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수요일
오늘 아침 식사는 어제 마트에서 산 치킨과 우유, 야채로 했다. 넓은 부엌과 식탁, 거실이 있어 편했다. 많은 짐을 놓고도 아이가 뛰어놀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여유로웠다. 자녀들이 성장하는 동안 가정에 없었던 기역자 소파도, 넓은 침대도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오늘까지만 이 아파트에서 지내고 내일은 다른 숙소로 간다. 딸은 숙소 비용을 아끼기 위해 내일은 좁은 곳으로 예약했다. 이 아파트는 많은 짐을 가지고 있을 동안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16일 날 오마하를 떠나기 전에 방을 구하고 그 방에 짐을 넣어 놓을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자동차 대여하는 곳에 갔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버스 한 대를 기다리는데 거의 1시간이나 걸린다. 차 없이는 출퇴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방도 구해야 하고, 차도 알아보아야 한다.
근무할 병원 근처,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 중심가, 주택가,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방세가 싼 곳은 방이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거나 건물이 낡았다. 낯선 땅,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 한국인도 안 보이는 곳이다. 안전하고 생활이 편리한 방, 그러면서 방세가 저렴한 곳을 찾았다. 그러한 곳이 있을 리가 없다. 오전과 오후, 몇 군데의 방을 보았다. 깨끗하면서도 더 싼 곳을 알아보기 위해 내일도 보러 다니기로 했다. 방을 보러 다니는 동안, 딸과 나는 돈 많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곳은 다행히 노숙자들이 안보였다. 거리가 깨끗하다. 거의 백인들만 보인다.
우리는 승용차 대여를 알아보기 위해 자동차 매장으로 갔다. 딸은 기아자동차를 먼저 알아보았다. 소개해 주시는 분이 친절했다. 모두 미국인이다. 꼼꼼하게 알아보는 딸, 좀 더 싼 가격의 차를 찾는 딸.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딸 옆에 앉아 그저 멍하니 매니저와 딸의 표정만 살필 뿐이다. 딸은 다른 곳도 알아보고 오기로 하고 기아차 매장을 나왔다. 현대차 매장에 갔다. 현대차는 기아차보다 더 비쌌다. 일본차 매장에 갔다. 딸은 일본차가 비싸지만 그래도 한번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현대차나 기아차보다 비쌌다. 딸은 나와 의논을 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가격이 가장 싼 기아차로 내일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저녁에 현대차에서 연락이 왔다. 좀 더 싸게 해 주겠다고. 딸은 전화를 끊고 고민했다. 현대차 매니저와 상담할 때, 그 매니저는 딸에게 새 차가 아닌 한번 수리한 차를 권유했다. 겨울에 눈 때문에 찌그러져 수리한 거라 새 차와 다름없다고. 그러면 좀 싸게 해 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안된다고 했다. 딸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낮에 그렇게 확신에 차서 강하게 말하더니, 저녁에 다시 싸게 해 준다고 연락 오다니. 딸과 나는 내일 기아차를 다시 보러 가기로 했다. 방도 차도 결정을 못한 상황이다.
아직 방을 구하지 못해 짐을 어떻게 하고 떠나야 할지 막막했다. 병원에 근무하는 다른 연구생에게 부탁할까? 짐 보관하는 곳을 알아볼까? 딸과 나는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떠올려 보았다. 그러던 중에 나는 딸이 근무할 연구실 교수님을 떠올렸다. "딸, 연구실 교수님께 부탁해 보면 어떨까?" 딸은 아직 한 번도 뵙지도 않은 분에게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하냐고 걱정했다. 나는 그래도 한번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분이 딸에게 친절하다는 걸, 딸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느꼈기 때문이다. 딸은 그분께 이메일을 보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내일은 이 짐을 가지고 이 방을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마하를 떠나 텍사스로 가야만 한다. 딸은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는 동안, 딸 짐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텍사스로 가지고 갈 내짐과 딸이 이곳에서 사용할 짐을 분리했다. 딸 이삿짐은 커다란 캐리어 한 개와 작은 기내용 캐리어, 큰 비닐봉지 한 개에 담았다. 나머지 큰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한 개는 다 내 짐을 넣었다. 딸은 낡은 캐리어를 갖고 나에게 새 캐리어를 다 주었다. 딸은 새 캐리어 두 개를 다 나에게 주느라, 아파트 쓰레기봉투인 검은색 비닐봉지에 나머지 짐을 넣었다. 엄마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캐리어 가지고 다리라며. 마음이 찡하게 울린다. 저녁을 먹고 한참을 짐정리했다. 짐보다 담을 가방 크기가 작다 보니 꾸역꾸역 넣느라 짐을 넣었다 뺐다를 여러 번 했다. 그렇게 짐을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딸은 고맙다고 말한다.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난데 말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내 존재를 인정해 주고 챙겨주는 딸, 아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맙다. 이제 자야 할 시간, 딸과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이메일 답장이 오지 않은 것에 살짝 걱정이 됐다.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메일을 확인 못하셨을지도 모르니까,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보자고 서로 위로했다.
우리는 또 부둥켜안고 잤다. 딸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얼마나 불안한 일들 연속인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전혀 없다. 이곳, 외딴곳에 혼자 버리고 가지 말라며 흐느껴 우는 딸을 꼭 안아 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가장 따스한 품을 딸에게 내어 주는 것, 등을 토닥여 주며 다 잘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며 말해주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