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급 운영을 할 때, 아이들끼리 서로 소통의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학년 초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교실에서 움직이는 아이들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었다. 아침에 등교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끼리 관계가 이루어진다. 가장 친한 친구 한 명과만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도 있고, 교실 이쪽저쪽 돌아다니며 관심을 보이는 아이도 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노는 여자 아이,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노는 남자아이가 있는 반면, 동성 하고만 지내려는 아이도 있다. 공부시간 이외에는 단 한 번도 다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아이도 있다.
학급은 작은 사회공동체다. 아이들이 가정을 벗어나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다. 자신과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도 같은 모습도 전혀 없는 곳이다. 모두 다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생각도 마음도 생김새도 다르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처음 얼마 동안은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화롭기만 하면 좋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곳이 교실이다.
나는 아이들이 서로 알아갈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자리를 2주에 한 번 정도 바꾸었다. 일부러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리만 바꾸어도 소통할 기회가 된다. 수업시간이나 청소시간에 팀을 나눌 때도 서로 친해질 기회가 되도록 구성했다. 학급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할 때 가장 고심한 부분도 팀 구성원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갈등을 풀어 가는 과정에서 관계 맺는말과 행동을 배운다. 함께 공부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듣는 힘을 기른다. 게임을 하면서 졌을 때 감정을 조절하는 법도 배운다.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날 일은 별로 없다.
내가 맡는 학급아이들은 움직임이 활발했다. 학년초 며칠 동안은 혼자 조용히 있는 아이가 있었을지라도 1주, 2주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오고 가는 모습으로 변했다. 서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모둠 활동과 자리 바꿈, 협동 학습, 학급 행사가 큰 역할을 해주었다. 급식을 먹으러 갈 때조차 앞 뒤 친구들끼리 소통하며 관계가 이루어진다. 급식 줄 서기 방법을 매일 다른 방법으로 하는 이유였다. 아이들은 서로 소통하고 싶어서 앞, 뒤 친구들을 툭 건드리기도 하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아이들이 서로 알아가며 일어나는 갈등은 아주 작은 말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아닌데. 난 놀린 적 없는데”
“네가 그랬잖아.”
한 아이는 놀렸다고 느끼고, 다른 아이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교사로서 내가 하는 역할은 갈등상태에 놓인 아이들이 차분하게 그 갈등을 풀어가며 사회성을 기르도록 돕는 거였다.
듣는 사람이 불편했다고 말하면 “그랬구나. 미안해.”라고 그 감정을 인정해 주면 된다고, 한 번 그렇게 해보라고 권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던 아이도, 대화를 이어가다가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고 지나칠만한 일도 그냥 넘기지 않고 서로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교사의 역할을 잘 해내려는 나의 의지였다. 내가 교실에서 힘든 마음 중 하나는, 한 아이라도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학급 공동체는 바른 사회성을 길러주기에 좋다. 그 사회성은 서로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갈 때 길러진다는 걸 해마다 아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교사는 편하다. 나는 그 편함보다 움직임이 활발한 교실 모습이 좋았다. 교실에서 뛰거나 소리 지르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서로 소통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다양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성장 단계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배워 가는 것이 있다. 지식은 혼자서도 채워갈 수 있지만, 사회성을 기르는 일은 사람들과 함께일 때 가능하다.
자녀의 학교 생활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부모가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자녀 대신 모든 걸 해결해 주려는 의지를 보인 부모였다. 당장은 자녀를 위해 힘을 보태 준 듯 느껴질지 모르나, 오히려 자녀의 내적 성장을 막는 역할을 하는 거였다. 그 학부모의 자녀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솔직하게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힘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긴 거다.
가족과의 좋은 관계 맺기는 부모 자녀 간에 허용적인 일들이 많아 쉬울 수도 있다. 학급 공동체라는 사회는 가정보다 관계 맺어가는 과정이 훨씬 힘들다. 모두가 다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가정과 학급 공동체를 같은 차원으로 생각하고 자녀의 행동에 대해서만 옹호하는 것은 자녀의 사회성을 기르는 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을 풀어가며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 생각을 분명하고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걸 못했다. 그렇게 성장해 온 나를 돌아보며, 학급 아이들에게는 관계를 바르게 맺어가는 힘을 기르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간다. 무엇이 좋은지 싫은지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어른들은 작은 오해를 그냥 마음에 남겨 두는 경우가 많다. 그 작은 걸 가지고 뭐 저럴까,라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을 묻어두고 쌓이게 한 후에 걷잡을 수 없는 갈등 상황까지 치닫기도 한다. 아이들도 소통하는 기회를 주지 않으면 혼자 생각하고 혼자 묻어두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아이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겪는다. 갈등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좋은 방향으로 풀어가는 힘을 기르면 된다. 그 힘은 앞으로 살아갈 때 큰 힘이 되어 줄 거다.
내가 칠판 한쪽에 써 놓은 문장이다.
학년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은 서로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갈등을 많이 겪으며 관계를 맺은 결과다. 마음이 성장한 정겨운 모습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갈등을 긍정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을 가르치며 나의 삶에도 적용했다. 특히, 남편과의 갈등 상황에서 먼저 듣고, 공감한 후에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교사가 되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켜 온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