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캐스터 나와 주세요.”
“네. 오늘의 날씨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시민을 만나 보겠습니다.”
네 명의 아이가 한 모둠이 되어 만든 날씨 예보 장면이었다. 나는 날씨 예보 장면에 필요한 역할과 활동 내용만 안내했을 뿐이었다. 역할극 대본이나 어투, 몸짓은 아이들의 창작이었다.
3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모둠 활동 시간마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역할 하나를 정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양보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 학기가 지나고 다음 학기가 되자, 그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모둠 협력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는데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움직였다. 3월이 지나고 4월, 4월이 지나고 5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쓸데없는 다툼에 자신들의 열정을 낭비하지 않으려 했다.
“모둠 활동의 목적은 모두가 함께 협력하여 이루어 내는 즐거움을 누리는 거랍니다.”
나는 3월부터 모둠 활동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해 주었다. 아이들은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모둠에서 자신들의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아이는 제외시키려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너는 가만히 있어”라는 말로.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모둠은 한 시간 동안 싸움판 모습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의 생각대로 한다는 건,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도 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으로 키워져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래 학년에서 겪으며 키워왔을 법한데도,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면 새로운 시작이 된다. 더 큰 마음을 키워가는 기회가 되는 거다.
“모둠 활동은 모둠 구성원 모두가 작은 부분이라도 참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한 명이라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해 준다.
“야, 너 이거 못하잖아, 너는 가만히 있어.”
“이렇게 할 거야, 왜 너만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해?”
이렇게 다투던 말이 4월, 5월이 되면서 대화 내용이 달라진다.
“지훈아, 너는 그리는 건 어려워하니까, 이거 가위로 오리는 거 하면 어때?”
“이 부분은 색연필로 색칠하면 어때? 여기는 색종이로 찢어 붙이고.”
“괜찮겠다. 그럼, 색칠하는 부분은 내가 할까? 내가 색칠은 꼼곰하게 잘하거든.”
“그래, 그럼, 색종이 찢어 붙이는 건 누가 할까?”
아이들은 함께 활동하며 알아간다. 각자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것이 모둠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그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친구가 갖고 있는 재능도 발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줄 때 더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 안에 발표 연습까지 마쳐야 합니다.”
이 말에 아이들은 서두르되, 서로를 재촉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 협력하는 수업 속에서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모둠 활동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에 다양한 생각들이 펼쳐지며 오고 간다.
실내 체육 시간, 공 하나의 움직임에 모든 아이들이 잽싸게 자리를 이동한다. 공을 피하며 웃는 아이들,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며 웃는 아이, 함께 하는 자리여서 아이들은 웃고 신나 하며 힘을 낸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토닥거림도 받고,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이다.
수학 모둠 게임 시간, 짝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혼자 빨리 푸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짝꿍에게 문제를 설명해 주면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잘하는 아이가 답답해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와주며 푸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게임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야. 같이 해내는 게 목적이야.”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힘을 기르는 공부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지식은 나 혼자도 쌓아갈 수 있다. 나와 다른 친구들과 생각을 조율해 가는 것, 내 재능을 다른 친구의 것과 조화롭게 펼쳐가는 것, 내가 있는 곳이 아름다워지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함께 활동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기른다. 그 안에 나도 있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