하니, 아들이 미리 구입하여 서울집으로 배송시켜 놓겠다고 한다. 당황스러운 상황일 때, 여유 있는 모습으로 딸을 안심시키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딸이 유심칩을 이삿짐 캐리어에 넣어 놓고 챙기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후회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간사님 부부가 거실로 내려왔다. 이야기는 길고 길어져서 새벽 3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여자 간사님의 성장 이야기, 간사님 부부의 자녀 양육 이야기, 부부가 다투었을 때 풀어가는 지혜, 미국에 정착하게 되기까지의 기적 같은 일들, 본점과 체인점까지 운영하게 된 과정, 딸의 미국 유학 이야기, 딸이 오마하까지 가게 된 과정,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남자 간사님은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멈추었다. 아침 10시에 집에서 공항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딸은 미국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꼭 껴안고 잤다. 딸은 울지 않았다. 한결 단단한 모습으로 안겼다. 이 가족이 준 사랑의 힘이다. 젊은 두 부부가 대화 내내 딸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이 되는 말을 해주었다. 두 간사님 모두 힘든 젊은 시절과 신혼 때를 보낸 경험을 말해주었다. 힘들면 연락하라고, 9시간 운전하여 달려가겠다고, 딸에게 말해주는 두 간사님. 딸의 마음이 평안한 마음과 위로로 가득 채워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