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6일 금요일
텍사스로 떠나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상태다. 그래도 정신 번쩍 차리고 준비했다. 짐은 내 짐이 전부다. 딸 물건은 교수님 연구실에 맡겨 놓았다. 우리의 착함도 아니고 그분의 선함으로 얻은 홀가분함이다. 간밤에 딸은 엉엉 울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오마하도 싫지만, 한국은 더 가고 싶지 않단다. 딸이 이곳에서 힘들어도 외로워도 기쁨으로 참아내야 하는 이유다. 새벽이 오고 딸은 다시 단단한 모습이다. 그렇게 조금씩 더 다듬어 간다. 멋진 보석이 드러나려면 깎아져야 하듯이, 딸도 나도 아들도 그렇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 아픔을 겪고 나서야 성숙해진다.
숙소에서 3시 30분에 택시를 불렀다. 4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 6시에 비행기에 탑승, 시카고를 경유하여 11시에 텍사스 공항에 도착했다. 두 분 간사님이 공항에 나와 있었다. 나는 간사님 부부를 2013년도 서울에서다. 나는 2013년도에 예수전도단 선교단체의 예수제자훈련을 받았다. 그때, 나는 훈련생이었고, 두 분은 간사로 훈련생들을 섬겨주었다. 2014년도에는 나도 간사로 같이 활동했다. 그 이후, 두 분은 미국에서 산다. 두 분의 가정이 미국에 정착하여 이민자로 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놀라운 기적이다. 이 분들 이야기를 책으로 써도 몇 권이 되겠다. 기적 같은 이야기다. 두 부부는 나와 딸을 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딸은 간사님과의 만남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딸은 내가 아는 지인분들과 자연스럽게 만났다. 고등학생 때까지 이런 일들을 피하던 딸이다. 그런데 내가 미국에 온다고 하니, 미국여행 중에 만나고 싶은 지인분이 있으면 다 말하란다. 다 만날 수 있게 계획하겠다고. 지금 그 마지막 지인들이다. 두 분 차가 외제차였다. 딸은 이 차가 엄청 좋은 차라며 놀라워했다. 남자 간사님 차는 테슬라, 자녀 두 명과 나들이 갈 때 타는 차는 여자 간사님이 이용한단다. 음식점 사업이 잘됨을 보여주는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국숫집으로 데리고 갔다. 부부 간사님은 미국에서 국수 음식점을 운영한다. 매장이 두 곳이다. 그 국숫집이다. 외부 간판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한국 전형적인 국숫집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메뉴도 다양했다. 다 맛있다며 네 가지를 다 주문했다. 사장님인데도 다 주문하고 계산했다. 직원들이 나와서 사장에게 굽신거리지도 안사를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사장을 우습게 여기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편하게 대해왔다고 하셨다.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내가 가장 많이 먹었다. 오랜만에 국물 있는 음식을 먹어서 개운했다. 사장님인 남자 간사님은 음식점을 나오기 전에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역시 사장님이었다.
국숫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간사님 집으로 왔다. 영화에서나 보는 2층집 개인 단독주택이다. 1층에 창고와 주차장이 있고, 1층 거실과 주방도 넓었다. 서울 아파트 공간보다 2배 정도나 넓었다. 1층 바깥에 잔디가 깔려 있고, 그곳에 농구골대도 있었다. 2층에는 방이 세 개다. 아이들 방 각각 한 개씩, 부부 방 한 개, 아이들 사용하는 화장실과 욕실 1개, 부부방에 화장실과 욕실 한 개, 1층에 화장실 1개다. 부엌 요리공간도 넓고, 식탁도 10명이 앉을 정도로 넓었다. 거실에도 아이들이 공부하거나 앉아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미국영화 속에 나와 딸이 등장한 기분이 들었다. 주택과 주택 사이사이에 나무들이 있고, 집과 집 사이가 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서울과 다르다. 주택가는 조용하다.
집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았다. 2층 아이들 방 중에 간사님들 딸아이 방에 짐을 놓았다. 우선은 이곳에서 2박 할 동안 필요한 짐만 2층으로 가지고 갔다. 서울에 가지고 갈 큰 짐은 1층 거실 한 구석에 놓았다. 짐을 정리하고 조금 지나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딸 엘리와 아들 에반이다. 엘리와 에반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두 아이가 정말 고마웠다. 혹시라도 우리를 어색한 표정과 불편한 몸짓으로 대한다면 어쩌나 했다. 두 아이는 딸을 좋아했다. 딸도 두 아이와 금방 친해졌다.
여자간사님은 찬양연습하러 다녀온다고 했다. 찬양팀과 저녁식사도 하고, 밤 10시나 되어서 온다고 저녁은 남자 간사님과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했다. 남자간사님이 저녁 요리를 맛있게 해 주실 거라고. 아직 저녁시간이 되려면 4시간 정도 더 있어야 했다. 딸과 나는 여자간사님이 나갈 때 같이 나가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남편이 운동화를 사달라고 해서 사러 가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집 근처에 큰 매장들이 있다고 했다. 핸드폰도 보고, 딸 운동화도 보기로 했다. 여자간사님이 우리를 매장 앞에 내려 주었다. 밖은 너무 뜨거웠다. 살갗이 탈 것만 같은 더위다. 매장에서 딸 운동화와 남편 운동화, 내 양말을 샀다. 우리가 원하는 사이즈와 디자인이 다 있어서 쉽게 샀다. 핸드폰 매장은 이곳에 없고 큰 도로 건너편에 있었다. 건너편까지 어떻게 갈까? 매장에서 물건을 다 사면 남자 간사님께 연락을 하라고 했다. 데리러 오겠다고. 건너편 매장까지 택시 타고 갈까? 고민하다가 길을 찾아보았다. 큰 도로 건너편으로 가는 터널길이 있었다. 딸과 나는, 살갗을 태울 듯 쬐어 내리는 태양빛을 받으며 걸었다. 걷다 보니 그냥 걸을만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걷는다면 쓰러질 지경이 되었을 거다. 핸드폰 매장에 내가 사려는 핸드폰은 없었다. 미국에서 핸드폰을 살 기회는 이제 없다. 내 핸드폰 렌즈가 깨졌다. 나는 핸드폰을 잘 떨어뜨린다. 어느 날 사진을 직었는데 사진에 다섯 손가락 자욱 모양이 보였다. 렌즈가 깨져서 그랬다. 그 이후 핸드폰으로 사진을 못 찍는다. 미국에 온 김에 내가 가지고 있던 아이폰으로 사려했지만 그냥 사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매장에서 나와 남자 간사님게 연락했다. 간사님은 마침 엘리 미술공부하는 곳에 엘리를 데리러 가려고 한다기에 우리도 가도 된다고 했다. 간사님이 이곳저곳 번거롭게 두 번 왔다 갔다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엘리를 보러 같이 가고 싶기도 하고. 우리는 테슬라를 타고 엘리가 미술공부하는 주택으로 갔다. 미국에서는 학원이 아니라, 한국인들 중에 재능을 살려 아이들을 지도한다고 한다. 동생 에반도 누나 엘리가 공부하는 미술 학원에 같이 갔다. 우리는 어느새 한 가족이 된 듯했다. 달에게 이런 분위기를 맛보게 해 주시는 간사님 가족이 고마웠다. 내가 미국을 떠나고 나서, 딸이 혼자 외로움을 느끼기 전에, 행복한 가족과 함께 따스한 분위기로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니 감사하다.
엘리의 미술학원에서 엘리가 기뻐하며 노는 모습을 보았다. 모래놀이장도 있고, 물감놀이장도 있었다. 우리는 집에 같이 왔다. 엘리와 에반, 딸이 두 아이와 행복한 모습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남자 간사님은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저녁 요리는 연어샐러드와 김치찌개, 멸치볶음이다. 푸짐했다. 진수성찬이다. 간사님 부부는 아마도 나보다 15살 정도가 젊다. 젊은 부부가 두 자녀와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본다. 앞으로 가정을 만들어 갈 딸에게도 큰 도움이 될 모습이기에 더욱 고마웠다. 저녁 8시쯤 엘리와 에반이 잠자리에 들어갔다. 남자 간사님도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러 가신다고 나가셨다. 밤늦게야 돌아오신단다. 딸과 나도 샤워를 하고 9시 30분쯤 잠자리에 누웠다. 오마하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텍사스에서의 하루, 안전한 가정 분위기를 누리는 첫날이었다. 그동안 쫓기듯 찾아야 했던 합격 소식, 방 구하기, 짐 보관. 앞으로 낯선 곳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할 딸을 위로하듯이, 2박이라는 시간이 허락되었다. 평안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기쁨을 가득 채울 기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