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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24. 2024

약속

  하루 앞 일도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른다. 내가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했을지라도 다 무너질 때가 많다. 계획이 잘못되어서도, 성실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그렇다. 나는 그렇다. 학교 교실에서도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체육활동을 하려고 준비했는데, 갑자기 교실 바닥에 토를 하는 아이가 생기기도 한다. 부랴부랴 서둘러 아이를 챙기고, 토를 치운다. 10여분의 시간이 흘러간다. 계획했던 내용을 다하지 못한다. 아이들과 약속했던 체육활동을 다하지 못한다.

  오늘 밤에 아들, 딸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딸이 있는 미국 시각으로 아침 7시, 한국 시각으로 밤 10시다. 며칠 전부터 이 시간을 기다렸다. 아들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카톡 울릴 때, 마음이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서울에 갔다가 강릉으로 가는 중인데, 도로 교통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늦게 되어, 동생과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 약속이 깨졌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며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쩔 수 없으니, 조심해서 강릉까지 잘 도착하라고. 딸도 미국에서 아침에 일어나 이 메시지를 보게 된다. 나처럼 마음이 속상하겠지! 그래도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아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있기에, 딸과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한다. 다시 약속을 정하지만.

  대학 친구 여섯 명과 올여름에 약속했다. 이번 겨울에 동남아 여행 가자고. 며칠 전, 동남아 여행 날짜를 정하기 위해 카톡방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여름에 한 약속이 깨졌다. 3박 4일이라는 기간, 여섯 명이 하나 되지 못했다. 서울에서 하루를 같이 보내기로 했다.

  며칠 전, 지인분과 통화했다. 나의 삶을 지지해 주시는 분이시다. 겨울 방학이 시작될 때쯤, 제주도에 놀러 오시기로 했다. 나는, 지인분이 내 방에서 같이 며칠 지내면 좋겠다고 초대했다. 약속했다. 이틀뒤, 인스타에 올라온 독립출판 강의, 전에 두 번이나 들었던 강의다. 6주 동안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책을 편집한다. 자신이 쓴 글을 직접 편집하여 독립출판까지 하는 과정이다. 나는 바로 신청했다. 방학 시작하면서 갖게 되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신청비용을 입금했다. 그러고 나서 생각났다. 지인분이 제주도에 여행 오시면 내 방에서 있기로 한 약속. 전화를 했다. 나에게 필요한 강의가 있는데, 그 과정을 마치려면 함께 여행할 시간이 없게 된다고. 그분이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다른 날짜에 오시기로 했다. 어제, 기도를 하는 중에 마음이 불편해, 독립출판 과정 신청한 것을 취소했다. 지인분과 먼저 약속했는데, 내 욕심을 챙기느라 바로 약속을 무시하다니. 지인분께 전화를 했다. 취소했다고, 약속했던 대로 오시고 싶어 했던 때에 오셔도 된다고. 지인분은 좋아하셨다. 약속이 제자리를 찾으니 가뿐한 마음이다. 내가 원하던 것이 취소되어 아쉽지만.

  나는 나와의 약속도 잘 어긴다. 잠자는 시각을 10시로 해 놓았지만, 11시를 넘기곤 한다. 물론, 다음날 아침 7시로 알람을 맞추어, 잠자는 시간을 7시간 이상 확보한다.

  결혼식 때,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약속은 온데간데없었다. 거친 파도를 넘고 넘었다. 파도에 매몰되기도 했다. 거친 풍파에서 건져졌다. 아직, 회복할 시간이 남았다. 그 약속을 기억하려는 의지와 마음만 있다면 지킬 수 있겠지! 좁쌀만 한 기대, 그 기대를 품는 이유는 무얼까? 약속이라서?!

 현재가 지나고 바로 앞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쉽게 약속하는 나다. 이제 그 말을 바꿔야겠다. 앞에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렇게 하기로. 그 특별한 일은 내 욕심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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