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by 수수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나는 교사가 되고 난 후, 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학급 담임교사로 몇십 명의 아이들과 1년을 함께 생활하고 나면 아이들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대할 때, 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바라보았다. 오늘 잘못한 행동도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바른 행동으로 고쳐가는 아이들을 경험해 왔다. 변하지 않게 되는 경우는 그 아이 부모님의 생각이 변하지 않을 때뿐이었다.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는 4학년 남자아이가 있었다. 궁금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 가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한 아이였다. 정직하고 성실한 생활이 몸에 베인 아이였다. 그 아이가 나와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할 때가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였다. 나에게 달려와 내 코 앞에서 따지듯이 큰 소리로 질러대다시피 말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의 자그마한 실수에도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다며 위협하듯이 말한 적도 있었다. 가정에서 외동으로 사랑받는 아이였다. 다양한 학원에서 방과 후 활동을 많이 하느라 쉴 시간이 없다고 토로하던 아이였다. 늘 피곤하다며 그 피곤한 것조차 마치 나와 다른 아이들로 인한 것인 양 말하곤 했다.

“피곤하다고요.”

모둠 친구들과 함께 활동을 해야 하거나 학급 전체 활동이 있을 때, 종종 하던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도 쉬려고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늘 열심이었다. 다만 말을 할 때 공격적이고도 위협적이었다. 다른 아이와 갈등이 생겼을 때, 폭발할 것 같은 울부짖는 모습으로 나와 상대방 아이에게 쏟아부을 때,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 아이로 인해 학급 분위기가 가끔 불안해지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신의 감정을 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울부짖으며 말할 때는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과 순서를 학년 초에 안내해 준 대로 대화해 보는 방법을 시도했다.

듣고 내 생각을 말하고 다시 듣고 내 생각을 말하고, 를 반복하는 방법이었다. 내 입장만 퍼붓듯이 말하지 않고 상대방도 말할 시간을 주는 거였다. 처음에는 그 방법대로 하지 못했다. 상대방 아이가 말하려면 잘라버리고 자신을 변호할 말만 빠르게 했다. 감정조절이 전혀 안된 흥분된 상태로. 이 아이와 다른 아이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날이면 고통스러웠다. 체격도 큰 아이가 마치 나를 밀쳐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공감해 주고 다독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행동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았다. 진정이 된 후 행동을 하나씩 짚어 주며 그때의 감정이나 생각을 차분하게 말하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두려움을 버리고 그 아이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 아이는 조금씩 달라졌다.


임원선거가 있던 날, 그 아이도 후보 등록을 했다. 하지만, 임원에 당선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아이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고치려는 의지를 더 보였다. 나와 친구들 앞에서 하는 말투가 부드러워졌고, 온몸을 던지듯 하던 행동도 차분해져 갔다.

“저 5학년 때는 꼭 회장이 되고 싶어요. 전교 임원도 되고 싶고요.”

학년 말이 되었을 때, 늘 피곤하고 지친다고 말하던 그 아이는 자신의 힘듦을 다른 사람에게 퍼붓지 않는 아이로 변해 있었다.

‘저 아이는 너무 나쁜 아이야. 나와 다른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잖아. 자기 멋대로’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내가 옳았다고 증명해 주었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아이의 말과 행동은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느 누구도 나쁜 아이로 있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도 그것이 나쁘다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너 나쁜 아이야”라는 말은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모든 상황에서 자신을 좋은 아이로 변명할 거리를 찾는다. 그 핑계는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당연함이다. 자신의 행동이 왜 나쁜지 몰라서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들이 많다. 나쁜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 돌아올지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곤 한다. 그럴 때, 내가 최선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왜 그 행동이 옳지 않은지, 그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그런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하면 결국 자신을 스스로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나는 교사가 단호하게 말해야 할 때를 놓치지 않았다.

나쁜 아이는 없다. 나쁜 행동만 있을 뿐이다. 자신이 상대방을 때려서 상처가 났는데도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다며 울분을 터드리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부모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왜 때렸는지 때린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였다. 내가 원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말로 해야 하는 데 때려서 맞은 아이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 아이와 부모님은 같은 반응이었다. 왜 때렸는지 그 마음을 먼저 알아주지 않아서 화가 난다고. 그 이후에도 다른 친구를 때리거나 건드리는 행동을 쉽게 했다. 부모님과 가정에서 하는 대화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부모님께 전했다. 다친 아이의 부모님이 오히려 “괜찮아요. 제 아이도 잘못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힘드시겠어요. 저희는 괜찮아요.” 라며 나를 위로해 주시곤 했다. 때린 아이의 부모님께 이런 상대방 부모님의 반응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2개월 정도가 지나는 동안 나쁜 행동을 하던 아이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범아, 요즘 네 말과 행동이 달라졌어.” 표정도 밝아진 나쁜 아이였던 영범이에게 칭찬하며 말했다.

“엄마가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으래요.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혼낸대요.”

부모님이 변했던 거였다.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요즘은 바쁜 부모들이 많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살필 시간이 부족하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다녀오면 아이는 잠든다. 자신에게 쌓인 불만을 학급 안에서 푸는 경우가 잦을 수밖에 없다.

“힘든 일이 있으면 집에서 부모와 대화하며 풀어야 해.” 내가 아이들에게 수시로 하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안타가운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님과 대화할 시간이 없어요. 엄마는 제 이야기를 안 들어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칭찬만 듣고 싶어 한다. 혼날까 봐 솔직해지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부모는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일방적인 자녀 말만 믿고 흥분하기도 한다. 그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반응이 아이의 생각과 성품을 만들어 간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그 아이를 믿어 주는 어른이 있으면 된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아이들은 믿어 주는 만큼, 포기하지 않는 만큼 바르게 성장한다. 나는 ‘나쁜 아이’라고 불리어지는 말과 행동을 하던 아이가 ‘좋은 아이’로 변해가는 걸 보아 왔다. 내가 그런 아이를 ‘나쁜 아이’라고 낙인찍지 않고,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라고 믿는 힘을 갖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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